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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정말 잘 살다

아내를 닮았다는 코스모스가 수줍게 다가왔다.

by 이류음주가무 2013. 7. 26.

며칠 전 집중호우로 여주와 이천 지역은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복구 작업을 위해 군인, 시민, 자원봉사단체, 공무원 등이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데요.

 

신둔면 인후리란 마을로 수해 복구작업을 나갔죠.

이천과 여주에 오랫동안 살면서 이런 좋은 동네가 있는 줄 몰랐어요.

언젠가 읽었던 신영복교수님의 '나무야나무야'에 그 동네 도자기 가마가 소개됐지만 가보지는 않았거든요.

 

利川의 도자기 가마

 

신영복 교수 1996년 7월20일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도자기 고을 이천에 살고 있는 친지가 가마에 불을 지폈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섰습니다. 인후리의 산골짜기에 있는 그의 가마에는 흙으로 만든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길이가 10m․높이가 2m․소요된 흙이 10t에 달하는, 도자기가 아니라 작은 산맥이었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설악산․지리산을 거쳐 다도해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등뼈를 굳히고 있었습니다. 작품이 워낙 크기 때문에 경사진 언덕에 먼저 작품을 놓고 그 위로 벽돌로 가마를 짓고 다시 흙을 덮어 만든 구릉 모양의 오름가마(登窯)였습니다. 도자기란 글자(陶)가 구릉(좌부방부)에 굴(쌀포부)을 파고 그 속에 그릇(장군부부)을 굽는 모양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이하 생략)  

 

산 아래 조용한 동네. 

 

인후리 산골짜기, 조용한 동네에 물 폭탄이 투하(?)돼 피해를 입어 신음하고 있는 곳이 많네요.

첫날 열시부터 네시 반까지 흙을 퍼내고, 바닥을 쓸고 닦고해도 끝이 없더군요. 

 

정말 최선을 다해 복구작업에 임했지요. 

서양화가이신 집주인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데요.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다가 현장에 투입돼 어설프게 삽질 등을 하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절이고,

하지만 피해를 당한 그분들의 심정만 하겠습니까? 오히려 죄송할뿐입니다.

작가 선생님의 기대에 약간 부응하게 작업이 끝나 그나마 편히 집에 올 수 있었지요.    

 

집에 와 씻고 늦게 효양중학교 운동장을 찾았습니다.

얼마 전 봐 뒀던 코스모스가 언뜻 생각나서요.

 

하늘하늘거리며 푸른 하늘로 드높게 춤추는 가을날의 코스모스와는 사못 다르지만

해질녘 학교 담장 아래 어두운 곳에 몇 송이가 여기저기 곱고 수줍게 제모습을 방끗 드러냈네요.

 

그 중 한 송이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잠시나마 힘든 하루를 반추하며 미소를 지어 봅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꽃, 코스모스를 보면서요.

우주의 신비가 여덟개의 꽃잎 안에 묘하게 자리잡은 듯 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