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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그 기억을 담아

[일본여행] 나오시마 섬, 예술의 감동 속으로 빠지다(4)

by 이류의하루 2023. 6. 22.

2023.5.24. 

베네세 하우스, 이에 프로젝트, 코사마 야요이 노란, 붉은 호박

 

우측 바다를 보며 산책하듯 베네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해안가에 덩그러니 놓인 노란색과 검은색의 나룻배는 <제니퍼 바트렛>의 작품이다. 절벽에 점처럼 보이는 액자 역시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작품이란다. 

 


바다를 등 뒤로 호텔과 박물관(미술관)으로 구성된 베네세 하우스로 올라갔다. 베네세 하우스는 ’자연과 건축과 예술의 공존‘을 주제로 1992년에 설립됐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은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전시되어 있다. 

 

색감이 상큼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A walk around the hotel courtyard acatlan(호텔 안뜰을 산책하다, 1985)’, <리처드 롱>의 ‘island sea driftwood(섬으로 떠내려온 목재, 1997)’, <브루스 나우만> ’100개의 생사(1984) 등등 동시대 미술사에서나 볼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하지만 여유롭게 보지 못한 작품도 많아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베네세 오벌 하우스에서도 하룻밤을 머물고 싶다.

 

베네세 미술관을 내려와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여기저기 설치된 조각작품은 바다와 섬을 이어줬다.

 

‘베네세 하우스 스파’ 앞에 있는 <니키드 생팔>의 화려한 작품들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반겼다. ‘베네서 하우스 스파’ 건물은 단순하면서도 조용한 듯 낮게 산자락 아래 자리를 틀고 담담히 있지만, 토끼풀이 가득한 넓은 공간에 설치된 <니키드 생팔>의 작품들은 형형색색 밝고 화려했다. 

 

그 끝에 바다를 향해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바다를 등 뒤로 빛나고 있었다. 나오시마 섬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인증숏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누군가는 신발을 벗어 들고 밀려오는 나오시마 파도에 발을 적셨다. 노란 호박 아래 바닷가는 시원했다. 정면에서 찍으면 역광으로 담아야 하는 난제가 있지만, 바닷가 모래에서 담으면 더 예쁘고 심지어 웅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베네세 하우스 동쪽 입구에서 전용 버스를 타고 400여 년 역사를 가진 ‘혼무라’ 마을로 향했다. 주차장에 내려 도로를 무단 횡단했다. 나오시마 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땡땡이 점을 부착한 버스가 지나갔다.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있는 <미나미데라>라는 절은 지나쳤다. 한 시간에 한 팀이 입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볼 수가 없단다. 

 

2006년 빈집을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복원한 ‘이에 프로젝트(2006)’가 이루어진 마을이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면서 섬 주민의 삶을 녹아냈다. 

 

안내소에서 안내 팸플릿을 들고 빈집을 찾아다니는 탐방은 마치 낯선 마을에서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듯 즐거운 경험이었다. 작은 빈집 하나하나를 예술작품으로 공간으로 만들어 한 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었다. 조별로 움직였다.

 

먼저 방문한 집은 ‘이시바시’다. ‘이시바시’ 집안은 원래 염전을 운영했다. 당연히 섬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이시바시에는 <히로시 센주>의 ‘키르의 정원’과 자연광 아래에서 볼 수 있는 ‘폭포’가 전시되어 있다. 옻칠한 까만 바닥에 비친 폭포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음은 큰길의 마을 외곽에 있는 치과의사의 집이자 사무실인 ‘하이샤’를 찾았다. ‘혀 위의 꿈(舌上夢)’이란 작품이 있다. 무언가를 입에 넣고 있을 때, 맛과 냄새 등의 감각으로부터 느껴지는 꿈의 기억의 프로세스를 표현했다고 한다. 

 

‘하이샤’는 <오오다케 신로>에 의해 조각과 그래픽 작품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는 폐선, 철탑, 그릴, 콜라주 기술을 사용하여 꿈의 풍경을 추적하는 과정을 현실화했다. ‘하이샤’의 외관은 어렸을 때 보았던 지붕이 높은 낡은 방앗간을 닮았다. 거대한 물레방아가 있었던 자리에는 뜬금없이 자유의 여신상이 들어앉은 모습이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세 번째 집은 ‘고카이쇼(요시히로 스다)’다. ‘고가이쇼’라는 명칭은 옛날 바둑을 두는 장소다. 다다미방에는 오색으로 칠해진 나무로 조각된 작품 <동백 춘>이란 동백꽃이 놓여있었다. 마당에는 실제 동백이 자라고 있었다. 실내와 실외의 동백이 묘하게 연결된 공간으로 결국 두 공간 자체가 작품이 됐다. 

 

네 번째 집은 ‘카도야’다. ‘카도야’의 ‘Sea of Time 98’은 <이에 프로젝트> 제1탄으로 완성됐다. 200년 전에 지어진 옛 가옥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후 다다미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물을 채웠다. 거기에 125개의 디지털 숫자를 집어넣었다. 1에서 9까지의 숫자는 섬 주민이 각자 느끼는 세월의 속도를 표현했단다. 물 위에 꽃들이 피어 둥둥 떠다니는 듯한 예쁜 풍경이 예술 활동에 참여한 섬 주민들의 마음을 닮았다.

 

다섯 번째는 ‘고오신사’다. 마을 중간 오솔길을 따라 능선을 오르니 왼편에 신사가 있다. 외관은 특이하지는 않았지만 특이하게 얼음 같은 유리계단이 보였다. 계단 재료는 카메라에 쓰이는 광학유리다. <히로시>는 이 유리계단을 ‘빛의 계단’이라고, 지하 석실은 ‘고대의 방’이라 명명했다. 지하 ‘고대의 방’은 바다가 보이는 옆길로 들어간다. 지하 석실로 들어가려면 앞에 들어간 사람이 나와야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석실로 향했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어둡고 좁은 통로로 들어가니 조금 전에 보였던 유리계단에 지하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지하 ‘고대의 방’을 나올 때 보이는 빛이 가득한 바다의 풍경은 놀랍다. 지하 무덤에서 지상 현실로 돌아오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미나미데라>를 들어가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쉬웠다. 

 


다시 주차장에서 전용 버스를 타고 항구로 이동했다. 고개를 넘기 전에 학교가 보인다. 우리처럼 학교 모습이 감옥 같지는 않다. 

 

항구에 도착해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I♥湯이라는 공중목욕탕이 나타났다. 

 

<오오다케 신로>가 디자인했단다. 실제로 목욕을 할 수 있으며, 베네세 그룹이 운영한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온갖 재활용품(원래는 쓰레기)으로 꾸며져 있다. 타일, 번호판, 돌고래 등 다양하면서도 독특하다. 

 

빈집을 예술로 바꾼 ‘이에 프로젝트’는 나오시마의 역사와 유물을 존중한 결과물이다. ‘예술(건축)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움직이게 한다’는 건축가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출항 전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앞으로 일행은 몰려갔다. 

 

노란 호박보다 조금 크고 구멍이 나 있었다. 뚜껑도 있었다.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둘러보며 일행은 즐겁게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나오시마 섬의 예술과 작별할 시간은 다가왔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오리라 다짐하면서 못내 시선을 돌렸다.

 

다시 <다카마쓰 항>으로 페리는 떠났다. 아쉬웠다. 머문 자리마다 오래 기억하기 위한 시간은 부족했다. 카메라로 이미지를 담기는 했지만, 그 순간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 되살아날지는 의문이었다. 바다의 바람은 시원했다. 멀리 시선을 둔 어느 관광객의 뒷모습이 꼭 나를 닮은 듯했다. 바다를 응시하지만, 벌써 기억을 더듬고 있을 테다.

 

버스는 달려 이틀을 머물 ‘고토히라 코토산카쿠 호텔’에 도착했다. 일행의 숙소는 7층이고, 다다미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식사 장소로 내려갔다. 두 사람당 한 테이블씩 주어졌다. 저녁에 나온 우동 면 역시 쫄깃하면서도 맛이 유별났다. 우동의 본 고장 사누키 우동답다. 맥주도 건배를 위해 한 병을 먹을 수 있었다. 시원했다. 더 마시고 싶은 심정이지만 분위기상 참았다. 

 

저녁을 먹고 시내를 산책했다. 작은 도시답게 거리는 조용했고, 가게는 대부분 불이 꺼져있었다. 문을 연 술집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을을 이리저리 도는데 한 블록 더 안쪽으로 가니 하천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 등은 다정했다. 한 음식점에서는 다소 소란스럽다. 아홉 시 조금 넘은 시간이다. 회식이 끝난 듯하다.

 

숙소로 올라와 온천욕을 이해 1층으로 내려갔다. 남탕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우리 목욕탕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탕 안은 조용했고,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놀라운 사실은 종업원이 여성이다. 일본문화란다. 내일 아침에는 남녀가 목욕할 수 있는 장소가 바뀐다. 일본문화란다.

 



두꺼운 요가 깔린 다다미방에서 눕자니 그제야 방 안에서 약간 눅눅한 냄새가 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