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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여기가 좋더라

[여주여강길] [황학산길]여주역에서 황학산을 올라 명성황후 생가까지 걸었다

by 이류의하루 2025. 1. 1.

한 해가 시작됐다. 지난해에 나는 내가 가장 원하는 미션 중 하나를 완수했다. 그것은 바로 산티아고순례길을 온전히 나와 연두가 자유롭게 떠나고 걷고 일부 도시에서 누구의 간섭이나 인솔 없이 둘 만의 자유 의지대로 여행하는 일정이다. 순례길은 36일간 900km를 걸었다. 힘들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면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적 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공간에서 잠을 자는 어려운 일 외에는 걷는 데는 전혀 고통이나 부상 등은 없었다. 발바닥에 물집 한번 생기지 않았고, 걷는 중에 무릎이나 기타 다른 신체 부위에 불편함도 전혀 없었다. 아직도 그 순례길 속에 나는 머물러 있고 또 걷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그 순례의 연장선에서, 그 과정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걷고 나서 내 인생에서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아닌 어디든 말은 못 하지만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조금 넘친다. 

 

그렇게 한 해가 졌다. 어제 저녁에 올 한 해 내 인생에서 꼭 도전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했다. 60대 후반을 살아가는 일종의 버킷리스트다. 그중에 하나가 여주에 있는 여강길을 완주하는 일이다. <옛나루터길>을 비롯해 14개의 느린 움직임으로 걷는 길이 있다. 길이도 150km 정도에 불과하다. 제주 올레길 427km, 가톨릭수원교구 내 성지 14곳을 잇는 디딤길 425km에 비하면 그리 힘들거나 긴 여정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 보인다. 이미 국내의 두 길과 산티아고순례길을 완주했으니 가볍게 걸을 수 있지 싶다. 그래도 걷는다는 일은 정신을 놓고 가는 길이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걷더라도 주의는 어느 길에서나 집중을 해야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여주역에서 출발해 황학산을 올라 명성황후 생가까지 걷는 <황학산길>을 선택했다. 거리가 6.5km에 불과하지만, 오랜만에 걷는 길이라 조심스러우면서도 설레었다. 새해 첫날이라 그 의미도 남달랐다. 여주역에서 내리면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스탬프를 찍는다. 물론 여기서 1길과 5길이 있는데, 5길이 <황학산길>이다. 왼쪽으로 나가면 길쭉한 리본이 소나무에 걸려있고, 횡단보도 맞은편에 여강길이란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남쪽인 오른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넌 후 리본을 따라가면 된다.

 

 

여강길은 전반적으로 리본이나 안내 표지는 잘 되어 있었다. 다만 길가나 버스 정류장 안에 버려진 휴지나 페트병 등 쓰레기들이 유난히 눈에 거슬린다. 황학산수목원으로 올라가니 제법 걷는 사람들이 많다. 나 같은 노인네나 가족 단위의 무리가 주를 이룬다. 황학산은 겨울철이라 다소 쓸쓸하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고 휴무라 더 그렇다. 황학산수목원 입구(주차장)를 지나 다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다시 능선에서 좌측으로 가야 한다. 내려가면 황학산수목원 정문을 지난다. 정문으로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데크를 따라 올라간다. 수목원이 한눈에 조망된다. 겨울이라 한적하고 고요하며 또 쓸쓸하다. 새해 첫날은 휴무라 더욱 그렇다.   

 

오늘은 이른 봄날처럼 햇볕이 따듯하다. 자영쉼터에 도착해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물도 한잔 마셨다. 기념사진 한 장을 담은 후 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니 황학산 정산에 도달했다. 높이라야 기껏 해발 175m에 불과한 아담한 산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경사진 비탈길이라 미끄럽다. 엉덩방아 찢기 적격인 길이 이어지다가 이내 시골길이 나온다. 그 길에도 리본은 달려있다. 위치가 좋아서 그런지 조상을 모시는 종중묘터가 군데군데 있다. 이즘에서 바람이 다소 쌀쌀하다. 마을을 지나자마자 명성황후 생가의 담장이 문득 나온다. 회전교차로 앞에 오늘의 목적지가 있다. 약 6.5km 걸었는데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안내 리플릿에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적혀있다. 느린 움직임이 아니었나 잠시 자문했다.  

 

 

사실 제주올레길이나 수원성지 디딤길 걸을 때나 이 정도 거리는 2시간 이내 걸을 수 있다. 오늘도 물론 그랬다. 인근에 정류장은 있으나 버스는 오지 않아 조금 걸어 큰길로 나왔다. 육교가 있는 점동초등학교 앞에서 기다리니 여주역 가는 버스가 곧 도착했다. 몇 정거장을 지나니 경강선 종점인 여주역이었다. 

 

 

여주역에서 전철차고 부발역에 도착해 다시 걸었다. 역에서 집까지 1km가 조금 넘는다. 죽당천을 따라 걸어가는데 해가 오늘따라 붉고 크다. 때마침 전철교량 위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사진 구도상 묘하다. 연두는 집으로 먼저 갔고, 나는 계속 그 자리에서 지는 해가 교량 가운데에 위치할 때를 기다리면서 스마트 폰으로 한 컷 한 컷을 담았다.

 

 

여강길 안내서에 이런 문구가 있다. '걷기의 느린 움직임은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게 해 줍니다.' 맞는 말이다.  제주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그랬다. 다양성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어제 세운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시작했다. 그 하나를 시작하고 이행하니 여러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걷기가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