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1일 차 / 올레19코스, 서우봉 너머 슬픔을 보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1. 23.

[제주한달살이] 21일 차 /

- 올레19코스, 함덕해수욕장, 서우봉, 그리고 너븐승이 4.3기념관, 김녕해수욕장

- 올레19코스는 조천만세공원(제주올레공식안내소)에서 김녕서포구까지 19.4km로 6-7시간 소요

아침에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여서 느긋하게 먹었다. 오늘은 올레19코스를 걷는 일정이다. '조천만세동산'에서 시작해 '김녕서포구'까지 19.4㎞를 걷는다. 어제 5, 6코스 약 25㎞를 걸어서 다소 무리라 싶었지만 제주한달살이가 점차 끝나가다 보니 조바심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도 걷기로 했다.

표선리에서 101번 급행버스(환승버스)를 탔다, 조천환승정류장에서 내리면 시작 지점까지는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시작 지점인 조천만세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3분이다.

 

조천만세공원을 출발해 약간 돌아가면 곧 해안이 나온다. 관광객은 많지 않았지만, 해안가는 지금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구 등을 비롯해 온갖 쓰레기 그리고 해조류 등의 부패 등으로 냄새가 나고 날파리가 들이 득실거린다. 정말 해안가는 심각했다. 그런 바닷길을 걷기가 두려울 정도로 지독한 냄새와 시선을 방해하는 날파리가 많다. 특히 관곶에서 신흥리백사장까지가 심각했고, 이후에도 바닷가는 같은 패턴이다.

 

함덕해수욕장은 크고 깨끗했다. 관광지다웠고 관광객도 많았다. 식당가도 활기를 찾고, 젊은이들도 많았다. 마침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김밥집이 보였다. 밖에서도 안에 손님이 많아 보였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 시가 넘었는데도 손님은 계속 들락날락거렸다.

 

'손천이해녀김밥집' 메뉴는 해녀 김밥, 전복 김밥 등이 있다. 나는 해녀 김밥과 제주위트에일 맥주 1병을 주문했다. 해녀 김밥은 조금 맵다며 동의를 구한다. 김밥 재료로 흑미를 사용한 듯했고, 맵기는 했다. 그러나 시원한 맥주가 있어 매운맛을 내더라도 상관없다. 혼자 들어온 사람은 나뿐인듯하다. 김밥에 맥주 마시는 사람도 나 혼자였다.

 

온전히 나를 위해 천천히 먹고 마시니 기분이 좋다. 해변 식당에서 제주에일맥주를 음미하는 기분은 특별하고 행복했다. 맥주와 김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해변은 더 활가찼다. 에머랄드빛의 해변에서 가족, 연인, 친구 등이 셀카를 찍는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서우봉으로 향했다.

 

서우봉은 일몰 촬영지로 유명하다. 경사진 면에 유채꽃을 심어놔 추억을 담는 연인들이 특히 많다. 정상을 도는 우회길로 돌아갔다.

 

청보리밭이 있고, 거기서 바라보는 바다는 마치 우리가 상상하는 유토피아처럼 맑고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청보리가 같은 색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나는 찍고 또 찍었다.

 

조금 내려오니 일제 강점기 해안에 판 굴이 있어 가봤다. 또한 이곳은 일제 때 주민을 몰살한 곳이라고도 한다. 해동포구를 지나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너븐승이4.3기념관'이 나타났다. 이 마을이 제주 4.3 항쟁 당시 가장 많은 주민이 희생된 마을이란다. 기념관 앞에 붉은색의 동백꽃 모형 등이 즐비하다. 무엇인가 했더니 애기들 무덤이란다. 그때 애기들이 무슨 죄를 지어 몰살했을까. 그래서 제주의 동백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다. 역사와 제주 사람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꽃 같다. 상징도 그래서 동백꽃이다.

 

이후 해안가가 아닌 마을길등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어떤 길은 포장됐고, 어떤 길은 옛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때로는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고즈넉해 행복했다. 간간히 쪽 동백꽃이 피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느 교회에서는 성가를 밖으로 듣게 틀어놨다.

 

특히 풍력발전소가 있는 숲길은 압권이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가 이어졌고, 걷기도 정말 편했다. 숲의 공기도  더없이 맑고 시원했다. 다만 풍력발전기의 위협적인 모습과 굉음이 없었더라만 정말 멋진 길이었을 터다. 

 

김녕 농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기도 쓰레기가 너무 많다. 올레길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제주올레재단에서도 고민이 많겠다 싶다. 오늘 하루 동안은 내 앞을 걷는 순례객이나 뒤를 따라오는 순례객을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걷는 일은 힘들었지만 잠시 휴식은 행복했다. 가방에 담아온 오메기떡과 과일 등을 15㎞지점에서 비웠다. 조금 더 걸으니 김녕서포구에 도착했다. 17시 35분이다. 6시간 정도  걸렸다. 

바람은 조금 세게 불었지만, 포구는 아름다웠다. 셀카를 준비하고 있으니 나중에 온 사람들이 '찍어줄까요' 친절을 베푸셨지만 내가 구도 잡고 타이머로 찍겠다며 정중히 사절했다. 한 분이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드릴까요' 하고 또 친절을 베풀었지만 조금 더 걷겠다고 역시 고맙다며 사양했다. 걷다 보면 마음이 풍요로운 분을 참 많이 만난다. 

 

다시 10여 분을 걸어서 환승주차장에 도착했고, 20분을 기다려서야 101번 직행버스는 도착했다. 책을 꺼내 읽으며 표선리로 향했다.     2021.3.1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