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멀리 가는 여행은 가급적 줄이고, 대신 가까운 장소를 찾아가는 게 노년의 일상이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을 떠났었고, 가장 하고 싶은 희망사항 1순위인 산티아고순례길 중 프랑스길 800km을 완주했다. 물론 땅끝의 마을인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 피스테라에서 무시아까지 순례를 합치면 무려 900km를 걸었다. 물론 무모하게 출발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제주올레길 427km를 비롯하여 가톨릭 수원교구 산하 14개 성지를 잇는 디딤길 425km도 걸었고, 거의 매일 6~10km를 걷기도 했다. 걷는 게 습관이고 일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처음으로 가본 카페 <카페아치>도 걷기 과정에서 우연히 만났다. 2023년 디딤길을 걸을 때 산북성당에서 여주성당까지 약 32km를 걸은 적이 있다. 산북성당에서 아침에 출발해 하천을 따라 걷는데 <카페아치>를 만났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구나 생각했다. 카페 맞은편 정자에 앉아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면서 카페를 검색해 보니 평도 제법 높았다. 기회가 되면 가보자 했는데 인근에 있는 수연목서란 유명한 카페에는 몇 번을 다녀갔지만 <카페아치>는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다.
오늘 동아리 회원이 사준 <건업리보리밥>을 먹고나서 내가 안내했다. 가까운 거리이면서 평도 좋고 한적한 곳이라 추천했다. 산북 면소재지를 조금 지나 송어집 맞은편 농로를 따라 들어갔다. 이런 외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카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커피 등 맛이 아주 특별하거나 건물이나 내부가 특이한 경우다. 나는 쓴맛이나 산미보다는 산미가 약간 가미되면서도 고소하고 쓴맛이 조금 긴 커피를 좋아하지만 마시다 보면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져, 오히려 건축물이나 건축물이 위치한 지리적 특징, 내부 디스플레이 등에 더 관심을 두는 편이다. 사실 <카페아치>도 후자 쪽에 해당된다.
주차장에 도착해 밖에서 안을 보니 영업을 하는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내부도 잘 보이 않았고, 어떤 움직임도 없이 조용했다. 일행이 도착해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상황과 분위기는 급반전이 일어났다. 오른쪽은 주문공간이, 맞은편에는 아치형태의 공간이 우아하게 단아하게 우리를 반겼다. 창가 쪽으로 놓인 테이블이 빛났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사적인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에 이르기까지 조용하면서도 환했다. 저절로 염담한 미소가 번졌다.
당연한 듯해서 내부의 공간형태와 연관을 지어 그래서 아치(arch)카페라고 이름을 지었구나 했는데 주인장이 다른 의미가 있단다. 아치(雅致)란 단어는 <아담하고 우아한 운치>가 있는 뜻이란다. 그 단어를 사용한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카페는 아담했고 운치 있어 보였다. 다락방 같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물론이고 다락방 같은 2층에서 차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운치 있어 보였다. 밤이면 마치 별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의자에 편안히 앉아 볼 수 있는 듯했다.
하늘이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듯한 빛도 커피를 마시기에 망설이도록 수려하다. 통창으로 보이는 하천도 그렇고 맞은편 시골집의 지붕도 운치 있어 보였다. 오동나무가 벌거벗은 상태로 있어 조금은 혼란스러워 아쉽지만 봄날 오동나무 피면 또 다른 풍경이 <카페아치>를 찾는 이들을 반길듯하다.
재봉틀 위에 걸어놓인 거울도 예사롭지 않다. 왜 재봉틀일까 생각했는데 셀카를 찍고 보니 그 어떤 카페 거울의 반영사진과도 확연히 달랐다. 작은 의자에 앉아 셀카를 찍어보면 느낌은 금방 다가온다. 마치 르네상스 고전주의 화풍의 그림 액자처럼 옛스럽지만 고급스럽다. 액자 안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 역시 우아하고 운치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1층에 자리한 또 다른 통로 공간도 운치 있다. 조용필의 LP판이 무심히 놓인 듯하고, 잡지 몇 권도 손 때가 묻어있는 상태로 가까이 펼쳐진 모습도 다정하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소금빵을 조금씩 먹으면서 사진놀이에 몰입한다면 여기만큼 우아하고 운치 있는 장소와 공간이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커피가 맛이 없거나 소금빵이 형편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그 역시 맛이 깊고 향도 오래갔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이제야 방문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아니면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카페아치>에 들러 반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멍을 때려도 좋고, 두 시간 동안 셀카놀이의 삼매경에 흠뻑 빠져도 좋을 듯한 카페가 산을 마주보며 그 아래 하천이 있는 <카페아치>다. 여주 산북면에 있다.
위치 / 경기 여주시 산북면 용담1길 25 1층
- 동곤지암 IC 에서 양평방향 구 도로 약7km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휴무 / 매주 금요일 휴무(오픈 1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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