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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0일 차 / 하루에 2개 올레 코스를 걷었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1. 22.

[제주한달살이] 20일 차 / 

- 올레 제5, 6코스를 하루에 걷다

- 올레5코스 / 남원항-쇠소깍, 13.4km     - 올레6코스 / 쇠소깍-제주올레여행자센터, 11km   

오늘 두 여자가 드디어 떠난다. 드디어라는 단어가 좋다는 말일까 아니면, 어쨌든 나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내 좋아하는 음식만 먹을 수도 있고, 방귀도 눈치 보지 않고 시원하게 꿀 수 있다. 1식 3찬의 적당량의 음식을 요리해 먹을 수 있고, 또 양도 조절할 수 있다.

오전 6시에 기상했다. 모두 씻고 일곱 시에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9시 출발하는 비행기지만 혹시나 하는 교통체증을 우려해 서둘렀다. 사실 그동안 다연이 소개로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 독립서점이 반가웠고, 소품 가게의 팬시가 예뻤다. 카페가 즐거웠고 다양한 맛집도 탐닉했다.   

여덟 시 경에 도착해 두 여자를 내려주고, 나는 표선 숙소로 다시 달렸다. 101번 버스를 타고 남원읍사무소 앞에서 하차했다. 오늘은 올레5코스를 걷는다. 남원항에서 쇠소깍까지이지만 거리가 조금 짧아서 여차하면 서귀포 제주올레안내소가 있는 즉 올레6코스까지 완주할 각오다.

10시 20분경 하차해 남원항으로 향했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은 잔잔했다. 10시 30분에 출발했다. 바다 역시 하늘처럼 맑고 푸르렀다. 5코스는 남원항에서 쇠소깍까지 약 13㎞ 정도의 거리로 4∼5시간이 걸린다. 이 코스는 비포장도로가 많다. 주로 해안가를 걷는다. 5㎞ 지점 위미에서 ‘위미애머물다’란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걸었으니, 차 한잔 아니면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실까 하며 문을 열었다. 나는 버드와이져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이 카페에서 버드와이저는 5천 원이지만 제주 에일맥주는 12,000원이다. 쉬면서 시원하게 한 잔을 마시고 나왔다.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지의 동백꽃은 거의 지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이 들어가니 걸음걸이가 어질하다. 낮술은 조금만 들어가도 취하기 직전이다. 두 여자는 오늘 떠났고, 또 맥주 한 잔을 걸치니 갑자기 아들 지명이 생각이 났다. 내일 프로젝트가 끝난다고 했다. 끝나면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여기서 아빠랑 한잔하자고. 

세상의 물정을 제대로 알고 좀 여유가 있었을 때 담배를 즐겨하셨던 아버지는 폐암으로 힘들어하고 계셨다. 아버지와 술 한 잔을 마실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사실 술을 좋아했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도 술은 좋아한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나는 만들지도 못했다. 그 때를 알았을 때는 이미 지난 뒤였다. 그래서 가끔 딸이랑 아들이랑 모이면 한잔하자고 내가 먼저 얘기한다.

건축 대상을 받은 건물도 보였다. 나는 노출 콘크리트 형식의 건물을 좋아하지만, 이 건축물도 멋지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 나온 건물과 카페도 예쁘다. 좀 전에 맥주를 마셨던 터라 외부 사진만 찍고 지났다. 해안가 벽에 설치한 시 구절은 정겹고 흐뭇하다. 

 


오후 1시경 '신내 쉼터'에서 숙소에서 싸 온 계란과 오메기떡을 점심으로 때우고 서둘러 걸었다. 

 

 

쇠소깍에 도착했다. 작은 교량을 지나니 바로 스탬프를 찍는 5코스 종점, 6코스 시작점이 보였다. 도착한 시간을 보니 오후 2시다. 이 시간이라면 나머지 6코스도 걸을만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올레6코스는 쇠소깍에서 제주올레여행자센터까지 총길이 11㎞이다. 해안 길과 서귀포 시내를 지나는 평범한 코스로 초반에 오름 하나를 오르고 숲길도 지나지만 길이 험하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보통 3∼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오늘 총 24㎞ 조금 넘게 걷는다는 게 무리는 아닐듯했다.

쇠소깍에서 출발 스탬프를 찍고 다시 출발했다. 쇠소깍에서는 즐겁게 카누와 쪽배를 타는 관광객이 있었으나 그 수는 적다. 쇠소깍을 지나니 경사가 급한 '제지기오름'이 나온다. 정상에서 과일을 까먹고 내려오니 아래에 보이는 마을이 아름답다. 종아리가 조금씩 댕기고 발목에도 통증이 있어 쉬면서 바르는 근육통 치료제를 약을 발랐다.

 


쇠소깍에서 서귀포 제주올레여행자안내소까지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소천지가 있었고, 칼호텔에서 내준 코스는 아름다웠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숲속 같은 길을 걸었고, 또 기암절벽 같은 곳도 지났다. 구름이 낀 하늘 구멍에서는 빛이 눈부시게 빛나며 내렸다.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차 소리는 잠잠했다.

 

목적지에 다 도착했다 싶었는데 절반을 지났단다. 그만큼 지친 모양새가 역력하다. 그래도 힘을 냈고, 또 걸었다. 

 


'작가의 산책길' 끝머리가 보였다. '소라의 성'도 나타났다. 오래전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쇠락했고 스산한 분위기다. 여기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왈종미술관'이 보였다. 월요일은 휴무이지만 다음에 제주에 온다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이다. '정방폭포' 입구를 지나 '서귀진성'을 통과하니 서귀포 시내다. 서귀진성을 나오니 '소암기념관'이 보인다. 

 

 

'이중섭 문화의거리'도 눈앞에 보였다. 벚꽃이 활짝 피었고, '서귀포매일올레시장'도 멀리 보인다. 시내 한복판을 지나니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제주올레여행자센터'가 반긴다. 숙박도 가능하다. 셀카를 찍으면서 하루에 두 코스 완주를 자축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감귤떡과 오렌지 주스를 사고나서 101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샤워 후 근처 표선리에 있는 '우동가게'로 향했다. 정식을 주문했고, 병맥주도 한 병을 추가했다. 맛있었고 시원했다. 혼자 먹고, 또 마시는 일상이 이젠 익숙하고 편하면서도 즐겁다. 온전히 나 스스로를 위한 성찬이지 싶다. 

2021.3.1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