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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6일 차 / 벚꽃이 활짝 핀 서우봉에서 제주를 보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2. 17.

- 올레18코스, 간세라운지*관덕정분식(제주올레공식안내소)∼조천만세동산, 19.8㎞
- 관덕정분식점, 제주동문시장, 진아떡집, 만춘서점과 마왕 신해철

 

바닷가 바람은 거세다. 처음 제주항에 입항할 때와 비슷하다. 날은 좀 맑았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조천만세공원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올레18코스 도착점에 차를 세우고, 시작점인 간세 라운지로 걷고 버스를 타고 올 계획이다.

여덟 시 반에 출발했다. 

 

반대 방향으로 걷는 일이니만큼 화살표를 특히 눈여겨보며 걸어야 한다. 길옆 노지에 재배하는 딸기꽃이 하얗게 피었다.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딸기도 지금은 거의 끝물 시점이고 보면 우리나라가 참 넓다는 생각이 든다. 바닷가 근처의 나뭇가지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굽은 모양새가 특이하다. 모자가 바람에 날려가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걷기가 불편하다. 이따금 작은 나무라도 있으면 그 나무가 바람을 막아준다.

 

오늘 걷는 코스는 최악이다. 바닷가 해변이 특히 그렇다. 해수욕장 외 인적이 드문 바닷가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스티로폼, 그물 등 별별 쓰레기가 다 있다. 어제는 목욕 부스까지 버려진 장면도 목격했다. 인적이 드문 지역은 공사하느라 길은 질퍽하고, 표지판은 이따금 순례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곳곳에 4.3 기념물이 있다. 마을 전체가 소실된 아픈 기억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을을 지나다 보면 또 우물 등이 많았고, 해녀 등 목욕시설도 다양했다. 삼양해수욕장을 지나다 보니 마침 카페가 막 문을 열었다. 갓 구은 빵을 판매한다는 문구를 보고 들어갔다. 커피와 검은 빵을 주문 후 2층으로 올라갔다. 풍경은 멋지지만, 해조류 등이 모래에 널려있다. 

 

삼양해수욕장은 특히 모래가 약간 검은 편이다. 빵색과 비슷하다. 걷은 바삭거렸고, 속은 스펀지처럼 부드럽다. 달콤하고 고소했다. 먹고 나니 힘이 불끈 솟아났다. 잘못 길을 들어 다시 가다 보니 아무래도 중간 스탬프 찍는 장소를 지나친 듯했다. 삼양해수욕장 정자에 있다 해서 되돌아갔다. 시작점에서 걷는다면 보기가 쉽겠으나 종점에서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에게는 즉각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모든 코스는 눈을 여겨 보지 않으면 금세 이탈하기 쉽다. 힘들다 보면 당연히 이 길이겠지 하고 걷다가 그만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종 경험한다. 

결국, 되돌아가 중간 스태프를 찍고 해안가를 걸었다. 하지만 이 코스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가 해안가에 방치된 듯하다. 코스 자체가 ‘해안가 쓰레기를 보시오.’ 한 느낌이다.

 

제주 4.3 사건 당시 마을 전체가 소실되고 파괴됐다는 사라봉 인근에서도 잠깐 길을 잃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정상 코스로 진입한다. 서우봉 입구부터 벚꽃은 만발했다. 산벚꽃이 피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모습을 나는 오히려 좋아한다. 이른 봄에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산허리에 핀 산벚꽃을 특히 좋아한다. 사라봉 전체가 산벚꽃이 핀 분위기다.

 

제주항 국제여객선 터미널도 눈앞에 있고, 나를 태우고 다시 육지로 갈 배가 입항하고 있다. 서우봉에는 일요일이라 사람들은 많았다. 수령이 오래된 벚꽃 나무는 남원읍에서 본 나무와 닮았다. 바다와 접한 사라봉에 꽃까지 만발했으니 제주 주민은 복 받았다는 생각이다. 오르는 길이 다소 길고 지루했지만 걷기에는 좋았다. 내려가는 길은 길지 않다. 제주 시내가, 한라산이 다 보일 정도다. 

 

사라봉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는데 리본이 사라졌다. 결국, 네이버 지도를 활용해 찾아갔다. 도로에 붉은 페인트칠을 했다. 그 길을 따라갔지만 과한 느낌이다. 고속도로 등 속도가 빠른 도로에서는 유용하나 올레길에 붉은 페인트칠이 옳은지는 생각을 달리한다. 골목길의 벽화도 그렇다. 모두 새로 그렸지만, 벽화의 유행은 한때다. 무엇인가 변화를 주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두를 지나 대로를 지나는데 붉은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아라리오 뮤지엄’이다. 여기는 코로나19 때문에 임시로 운영을 중단했단다. 지난번 탑동 갤러리에서는 유명한 작품 다수를 감상했다. 앞에 흐르는 산지천이 참 맑다. 하천을 따라 올라가니 ‘제주중문시장’이다. 일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많다.

 

나는 일단 시장과 인파를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 시작점으로 향했다. 골목 역시 벽화로 도배했다. 골목길을 지나 큰길을 나왔는데 잠깐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다시 리본을 찾아 걸었다. 도로를 가로질러 골목길에 접어드니 거기에 ‘제주간세라운지’가 보였다.

 

제주간세라운지는 식당과 함께 있었다. 스탬프와 셀카를 찍은 다음 식당 안으로 입장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쾌적했다.

 

‘관덕정분식점’은 올레길 여행자는 물론 일반인도 이용한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봤다. 유부초밥과 에일 생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직원은 친절했고, 자상했다. 맥주는 시원하고 에일맥주의 특유의 바디감을 느껴진다. 과일향과 감귤류의 풍미, 그리고 쌉쌀한 끝 맛의 특징인 아메리칸 페일 에일 맥주인 ‘맥파이 페일 에일’이다. 마시고 나니 약간 취기가 오른다. 

 

올레 안내소에 특별한 기념품이 있나 살펴봤다. 봉사자와 수다를 떨면서 오늘 경험담을 들려줬다. 해안가 쓰레기가 많다고 했다. 표시도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고 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한눈에도 ‘그래 이 길이야’ 하고 가는 길이 맞아야 하는데 약간 아쉽다고 했다. 

제주동문시장으로 향했다. 다연이가 얘기한 11번 출구 ‘진아 떡집’을 찾았다. 한 분이 네 상자를 산다기에 기다렸다. 나도 집으로 택배를 보내려다가 다음날 도착하면 굳을 수도 있다는 말에 취소하고 맛만 보기로 했다. 숙소에 와 먹어보니 다른 오메기 떡보다 팥알이 굵고 크며 달콤했다. 제주동문시장에서 나와 함덕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제주 시내를 돌고 돈다. 그래도 조천 정류장까지는 중간에 환승하지 않고 가니 그냥 가기로 했다. 오십 분 정도 소요됐다. 

도착해 주변에 책방이 있나 검색해보니 ‘만춘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책방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 서점이 있었다. 주차 후 가보니 흰 건물은 작고 하얗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젊은이가 두 사람이 보고 있었고, 주인장은 없었다. 고르고 고르다가 또 유유출판사 책을 골랐다. 계산은 2호점에서 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근처에 2호점을 냈나 했더니 옆 건물이다. 1호점에는 음반도 판매하고 있었다. 신해철을 좋아하고 주인장은 음악에도 관심이 있는 듯 음악 관련 책만 보이고 미술 관련 책은 보이지 않았다. 책을 선택해 2호점에 들어갔더니 젊은 친구들과 사업상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예술 관련 책은 안 보인다고 했더니 어느 지점에 책이 있다며 안내해준다. 결국, 예술 관련 책 2권을 샀고, 내부 외부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받아 찍었다. 젊은 책방 지기는 재미있어 보였다. 친절했고, 유쾌한 목소리로 손님을 대했다. 

‘만춘서점’의 만춘이란 의미를 물었더니 ‘늦봄’ 또는 ‘만개한 봄’ 등을 의미한단다. 그에게 언제나 활짝 핀 봄이기를 희망하면서 나왔다. 

1호점 앞에는 마왕 신해철 추모비가 눈에 띈다. 그래서 음반도 함께 파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장답다. 그의 인생이 늘 꽃피고 봄이 가득한 삶이기를 기원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중산간 지역 농장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밋밋하다.

 

저녁으로 보말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늘 가고 싶은 맛집이다. 표선해수욕장 끝자락에 식당이 있었지만, 칼국수 가게는 이미 영업을 종료됐다. 결국, 숙소로 와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2021.3.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