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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미술관

[이천여행][설봉공원] [조각감상] 레오나르 라치타, 그림자 가두기

by 이류음주가무 2022. 10. 5.

아니쉬 카푸어는 ’모든 물질적 사물들은 비물질적 상태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리움미술관에 설치된 그의 조각 작품 <큰 나무와 눈>, <하늘 거울>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겠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작품 속에 잡히지 않는 또 다른 풍경이 충만하다. 

반면 2002년 제5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가한 프랑스의 레오나르 라치타 작가가 제작한 <그림자 가두기>는 타원형의 매끈한 화감암을 비스듬히 기울어지게 세웠다. 작품에서는 물성상 표면에 반영되는 비물질적 대상은 보이지 않지만 대상의 질감을 따듯하게 표현했다. 시각적으로 물질 표면을 아무리 관찰해도 그 물질적 대상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비물질적 상태를 알아차리고, 느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비가시적이다.

 

작품 캡션에는 재료가 오직 화강암으로만 제작했다고 되어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해 직사각형으로 세워진 담장은 접근 금지라는 안전 보호장치에 불과하다. 그 안에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면서 일어나는 그림자를 가두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은 배제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작가가 의도한 그림자는 어디에 가둔단 말인가. 가두기는 한다는 말인가. 혹여 역설은 아닐까. 쉽게 생각해서는 조각의 기울기에서 찾아볼 방법은 있을 수 있겠다. 매일 태양이 뜨고 질 때마다 작품의 기울기로 인해 그림자가 작품 뒤에 숨게 각도를 예상하고 타원형으로 제작해 세로로 세운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앞서 아니쉬 카푸어가 ’모든 물질적 사물들은 비물질적 상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 이유처럼 화강암 표면이나 그 뒷면에 보이지 않는 작가만의 기호가 아닌 기의가 숨어있지는 않을까.  그 숨겨진 의도를 찾으라고 작가는 우리에게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또 아닐까.

 

(* 이천시는 1998년도부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을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심포지엄에서 제작된 작품 270여점은 이천시 곳곳에서 여러분의 멈춤과 시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 작품은 이천설봉공원에 설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