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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정말 잘 살다

입대하는 손자를 위한 할머니의 위대한 밥상

by 이류음주가무 2012. 5. 3.

아들 놈이 입대했습니다. 거창하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느니 하는 말보다는 건강하게 다녀왔으면 하는 게 부모의 솔직한 바람이죠.

입대 이틀 전에 외할머니께, 하루 전에는 여주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갔었는데요.

군대 가는 손주 녀석 따듯한 밥 한끼 해 먹여 보내고 싶어 일요일부터 보채셨던 할머니께서는 입대 하루 전에 정성 가득한 음식을 일찌감치 차려놓고 언제 오나 하고 목 빠지게 대문만 바라보셨다나 봅니다.

짧게 다듬은 손주 머리를 보고 언제 이렇게 성장했나 대견해 하시지만 주름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잘 다녀 올테니 '할머니 건강하세요'하고 큰절 올리는 아들 놈을 지켜보는 나도 그렇습니다.

이미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놓은 음식을 보니 더 없이 어머니가 존경스럽습니다. 위대한 밥상의 감동입니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손주 놈 좋아하는 닭도리탕에 잡채를 일주일 먹어도 남을만큼 푸짐하게, 여기에 계란말이와 부침개까지. 할머니의 마음, 짐작이 갑니다. 내가 입대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냥 도망치듯 떠났었는데, 그때 왜 그랬는지 저도 송구할 따름이지요. 아들 놈에게 못해준 걸 손주 녀석에게 차려준 듯 합니다   

밥 또한 한그릇 가득 담았는데요. 예전에야 허기졌었다지만 지금이야 어디 굶고 그러겠습니까. 그래도 할머니 마음은 그런게 아닌가 봅니다.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고 넓은 사랑을 손주에 주고 싶었던 게지요.

아들 보고 많이 먹어라 했지만 목이 메어 다 먹겠습니까. 하지만 아들놈도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에 감격했던지 맛있게 한 공기 다 비웁니다.

 

차비하라며 언제 준비하셨는지 꼬깃꼬깃한 봉투를 건네며 글성이던 어머니. 이 녀석이 제대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장가 들때까지 아니 증손자들이 태어나 자랄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할텐데.......

문 열고 나오는 내내 바라보시는 어머님. 입대를 위해 떠나는 아들. 난 별이 총총한 하늘만 바라봅니다. 왜 사월 마지막 날 밤에 개구리 울음소리는 저토록 요란한지요.

집에 와 가족과 입대 쫑파티를 간단히 열었습니다. 아들 놈이 먹고 싶다던 회 한접시와 아사히 맥주로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며 건배.

5월 1일 의정부에 있는 306보충대로 지명이는 향했습니다. 맛이 좀 떨어진 부대찌게를 먹고 306보충대에 도착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연병장과 관람석을 점해 부대에서 준비한 공연을 보며 두시를 기다립니다.

 

천천히 갔으면 하는 바람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버즈의 민경훈이 '가시'를 열창하지만 내 시선은 시계로 향하고 두시가 되자 아들놈은 연병장에서 큰절합니다. 건강히 잘다녀오겠다고. 이내 참았던 집사람은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맙니다.     

그리고 용감히 사나이 세계로 달려갑니다.

사랑하는 지명아.
건강하게 군 생활 잘하고 오너라.

그리고 어머님 사랑합니다.

 

이번 주에는 여주 황학산 수목원으로 지명이 에미와 꽃구경 가시지요. 지난번 설봉공원 벚꽃이 참 좋았지요.

그때 약속한 꽃구경하시죠.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