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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4일차 / 올레21코스, 지미봉에서 바라본 종달바당

by 이류음주가무 2022. 2. 11.

[제주한달살이] 24일 차 / 올레21코스, 성읍민속촌, 녹산로유채꽃길

오늘이 요셉 축일이란다. 멀리 떨어진 연두로부터 축하한다는 문자가 톡 바다를 건너왔다. 오늘은 스스로를 좀 재촉했다. 올레21코스가 조금 짧아 서둘러 완주하고, ‘머체왓숲길’을 돈 다음 ‘녹산로유채꽃’길 사진을 찍을 일정이다.

서두르다 보니 스탬프 찍을 ‘제주올레 가이드 북’을 숙소에 두고 왔다. 그 바람에 30분이 지체된 9시 넘어서야 출발지점으로 향했다.  날씨가 다소 쌀쌀해 반 팔 대신 긴 팔 걷 옷을 걸쳤다. 구름은 음산했고, 바람은 약간 강하게 불었다. 어제처럼 시작점인 ‘제주해녀박물관’에 주차했다. 공간은 넓었고, 그 시간에 출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해안가가 아닌 마을 길과 낮은 돌담이 있는 밭길을 걸었다. 유채꽃은 절정이다. 음산한 날씨와 검은 돌과의 대비로 유채꽃이 유별나게 노랗다. 그렇게 길을 돌고 마을을 지나는 데 갑자기 내가 걷는 이 길이 올레코스가 맞나 의심이 들었다. 빙빙 돌고 도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지를 제대로 보고 걸었는데 이상하다는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중간중간 표지는 정확했다. 

 

걷는 거리도 짧아 먹을 것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카메라와 작은 가방 하나만 걸치고 나왔다. 바닷가로 나가자 바로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이 나왔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휴대폰이 주머니나 가방에 없었다. 차에 두고 온 듯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걱정했고 불안했다. 물론 차 안에 안전하게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안정하고자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집착하면 내가 오히려 손해가 아닌가 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솔직히 쉽지가 않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고, 카페도 그냥 지나쳤다. ‘하도 해수욕장’에 이르니 풍경이 광활하다. 바람은 거세고 파도는 높고 무섭게 몰아친다. 지미봉으로 들어섰다. 무 수확하는 아낙네가 지나가는 나를 무심히 처다 본다. 무가 정말 실하다. 요즘 제주엔 푸른 밭은 대부분 무다. 지금이 수확 철이다. 일하시는 분들 사이로 지나가기가 좀 죄송스럽기는 하다. 대부분 나이 많으신 어머님 같은 분들이라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송구하다.

 

지미봉은 정말 가파르다. 20여 분이 걸린다고 했다. 헉헉거리며 정성 근처에 다다랐는데, 어느 인솔자와 일행들이 길을 막고 있다. 족히 15명 정도는 될 듯하다. 이 엄중한 상황에도 단체로 올레길을 순례하고 있구나 했다. 이들 틈을 빠져나오니 정상이다. 성산 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종달리 마을도 알록달록 풍경이 정겹다. 몇 컷을 담고 걸음을 재촉했다. 

 

가파른 계단은 내려 가기가 조금 불편하고 힘들다. 지미봉 출구에서 급한 소변을 보고 마을로 들어섰다. 종달리다. 이제 1㎞ 정도 더 걸으면 끝이다. 종달리 해변에서 ‘커이트(연) 서핑’하는 일군의 무리를 봤다. 파도를 가로질러 미끄러지면서 높이 오른 다음 바다로 착지하는 이들의 묘기와 열정이 부럽다. 바람은 불고 온도는 차가운데 거친 파도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걷는다. 

 

종점인 종달 바당에 도착했다. 올레코스 중 마지막 순번인 올레21코스 종점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줄 알았다. 여느 코스와 다름이 없다. 아마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이기 때문이리라 생각이 든다. 스탬프를 찍고 조금 지나니 올레1코스와도 만났다. 여기서 1㎞ 정도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처음 걸었던 마을이고, 또 다연이와 연두랑 같이 왔던 길이다.

 

‘술도가’에서 탁주 한 병 살까 하다가 지나쳤다. 우선 배가 고팠다. 초등학교 뒤편에 예쁜 가게가 보였다. 지나쳤다가 근처 버스정류장과 버스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돈가스 집이냐 빵집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 빵집을 선택했다. 구수한 빵 냄새가 좋다. 커피도 된다고 했다. 소보로와 소시지 빵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오늘은 좀 서두른 느낌이다. 숙소로 되돌아갔고, 휴대폰도 차에 놓고 올레길을 걸었다. 천천히 먹고 마시니 이젠 마음에 안정이 찾아와 차분해진다. 먹는 동안 손님은 없었지만 작은 빵집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는 데 젊은 여성 두 분이 빵집 사진을 찍는다. 

 

201번 버스는 곧 도착했다. 시작점인 해녀박물관까지 10여 분이 걸렸다. 차 안에 휴대폰은 안전하게 있었고, 올레 공식 안내소에 들어가 뺏지 하나를 기념으로 샀다. 젊은이가 큰 배낭을 메고 첫 도전을 하는지 길을 묻는다. 길을 안내해준 다음 ‘녹산로유채꽃길’로 향했다. 기름이 간당간당했지만, 숙소까지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성읍민속마을’ 근처를 지나다 보니 유채꽃이 노랗다. 군데군데 동백꽃도 정말 붉다. 툭 떨어진 동백을 주워 담장에 놓고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분위기가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묘하게 감성적이다. 붉은 동백꽃과 노란 유채꽃이 잘 어울린다. 한 시간여를 성읍민속마을에서 동백꽃은 물론 유채꽃과 놀았다. 

 

결국, 경고 등이 켜져 숙소 근처 하나로마트 주유소로 가 주유 후 다시 ‘녹산로유채꽃길’로 달렸다. 커브를 돌자마자 만개한 유채꽃과 아직 덜 핀 벚꽃을 구경하려고 차량은 서행하고, 공간마다 주차해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가득하다. 나도 그 틈새를 이용해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천천히 차를 몰고 위로 올라갔다.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곳에는 유채꽃이 장관이다. 특히 붉은 옷을 입은 여성과는 참 잘 어울렸다. 그렇게 찍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어 숙소로 내려왔다. 

 

세탁, 설거지, 밥 짓기, 샤워 등을 마치고 나서 식사를 했다. 약간 졸았는데 시간은 6시 조금 넘었지만, 밖은 아직 환하다. 또 녹산로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 되자 차량이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이따금 보인다. 두 곳에서 구도를 잡아 봤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내일 새벽에 다시 올까 생각하며 숙소로 되돌아왔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2021.3.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