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가 저 혼자 둥글어질 리 없다'라고 장석주 시인은 읊었다.
고인이 되신 장인어른의 기일에 서산 처가를 다녀왔다. 조만간 많은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청량한 하늘과 새 하얀 구름이 유독 예쁘다. 구름이 고맙고, 보고 있으니 설렌다.
이웃집 닭이 울고, 멀리 외딴집에서 개가 짖는 새벽 4시에 일어났지만 좀 더 뒤척였다.
날은 밝았고, 해는 이미 떠오른 상태다. 서산에서 벼가 자라는 들판을 역광으로 한번 담아봐야지 다짐했다가 실행하지 못했다. 카메라 가방을 싣고 차를 몰아 가깝고 넓은 들판으로 향했다. 적당한 자리에 차를 세웠다. 지난번 여주 첼시 아웃렛에서 구입한 삼각대를 펼쳤다. 시선은 벼가 자라는 논으로 갔다.
이슬이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벼에 맺힌 이슬은 보석처럼 빛났다. 망원렌즈로 당기고, 또 밀기를 반복하며 찍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낯선 풍경이 있었다. 촘촘하게 엮어 만든 거미줄이다. 곳곳에 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이슬에 젖어 더욱 빛났다.
물이 풍족하고 햇볕을 잘 쬐면 벼가 저절로 익어 고개를 숙이는 줄만 알았다.
물이 부족한 늦봄과 여름이 지나면 또 태풍과 장마로 쓰러지고 꺾이고 쓸려나가고 묻히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벼가 익는 줄만 알았다. 병충해 방지를 위해 농약처방도 감수를 해야 했다. 그런데 거미도 벼와 공생을 하고 있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기까지 어디 자연의 재해만 극복하랴. 더불어 사는 거미 같은 곤충이 있고, 개구리가 있고, 우렁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은 인간만이 사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에게 충분히 산소를 공급해 주는, 또 물을 채워 홍수를 에방하는, 기온을 적당히 조정해 주는 저 푸르고 연둣빛 나는 들판의 벼가 가득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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