본문 바로가기
일주일에 한 번 미술관

[문화산책] 박경리, 원주 토지문화관

by 이류음주가무 2018. 2. 27.

문화를 산책하다 - 원주 토지문화관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문학관, 미술관, 박물관을 순례할 예정이다.
늦은 나이에 자존감을 세울 이유는 모르겠다.
견고한 자존감도, 무너진 자존감도 아직은 깨닫지 못했다.

다만 오래 몸 담아왔던 공무원 조직을 떠나기 위한 예행연습 정도로 치자.
한 친구는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목표로 산행을 시작했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30여년이 넘는 공직생활에서 모든 순간 순간이 다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문화관광과장으로서 짧다면 짧은 1년간 기억이다.

품격있는 문화가 좋았고, 창의적인 예술은 즐거웠으며, 체험 관광은 행복했고, 천년 신비를 담은 도자기는 더 없이 소중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창의도시와 교류는 다른 세상과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좋아하는 일이니, 모든 업무를 긍정 마인드로 다가갔다.

직원은 다소 힘든 면도 있었다.
자칭 포토그래퍼란 자신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누구보다 예술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입장을 대변하려 애썼다.

짧은기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문화예술이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는 생각을 여기저기 피력했고
동의도 어느 정도 구했다.

그 경험이 창전동에서 초보동장으로 일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문화예술을 향한 갈망과 욕구는 아직도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내 삶이 아직 행복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문학(화)관, 미술관, 박물관을 순례하기로 결정했다.
연두(아내)가 늘 동반할 계획이다.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면 일단 혼자라도 다녀온 후 다음에 함께 갈 생각이다.

 

----------------------------------------------------------------

 

지난 토요일(2월 24일)에는 첫번째 방문지로 원주 토지문화관을 다녀왔다.

 

 

아담한 산골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착각했다.

한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다.

 

하늘은 흐렸고, 미세먼지 때문에 더 흐렸다.
바람이 휑하니 불어 솔잎 사이를 지나 벌거벗은 가지를 통고하면서 산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문화관 문 열고 보니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외에 방문자는 없었다.
내부는 다소 쌀쌀했다.

 

 

 

전시관은 1층에만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지난해 박경리문화상 수상자 사진과 작품집만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환하게 비추었다.

 

 

전시관 입구에는 그 유명한 장편소설 '토지'도 전시돼 있었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박경리 선생이 직접 제작한 의류와 조각상,

사용했던 유품이 소박하게 나를 반겼다.

 

 

 

 

노트나 원고지에 적힌 깨알같은 글씨에 작가의 온기가 살아있는 느낌이다.

두개의 작은 공간에 많지 않은 유품을 보자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지 않나 서운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께서 생존에

"이 공간은 사는 문제의 전반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치, 경제 등 현안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는 공간이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니

무지한 상태로 방문한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단촐하지만 압축된 공간을 천천히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다소 따뜻해젔고, 하늘도 조금 맑아졌다.

문패가 달려있는 작가의 집 대문이 조금 열려있어 잠깐 들어갔다.

 

 

작가의 손맛이 가득했던 장독대에도 빛이 조금씩 내리고,
목련 봉우리는 시나브로 커지고 있었다.

 

호미로 풀을 뽑았을,

손수 농사지었던 언 텃밭은 조금씩 녹으며 물기가 반짝거렸다.

 

 

한적한 길을 조금 오르면 작가의 집이 있다.

1996년 원주시 단구동 옛집을 떠나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집이다.

마른 가지와 작가의 집 사이를 오가며 이름 모를 새 만이 반기는 듯 지저댄다.

 

 

 

토지는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이해하기도 힘든데, 어찌 수백명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살펴보기에는 역부족이다.

언제가 나만의 공간에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수백명의 삶의 궤적을 조용히 따라가볼 계획이다.

 

수 많은 등장 인물이 살아온 삶을 

한 조각 두 조각 촘촘히 바느질 하듯 빚은 작가, 역시 위대하다.

  

 

토지문화관은 토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예술공간이다.
국내외 문인과 예술인 창작공간으로 박경리문학제, 박경리문학상 시상식, 낭독공연, 청소년캠프, 문화강좌 등 문화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교육과 문화공간이 필요한 단체와 개인에게도 공간을 대여한다.(* 박경리문학공원은 원주시 토지길 1에 있으며, 매달 넷째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

 

 

위치 :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매지리 570)

전화 : 033-762-1382

바로가기 토지문화관

 

 

2018.2.2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