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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은, 미술관

[전시추천][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을 만났다

by 이류의하루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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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한창이다.

 

 

아니 이미 우수수 늦봄에 내렸던 눈처럼 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산벚꽃이 능선마다 가득하다. 이상 기후 탓인지 모르겠지만 길가에 가득했던 벚꽃과 동무하며 주고니 받거니 하는 듯 길도 하얗고 산도 하얗다. 용인 호암미술관 진입로가 하얗고 호수 건너 산에 가득한 벚꽃도 마치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를 닮은 듯했다.

 

겸재정선
2025.4.2.- 6.29.
용인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전시를 보러 왔다.

 

겸재보다는 사실 호암의 풍경을 더 선호했다고 할 수 있겠다. 호수(삼만육천지) 주변의 풍경이 궁금했고. 루이스부르주아의 미망도 봄 방문을 재촉했다. 꽃피는 계절에 어떤 모습으로 어미가 어떻게 알을 품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나온 광고는 참을 수 없는 시각과 촉각을 극도로 자극했다. 호암의 봄날과 그리고 임시로 운영(?)하는 경옥당의 연양갱은 감성이 무딘 나까지 유혹하기에 충분했고, 나는 나의 욕망이 이끄는 그대로 쉽고 빠르게 유혹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평일이라 예약은 수월했다.

 

관람객은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초입의 주차장은 아침 10시부터 만원을 이루었고, 다른 주차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봄날의 햇살은 갓 삶아 말려 덮은 이불처럼 부드러웠고 바람은 산 넘어 호수를 지나오는 듯 싱그러웠다. 호수 건너 산에는 산벚꽃이 하얗게 아직 덜 녹은 눈덩이처럼 모여 있었다. 바람이 캔버스에 드로잉을 하듯 호수의 물결은 잔잔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인지 가시거리조차 오늘은 짧은 듯했다. 햇빛은 흐렸지만 풍경은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뿌였다.

 

 

마망은 잘 있었다.

 

호수가운데, 벚꽃을 배경으로, 건너편 산벚꽃을 배경으로 당당했다. 최근에 관람객을 위해 약간 화장을 한듯했다. 빛났다. 단연 독보적이었다. 산티아고 순례 중 하루 시간을 할애하여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에서도 봤지만 여기 지금 이렇게 호숫가에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건강하게 보였다. 호암의 봄날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매력과 마력을 지녔다. 정선을 보러 온 나들이 인지 호암을 보러 온 관심인지 혼란스럽게 했다.

 

 

미술관 안에는 정말 관람객이 많았다.

 

지난번에 왔던 <니콜라스 파티>나 <김환기> 전보다도 더 많은 듯했다. 하지만 1 갤러리를 들어서자마자 더 놀랐다. 관람객이 꽉 들어찼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동양화보다 서양화를 우선한다. 내 취향이 그렇다.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검색을 할 때 동양화는 늘 서양화에 비해 내게는 뒷전이었다.

 

정선 그림 중  한 점만 보고 싶었다.

 

 

그 작품은 사실 <인왕제색도>도 아니고 <박연폭포>도 아니다. 오직 <금강전도>만 자세히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그림은 그냥저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인왕제색도부터 나의 발걸음은 멈추었고, 걸음은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 옆에 전시된 금강전도는 듣기만 했던 새의 눈으로 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방식에 갑자기 서양미술사가 소환됐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던 세잔의 다시점 방식보다 더 넓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보다 보니 정선의 일생이 궁금했다. 정선은 1676년에 태어나 1759년에 사망했다. 세잔보다도 훨씬 이전에 풍경을, 사물을 다양하게 관찰하고 구성했다는 의미이다. 

 

붓 터치를 봐도 독특했다.

 

툭툭 옆으로 위로 짧고 가늘게 치다가 어떤 때는 단지 인상만 표현하다가 단책화처럼 굵직하고 기운 넘치게 그은 방식이다. 우라가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보다도 더 앞선 느낌을 나는 받았다. 인물표현에 있어서는 피터 르 브르헐의 풍속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특징만 간결하게 잡은 모습은 마치 추상화의 전단계를 느끼게 했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의 인간을 표현한 듯도 했다. 어쩌면 그 시대의 화법과 매우 다르게, 혁신적으로 그렸던 듯하다. 관람하는 데 시간은 너무 걸렸다. 결국 1층만 보고 나왔다. 동아리 회원들은 이미 2층까지 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연두랑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관람을 멈추었다.

 

봄날 속으로 걸어갔다.

 

 

우리들은 샌드위치를 주문했고, 제1 주차장 출입구에서 받아 계산했다. 호수 주변에 둘러앉아 먹었다. 맛도 좋았지만 봄날의 풍경이 더 좋았다. 완전 소풍이었다. 둘러보니 표정이 모두 밝다. 대부분 여성들이다. 나처럼 은퇴하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남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와 같이 온 동아리 회원들도 모두 여성들이다. 이러니 남자들이 수명이 짧은가 혼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도 봄날은 흘러갔다.

 

카페로 이동했다. 

 

서둘러 전시를 오게 된 결정적인 게기도 여기에 있었다. 정선과 콜라보로 만든 양갱을 먹고 싶었다. 봄날 꽃이 피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커피 한 잔에 양갱 한 조각을 먹는다면 미술관 투어의 백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고 먹고 마시고 또 피드백하며 미술을 주제로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내는 여행이 내가 여기서 지금 가장 꿈꾸는 행보이다. 정선 기간 동안 임시로 문을 연 금옥당 카페 역시 관람객들로 가득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후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양갱을 먹었다. 봄날은 이 시간에도 깊어 갔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주변을, 희원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담았다. 여기저기서 봄내음 향기가 따듯한 봄바람과 어울려 코끝으로 스쳤다. 풍경도 사람들의 환성과 관심으로 들썩들썩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작은 망부석(?) 등이 외롭지 않았다. 정원의 작은 호수에 주변에 설치된 장-미셀 오토니엘의 '황금목걸리'는 그 의미를 떠나 반짝거렸다. 미망에 비해 크기나 인지도나 유명세에 비해 오히려 덜 주목을 받지만 자세히 보는 사람들에게는 황금목걸리는 그 자리에서 더욱 빛났다. 아트숍에 가서 결국 두 점을 소품을 구매했다. 정선의 손수건과 비누다. 퀴즈를 내에 정답을 맞힌 동아리 회원에게 줄 선물이다. 한 사람에게 하나 주고 나머지는 내가 사용할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두 회원에게 주기로 했지만 말이다.

 

양갱을 샀다.

 

다시 금옥당 카페로 가 양갱을 여섯 개 구입했다. 작은 양갱 하나에 4-5천 원은 간다. 감성이 가득한 포장 하나하나가 정선이고 예술이다. 다연이가 하는 말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여섯 종류를 선별했다. 맛있는 음식(빵 등 디저트)이 있는 곳을 여행하면 가족에게 맛보라고 많이는 말고 한 두 개라도 반드시 사 오라고 말이다.

 

 

두릅을 도둑맞았다.

 

그렇게 오전을 계획했던 미술관 투어는 오후 5시가 넘어 끝이 났다. 서둘러 연두콩밭으로 차를 거칠게 몰았다. 어제오늘 정선을 보고 바로 와서 두릅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직 작아 따기가 좀 안쓰러웠다. 요즘 날씨가 예년처럼 따스하지 않아 성장에 좀 문제가 있는 듯했다. 오늘 날씨가 평년기온을 회복한다고 했고, 또 그런 날이었다 보니 먹기 좋아졌겠다 했다. 하지만 농장에 가보니 이미 두릅은 처참했다. 가장 좋은 놈들만 사라졌다. 나무도 부러지고 말이 아니다. 결국 아끼다 똥이 됐다. 분하고 서운했다. 경고문까지 붙여놨는데 남의 밭에 들어와 따간 사람에게 원망의 마음을 날카롭게 보냈다.

 

하지만 곧 마음은 누구러졌다.

 

동네 어느 분의 두릅은 주인이 없을 때 집안까지 들어와서 따갔단다. 많이 먹으면 인체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기사도 떴다. 누군가 맛있게 먹으면 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덜 자란 두릅도 조금은 남아 있으니 그걸 먹으면 되지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에 빠지면 나만 손해다. 아직까지 호암에 가지 못했다. 연두랑 가서 나머지 그림도 봐야 하는데 핑곗거리가 자꾸 생긴다. 그래도 나는 정선을 만나러 가야 한다. 미망을 만나고 황금목걸이를 보고 양갱을 먹으러 가야 한다.

 

 

20250417. 호암미술관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