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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7일 차 / 강정, 평화의 유채꽃이 활짝 피었네.

by 이류음주가무 2022. 2. 21.

- 올레 7코스 / 제주(서귀포) 올레안내센터 ∼ 월평포구 / 17.6㎞
- 녹산로, 쇼품숍

바람은 거세다. 오늘은 서귀포 시내 제주올레안내센터에서 월평포구까지 7코스를 걸을 계획이다. 주로 해안가를 걷는다고 했다. 아침을 일찍 마치고 잠깐 중간에 있는 녹산로유채꽃길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구름도 잔잔히 흘러 멋진 풍경을 담을 듯했다. 앞 차량이 천천히 주행하지만, 추월은 어렵다. 도착해보니 유채꽃은 활짝 피었고, 벚꽃도 만개했다. 진사가 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간혹 내려 풍경을 담고 추억을 만든다. 피사체를 광각으로 담았지만 내가 원하는 구도로 표현하기는 부족하다. 관광객 등 사람과 차량은 점점 늘어났고, 도로 한가운데 서서 순간을 기념하고 담아내는 사람도 있다. 광각렌즈와 망원렌즈로 담고서 서귀포에 있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로 향했다. 

 

차는 무료로 운영되는 이중섭미술관 주차장에 주차했다. 월요일은 휴관이라 미술관 관람객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홉 시 오십 분에 도착하니, 겨우 1대 주차할 공간이 보인다. 주차 후 올레7코스 시작점인 여행자센터로 향했다. 올레센터 위치를 알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눈이 덮인 한라산 정상이 또렷이 보인다. 건너다 말고 사진을 찍고, 풍경을 구경했다.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올레7코스 시작 지점인 올레센터에 도착하니 한 부부가 올레 봉사자에게 올레길 설명을 듣고 있었다. 표지나 리본을 따라가되 백여 미터 갔는데도 표시가 보이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은 것이니, 다시 리본 있는 곳까지 와서 확인하라며, 또한 놀멍 쉬멍 가면 3㎞ 정도 걸으면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주의사항 등을 친절히 설명하는 자리에서 함께 들었다. 

 

나는 처음 걸었을 때 누군가에게 설명을 듣지 못하는 바람에 올레1코스 중간 지점에 있는 스탬프를 누락한 경험이 있었다. 열 시 십 분에 출발했다. 구시가지를 조금 돌 줄 알았는데 공원으로 진입했다. 조각 작품도 있고, 또한 한라산 풍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예술가 레지던시를 하는 ‘덕판배미술관’도 있다. 건물 형태가 돛대 모습인 풍경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관람하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는 한 번 관람하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마가목의 열매가 특히 붉게 달린 도로를 지나 외돌개 방향으로 걸었다. 우선 KBS 송수신 탑이 있는 삼매봉으로 올라갔다. 월요일이라 삼매봉을 찾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산을 오르니 바람은 거세지지만, 산새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삼매봉 정상에서 한라산을 바라봤다.

 

구름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태는 견고하고 우뚝하다. 서귀포 시민이야 매일 보는 풍경이라 감흥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대단하다. 하산하는 길 반대쪽 외돌개가 있는 바다는 쪽빛이다. 도로를 건너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마침 ‘까망’이란 카페가 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어제 제주동문시장에서 산 오메기떡을 꺼내 커피와 함께 먹었다. 맛을 보며 바다를 바라보니 갑자기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 한 달 살이 여행을 왔지만 때로는 외로움도 파도처럼 일렁인다.

 

외돌개를 지나면서 계속 범섬에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외로운 섬 위에 작은 구름 한 점이 흘러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를 나는 좋아한다.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외돌개를 지나는데, 스케치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도 약해졌다. 섬 위를 지나가는 구름은 사라지고 또다시 한 조각 구름은 또 섬을 향한다. 섬과 구름은 결국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문득 삶의 유한함이 떠오른다. 

 

사유지를 올레코스로 제공한 ‘카페 60빈스’를 지난다. 다양한 석고 조각상이 곳곳에 배치했고, 열대 나무도 바다랑 잘 어울린다. 올레7코스는 그동안 다녀본 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해안가는 물론 도로 주변 어디에도 쓰레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길은 해안가를 따라 포장된 부분도 있지만 비포장된 흙길, 해안가 돌길 등 걷게도 편안하고 다양하다. 곳곳에 먹을거리가 있었고, 유채꽃이 한라산과 조화를 이루었다.

 

법환포구에 이르러 ‘제스토리’란 선물 가게가 있어 들어갔다. 가장 매력적인 상품은 동백꽃을 형상화한 제품이다. 여기서 손수건을 네 장을 샀다. 

 

숍 바로 옆에 식당이 있었다. 예사로운 식당은 아닌 분위기다. 종업원은 있지만, 알고 보니 지역의 해녀들이 요리하는 식당이다. 나는 해물 라면과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라면에는 전복과 새우, 그리고 홍합, 오징어 등이 가득했고, 또 매콤하면서 시원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혼자라도 이 순간은 행복하다. 누구의 눈치나 시선도 상관없이 오직 나에게만 충실한 지금 이 순간은 소중하다. 한 병으로도 충분히 취기를 느낄 수 있었고, 힘도 보충했다. 

 

다시 걸었고 바닷가에는 꽃도 피었고, 걷기도 편했다. 푸른 바다, 맑은 하늘, 잔잔히 흘러가는 흰 구름, 바람과 한라산. 걷다 보니 지난해 성당 3 가족이 여행을 온 숙소도 눈에 보인다.

 

출발 전 코스를 한번 볼 때 강정천으로 나와 있어서 강정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오늘로 현장 투쟁을 전개한 지가 5천일이 넘는다. 야외 천막에 두 분이 앉아 계신다. 곳곳에 깃발이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아직도 투쟁하고 있는 그분들의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려는 용기와 주장을 응원해 본다. 

 

강정을 지나니 유채꽃이 보인다. 해안가의 바람은 거세졌다. 가까운 식당에서도 한라산이 장애물 없이 조망됐지만, 돌담, 유채꽃, 한라산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났다. 걸음을 멈추고 찍고 또 찍었다. 오늘 같은 장면도 만나기  힘들다. 하늘이 도와주는 상황은 흔치가 않다. 여기까지 오는 장면 중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방산이 보인다. 월평포구도 지났다. 굿당 산책로도 지났다. 굿당이 근처에 있어서 그렇게 명명했으리라. 바람에 바스락 걸리는 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건넜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거기가 ‘월평 아왜낭목 쉼터’였다. 멋진 해안 코스였지만 강한 바람으로 힘도 들긴 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으니 여섯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곧 651번 버스가 도착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입구까지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차 후 시장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이중섭문화의거리’로 내려왔다. 그때 시간은 내가 저녁을 먹을 시간인 5시가 다 됐다. 팥죽으로 저녁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차를 몰고 숙소로 달렸다. 

어제 한 밥과 미역국을 덮여 먹고, 샤워 후 숙소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따듯한 차를 마시며 하루의 일과를 정리했다. 쿠키는 고소했다. 모래시계가 내려가는 과정이 끝났을 때까지 차를 우려낸 다음 마실 때가 가장 본질을 느낄 수 있단다. 나는 차를 마시러 온 게 아니기에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향이 좋다. 쿠키랑도 잘 어울린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고, 하루가 지났다. 

 

이제 4일 지나면 육지로 간다. 서운한 느낌이 든다. 오름을 오르고 한라산을 등반하며 올레길도 걷고, 멋진 카페도 방문한다는 사전 준비와 계획은 세웠지만, 마무리 단계에 후회와 아쉬움도 묻어난다. 내 인생의 마지막 무렵에는 후회 없는 삶이어야 하는데 하며 눈을 감았다. 지금이 고맙고, 잘 지냈으며, 또 감사하다. 2021.3.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