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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9일 차 / 녹산로유채꽃길, 놀고 또 놀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2. 25.

- 녹산로유채꽃길, 메밀밭에가시리, 알맞은시간(카페), 방주교회, 본태박물관 

날이 참 맑다. 구름도 적당하고, 또 흐른다. 느긋하게 밥을 해 먹고 또 녹산로로 향했다. 유채꽃과 벚꽃이 한창이다. 오전에는 여기서 보낼 작정이다. 오전 10시가 지나 도착했는데, 관광객이 많다. 

 

첫 번째 세운 주차공간은 푸른 하늘과 구름이 절묘하다. 다양한 형태로 흐른다. 사진을 찍으라고 일부러 구름이 만든 형상처럼 변화무쌍하다. 꽃과 구름의 형태가 놀랍다. S자 형태의 도로에 빨간 차량이 달리지 않아도 풍경은 황홀하다. 두 카메라를 모두 활용했다. 광각렌즈로 찍었다. 조리개는 다소 조였지만 조금 밝게 노출을 주는 방식으로 가로세로 사진을 찍었다. 풍경은 정말 장관이나 나의 솜씨는 그 풍경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점차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깔끔한 사진을 담기가 곤란하다. 차량이 몰려가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찍곤 했다. 유채꽃과 벚꽃이 잘 어울리는 빨간 차, 노랑 차, 녹색 차는 지나가지 않고 온통 흰색 차량만 지나간다. 간혹 붉은 차량이 지나가도 뒤이어 다른 색의 차량이 함께 달리니 순간을 포착하기가 힘들다. 

 

자리를 위쪽으로 이동했다. 그쪽은 관광객이나 사진가들이 조금은 덜하지만 줄지어 다니는 차량은 순간에 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 두 번째 포인트가 주로 사진작가들이 찍는 포인트로 보였다. 최근 ‘풍경사진’이란 밴드에 대문 사진으로 올라온 사진과 매우 흡사하게 사진이 나온다. 카메라 두대를 이용해 구름이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지나는 차량이나 오토바이 등을 대상으로 찍었다. 정말 구도나 순간은 근사했다. 저녁에 확인한 결과지만 그곳은 포인트는 아니었다. 

두 시간을 찍고 구경도 하다 보니 배가 고팠다. 어디로 갈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생각난 곳이 ‘북살롱아미고’였다. 검색을 해보니 점심 요기할 수 있는 메뉴는 없었다. 다음에 떠오른 곳이 메밀국숫집이다.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 제주에 메밀국숫집이라니 했다. 엉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검색해보니 메밀국숫집은 바로 인근에 있었다. 도착하니 제법 많은 차량이 식당 주차장에 주차해있다. 바로 ‘메밀밭에가시리’란 식당이다. 동네 이름이 가시리다. 

 

인근에서 생산한 메밀을 자가도정하고, 제면까지 하면서 전국적으로 판매망을 확보한 기업형태를 띤 식당이다. 빈 테이블에 앉아 ‘들깨메밀칼국수’를 주문했다. 부추전도 주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조금 후 나온 국수는 보기에도 육수가 걸쭉하다. 면 위에 부추 두 개와 대추 조각 하나를 고봉으로 올려놨다. 젓가락으로 저어보니 면발이 넓적하다. 국물은 고소했고, 면발은 끈기가 있다. 양은 부족한 느낌이지만 국물이 면발과 같은 무게감을 느껴진다. 다른 지역의 메밀국수와 비교해도 내 미각엔 손색없고, 합격이다. 

 

최고의 맛을 느낀 메밀 칼국수를 먹었으니 커피 차례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인근에 있는 북살롱아미고가 생각났다. 책방과 카페를 겸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카페는 식당과 멀지 않았지만, 목요일이 휴무인데 오늘도 문이 닫혀있다. 제주도에서는 카페나 책방 등 휴무일이 정해져 있지만, 방문할 때는 반드시 영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방문 리뷰가 좋은 카페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알맞은 시간’이란 카페가 검색됐다. 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다. 알고 보니 올레4코스 걸을 때 그 앞을 지나간 적이 있다. 인근에 있는 ‘달그리메’란 소품 가게가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차 한잔 마셨을 터. 며칠 전 그 옆에 ‘키라네책부억’ 책방도 있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허탕을 친 근처다. 제주지역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지역을 검색해보면 책방이나 카페, 소품 숍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언젠가 한나절을 이 지역 책방, 카페, 소품점 그리고 ‘문어해물라면’ 맛집까지 탐방하고 싶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카페란 명칭도 보이지 않는다. ‘77년 새마을창고’란 글자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차량 두 대 있다. 가뜩이나 어두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자세히 건물을 보니 작은 창문 안에 불빛이 보였다. 외벽에 붙은 전구에도 불이 밝혀져 있구나 하면서 차를 세웠다. 입구 앞에 카페라는 작은 입간판이 보였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내부는 어두웠다.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들렸다. 손님 딱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었다. 창고를 개조한 다른 카페와는 달리 작은 창문 등을 원형 그대로 활용하다 보니 창문이 높아 밀감 밭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문하려고 했더니 자리에 앉아있으면 주문받겠다고 했다. 젊은 남자 사장이 안내판과 함께 QR코드를 확인하고 안내판 뒷면을 보인다. 조용한 곳이며,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 등은 사용하지 않는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서 호두로 만든 간식까지 추가했다. 커피와 함께 간식을 먹고 있자니 왜 이런 곳을 미리 알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인다. 제주한달살이 총정리하는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알맞은 시간’은 귤 선별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다. 음료 간식 취급소라고 칭했지만, 밖에서 얼핏 보기에는 영업 중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다. 조용히 명상하며, 침잠하면서 클래식 음악까지 들으니 나를 위한 힐링 공간이다. 젊은 친구들은 계속 하나둘 문을 연다. 인증사진을 조용히 찍고 차를 마신다. 책 읽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밖으로 나오니 젊은 연인이 창고를 배경을 사진 촬영하기 바쁘다. 나도 찍어야 했기에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담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세요’ 한다. 이런 카페를 찾는 젊은이들 성격조차 시크하다.

 

이후 해안가를 따라 차를 몰다가 갑자기 ‘수풍석미술관’이 생각났다. 물론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가서 떼라도 써볼까 했다. 한라산을 둘러싸는 구름은 더욱 다양해진다. 근처에 있는 ‘방주교회’부터 찾아갔다. 이런 날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물결이 살랑거리며 반영이 흔들린다. ‘수풍석 미술관’을 다시 검색했다. 그런데 하루에 두 번 관람 가능한데 반드시 예약해야 한단다. 억지 부릴 일도 아니다. 컴퓨터라도 있었으면 예약을 했으리라. 

 

본태박물관으로 향했다. 물살이 조금 일었지만 두 마리의 고니가 정답게 모델이 되어준다. 건물과 구름, 그리고 물의 조화가 정말 멋진 건물임을 보여준다. 날씨가 변할 때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건물이 부럽다. ‘안도 타다오’의 명성도 명성이려니와 제주와도 잘 어울리는 박물관이다. 

 

숙소로 향했다. 오늘 길에 내비게이션은 자꾸 우회전하란다. 직진으로 달렸더니 시간은 더 걸린다. 서귀포와 표선리를 수없이 다녔던 길로 나왔다. 다시 해안도로를 탔고, 구름은 아직도 계속 다양하게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차를 천천히 몰았다. 결국,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도착예정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지체됐다. 밥과 반찬 등 모두를 비웠다. 내일부터 떠날 때까지 모두 맛집에서 사 먹을 작정이다. 미장원에 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면서 머리카락을 제주에 남기고 떠나야 한다. 맥주캔까지 비우니 남은 것은 간장, 다시다, 고추장뿐이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중 연두가 전화를 했다. 보통은 잠깐 얘기하고 전화를 끊는데 오늘은 이십 여분이나 넘게 전화했다. 연두는 내 걱정이고 나는 괜찮다고 한다. 그게 전부였고 그러면 5분 안에 끝난다. 오늘은 오히려 내가 더 수다스러웠다. 여행 준비를 했는데, 지나고 보니 부족하고 후회되는 부분이 많다며. 사진도 그렇고 오름도 그렇고 미술관 투어도 그랬다. 독립(지역) 서점에 대한 무지도 그랬다. 예약을 하지 않아 수풍석 미술관을 관람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연두는 첫 번째 여행이라 그렇다며 위로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진 찍는다며 제대로 찍지도 못했다. 다음에 올 때는 둘이 오자고 했다. 내가 안내하겠다며. 제주살이 한 달 동안 처음으로 나는 ‘연두가 보고 싶다.’라고 고백하고야 말았다. 2021.3.24.(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