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달살이] 22일 차 /
- 금오름, 성이시돌목장, 나홀로나무, 방주교회
지난 2일간 올레 3개 코스를 완주했다. 어제는 많이 피곤했다. 숙소에서 잠자기 전 맥주 한 캔을 마셨지만, 불면으로 밤새 또 뒤척였다. 새벽에 일어나 녹산로유채꽃길과 손자봉에 올라 사진을 찍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오늘은 올레길 대신 ‘금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제주 서부 금악에 있어 운전시간만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연두 말에 의하면 금오름을 가보라고 신부님께서 추천하셨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겠다 싶어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출발했다. 그런데 목적지 근처에서 네비가 좀 이상하게 안내하는 바람에 약간 헤맸다.
주차장은 넓지는 않았지만 이미 많은 차가 주차해 있었고, 그래도 공간이 있어 겨우 차를 세우고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까지 가파르게 오르는 코스 대신 완만하게 포장된 길을 대부분 이용하고 있어 나도 그 길을 따라 올라갔다. 도대체 어떤 오름이길래 신부님께서도 한번 올라보라고 추천하셨을까 궁금했다.
주변 풍경을 구경하면서 오르다 보니 ‘성이시돌목장’은 물론, 한라산 정상 그리고 어승생악까지 서서히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까지는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을 놀랍고 시원했다. 분화구에는 물이 약간 고여 있었고, 젊은이들은 분화구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연예인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다수 촬영했다고 한다. 한라산을 비롯해 풍경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다가왔다.
일단 분화구 둘레를 돌면서 주변을 보고, 젊은이들이 말하는 ‘작은 백록담’으로 불리는 분화구 아래로 가로질러 내려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 반대편 정상에 서자 애월읍과 한림읍이 한눈에 조망된다. 다연이와 연두랑 다녀왔던 신창풍차해변(싱계물공원)까지 모두 눈에 들어왔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놀라운 경치에 환호성을 지른다. 서쪽으로 보이는 마을의 지붕이 형형색색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오름보다 주변 모두를 시원하게 조망 가능한 오름이 금오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화구 바닥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진다. 한라산을 배경을 금오름을 걷는 사람들의 사진도 기막히게 담긴다. 그러니 이 멋진 오름을 신부님께서 꼭 가보라고 추천하셨겠지 싶다. 거의 두 시간을 걷고, 경치를 보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에 금악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포차에서 한치 빵 한 개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다. 한치가 들어있나 했더니 모양만 한치 형태이고, 대신 치즈가 들어간 한치 빵은 맛도 별미였다. 제주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 중 하나가 바로 한치 빵을 꼽기도 한다. 한치 빵을 먹으니 허기는 약간 해소된 듯했다.
금오름에서 본 근처에 있는 ‘성이시돌목장’으로 향했다. 여기도 사람들이 많다. 우선 근처에 있다는 ‘나홀로나무’가 궁금했다.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중간에 홀로 서 있는 나무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출사지이고, 연인들이 특히 많이 오는 장소다. 길가에 주차한 후 넓은 목초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 사람이 찍고 있었지만 내 나름의 표현이 가능한 장소에서 카메라를 세우고 셧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누군가 가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자리에 서서 포즈를 취한다.
성이시돌목장으로 되돌아 왔다. '성이시돌목장'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목장으로 특히 성이시돌목장은 제주 지역 최초의 전기업목장(全企業牧場)으로 1961년 11월 말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세워 양돈 사업을 했으며, 면양을 사육하였던 농장으로 알려져 있다. 주차 후 무엇이 특별한가 살펴봤다. 나는 아이들처럼 말이나 소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고 오래된 건물이 보였다.
이시돌목장의 특색있는 건축양식인 ‘테쉬폰’이란다. ‘테쉬폰’은 이라크 바그다드 가까운 곳에 ‘테쉬폰(Cteshphon)’(페르시아 테쉬폰 궁전)이라 불리는 곳에서 처음 건축양식이 시작되었다 해서 테쉬폰이라고 불리고 있단다. 제주도에는 1960년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테쉬폰은 곡선 형태의 텐트 모양과 같이 합판을 말아 지붕과 벽체의 틀을 만들어 고정한 후 틀에 억새, 시멘트 등을 덧발라 만든 건축물을 지칭한단다.
‘우유부단’이란 카페도 있었다. 들어가 보니 이시돌목장에서 생산하는 치즈나 우유 등을 판매한다. 우유 하나와 밀크티 두 개를 샀다. 가격이 좀 높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친환경 등등의 이유를 들어 기꺼이 지불했다. 우유를 마셨다. 싱싱했고, 고소했다. 또 사진을 찍고 나서 ‘성이시돌센터’로 이동했다. 성호를 그으며 사진을 찍으면서 센터 안으로 입장했다.
센터는 아트숍, 카페 그리고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아트숍에서 어느 수녀님께서 염색한 손수건 2개와 자석을 하나를 구입했다. 의미가 있는 성물이라 생각했다. 센터를 나와 ‘새미은총의동산’으로 들어갔다.
성경의 내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고, 십자가의 길도 있어 걸을까 하다가 성당이 궁금했다. 나와서 다시 큰길로 들어서니 ‘성삼위일체성당’이 보였고, 가로수가 우거진 길이 보여 그 길로 먼저 향했다. 그 길 끝은 바로 조금 전에 방문했던 성이시돌목장의 주차장과 우유부단이 있던 장소와 연결된다.
다시 ‘성삼위일체성당’으로 내려갔다. 성당은 닫혀 있었고, 어딘가 조금은 퇴락해 가는 느낌이다. 계단을 올라 넘어서니 십자가의 길이 보였다.
주조해 설치한 동상은 크고 또 리얼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내용을 읽으며 걸었다. 명상하면서 걷기 좋은 길이다. 굵고 휘어진 소나무가 가득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작은 능선을 넘으니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상상도 못 했던 호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호수 둘레 길을 따라 걸었다. 물은 맑지는 않다. 둘레길 등 전체가 가지런히 잘 정돈돼 있었다.
호수 주위를 돌다 보니 임피제 신부님의 무덤 표지가 있어 표지를 따라 올라갔다. 낮은 산을 오르고 넘으니 남향으로 신부님 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명예 제주도민 신분증도 돌에 새겨져 있다. 성호를 긋고 잠시 묵상하며 서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묘지 뒤 산 위 하늘을 배경으로 묘한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상징하는 깊은 뜻을 표현하는 형태를 지닌 그림 같았다. 순간 특별한 기운을 느꼈다.
묘지에서 내려오니 주변에 몇 사람이 있었고, 흰 십자가상에 기도하는 가족도 있었다. 기도가 끝나길 기다리며 성호를 긋자 때마침 해가 십자가 위로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의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화면으로 보기에는 꽤 신비스럽게 포착한 느낌이다.
다시 출구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길이 사색과 구도의 길을 닮았다. 이 길을, 그리고 호수를, 십자가의 길을, 은총의 동산으로 연두랑 걷는다면 연두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다음 제주에 다시 온다면 혼자가 아니라 연두랑 둘이 이곳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늦은 시간에 다시 ‘나홀로나무’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한라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홀로나무에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졌다. 다른 시각으로 몇 장을 더 찍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 길이 ‘본태박물관’과 ‘방주교회’와 이어져 있어 ‘방주교회’로 향했다.
저녁이라 물은 잔잔했다. 반영이 그럴듯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비가 오는 바람에 제대로 담지를 못했다. 물론 그때는 교회 내부를 방문했었다. ‘본태박물관’으로 향했다. 흐리고 어두워 사진을 담기가 그랬다. 옆에 포도호텔이 있다. 여기를 예약하고 갈까 고민 중이다. 그 안에 예약자만 볼 수 있는 수석풍 미술관이 있단다.
저녁 시간이 늦어져 숙소에서 해 먹기보다는 숙소 앞 식당으로 향했다.
장흥식당에서 전복뚝배기에 시원한 맥주 한 번을 주문했다. 뚝배기는 구수했고, 맥주는 달콤했고, 시원했으며, 나는 행복했다. 2021.3.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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