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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아보니

[제주한달살이] 12/13, 21일차 윗세오름과 한라산 남벽까지 걷다

by 이류의하루 2022. 12. 13.

12/13,  21일차  영실코스 윗세오름, 한라산 남벽 / 제주올레 패스포트 구입 / 청춘당

간밤에 불던 바람이 아침에는 잔잔해졌다. 바다 둘레로 구름이 띠가 형성돼 있다. 동쪽에서는 구름 사이로 햇볕이 보인다. 기온은 쌀쌀하다. 오늘은 영실 주차장으로 이동해 윗세오름까지 오르는 일정이다. 봄에는 두 차례 다녀왔지만, 지금은 겨울이다. 한라산 주위에 눈이 보여 사진도 찍을 겸 겨울에 오르고 싶었다. 추위를 대비해 내복까지 입고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영실 주차장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월요일 아침에 느긋하게 출발하니 차량 통행이 드물다. 출근 시간이 지난  상황이다. 한라산 1100 고지 도로는 초보운전자가 운전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드라이브 코스로는 제격이다. 주행 속도가 40이라 운전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한라산의 숲 속 공기 좋고, 또 날씨도 차갑다 보니 기분은 상쾌하다. 바닷가에는 구름이 띠를 형성했지만, 한라산으로 오를수록 하늘은 맑다. 영실 주차장 주차비는 1800원이다. ‘탐나는 전’ 카드는 사용 불가다. 아홉 시 삼십 분인데도 주차장에는 차량이 가득하다. 6시부터 입장하니 올라간 사람들이 많지 싶다.

영실 주차장에는 바람도 없고 날씨도 포근하다. 속옷을 괜히 입었나 걱정했는데, 오르는 사람이건 내려오는 사람이건 복장은 모두 단단하다. 처음에는 소나무 숲 등을 지나면서 별다른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20여 분 오르니 능선에 자꾸 시선이 간다.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인 줄 알았다. 상고대였다. 온도 차이가 크다 보니 아래까지 상고대가 발생했으리라. 

 

아래에서는 나뭇가지 등이 걸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햇볕은 능선 위로 오르기 시작했고, 앞서가는 일행이 탄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서둘렀다. 숨은 더욱 찼다.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관망하는 능선은 환상적이다. 구름의 변화는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만들고, 절벽의 오묘함은 환상적이다.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상고대에서 자연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오를수록 발걸음은 느려진다. 여성분이 절경을 지나칠 수 없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위치를 정하고, 사광인 햇빛을 등지지 않게 자세를 고쳐 잡아주고 가로로 사진을 찍었다. 상고대로 꽃을 피운 능선 전체를 찍고자 하는 여성분을 삼 분지 일 지점에 놓고 전신이 나오게 한 컷을, 무릎 위로 나오게 또 한 컷, 마지막으로 상반신만 나오게 세 컷을 찍어 줬더니 너무 잘 찍었다는 말을 몇 차례 하신다. 나중에 또 찍을 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면서. 

 

그분과 나는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능선의 상고대를 계속 찍으며 올라갔다. 때로는 힘겹게 오르는 장면을 담고자 일부러 뒤에 처지기도 했다. 힘든 능선을 올라가면서 찍다 보니 오르는 속도는 늦을 수밖에 없다. 순간마다 변화하는 풍경을 지금 여기서 담지 못하면 영원히 담을 수가 없다. 사진의 정의이고 운명이다. 거칠고 격한 숨소리를 끝내고 평지로 접어드는데 상고대의 모습은 절정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등산객도 많다. 

 

작고 붉은 나무 열매에 상고대가 얼어붙어 수정같이 맑다. 아이젠은 혹시 해서 가방에 넣고 갔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조릿대가 왕성하게 자라는 벌판에 이르는 한라산 서쪽 벽이 마치 한라봉 꼭지처럼 봉긋 솟아있다. 탐방로를 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고, 뒤를 따라가며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그 여성분이 어느 분 사진을 찍어주신다. 나를 보더니 자신을 찍어달라며 스마트폰을 건넨다. 윗세오름이라는 비석과 같이 서 계시기 때문에 이번에는 세로로 전신은 물론 다가가 상반신까지 빠르게 담아 드리고, 나는 계속 윗세오름으로, 남벽으로 향했다. 

 

많은 발자국이 나면서 길은 얼었고 미끄러웠다. 남성분이 아이젠이 필요하다고 여성분의 질문에 답한다. 나는 조심조심 올랐다. 미끄러운 계단이 있으면 줄을 잡고 오르고 내려갔다.

한라산 아래 상고대 역시 엄청났다. 남벽까지 걷고 싶었다. 미끄럽지만 조심해서 걷고 있으니 넘어지지는 않았다. 한라산 서벽 앞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묘하다. 깊은 계곡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반짝였고, 상고대는 한라산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멈추고 또 가다가를 반복하면서 남벽까지 갔다. 한라산의 무너진 부분도 선명히 드러난다. 사철나무 등에는 상고대가 하얗게 빛난다. 

 

성인은 물론 어린아이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지난번 휴게소까지 왔다가 되돌아간 일이 후회스럽다. 남벽 앞 전망대에 보니 반대편은 돈내코에서 올라오는 탐방로였다. 기회가 된다면 돈내코에서도 출발해 어리목까지 가는 길도 좋겠다. 

남벽 전망대에서 고구마와 사과를 먹고 따뜻한 커피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뒤따라온 젊은 연인 중 여성분은 큰 대자로 드러눕는다. 여기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무방하리라. 시원하고 상쾌한 한라산의 기운이 팍팍 섞인 공기를, 바람을 마음껏 마셔봤다. 

 

차량만 없다면 돈내코로 내려갈 수 있겠다 싶었지만, 영실로 내려가기 위해 윗세오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젊은 친구가  이리 가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돈내코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영실 주차장에서 올라온 듯하다. 젊은 여자분이 또 묻는다. 남벽은 멋지냐고. 지금 여기서 보는 모습이 계속되고 상고대는 없다고 답해 줬다. 남벽까지 걷는 모습을 뒤로 보았다.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성분이 거울을 보고 있어 놀랬다. 무안했던 여성은 지금 화장실을 수리하고 있어 남녀 공용이란다.

 

전망대에 오르니 구름은 시시각각 변한다. 변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 셔터는 소음을 낸다. 환상적인 모습을 혼자 보는 게 미안하다. 내려오다가 다시 전망대에서 한라산을 배경으로 셀카 놀이를 즐겼다.

 

점잖은 자세는 물론, 점프까지 하며 오늘의 추억을 카메라에, 스마트 폰에  담았다. 구름은 계속 움직이고, 풍경은 마치 제우스의 구름처럼 변신했다. 시간은 지체됐지만, 풍경을 즐겼다. 하산하기 싫을 정도로 능선은 변했고, 발걸음은 붙잡혔다. 3시 10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5시간이 넘게 윗세오름과 한라산을 구경했고, 상고대를 관람했다. 한라산 능선의 변화는 황홀함을 선물했다.

 

내일은 추자도 올레 18-1코스를 가는 날이다. 그냥 마무리하려니 아쉽다. 결국, 화순 올레 안내소로 가 제주올레 패스포트를 2만 원을 주고 하나를 샀다. 내일은 올레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을 계획이다. 올레 봉사자께 문의하니 그동안 제주올레라는 가이드 책자에 찍은 스탬프를 오려 붙이면 완주증을 준단다. 추자도에서는 올레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고 서귀포 올레 안내 센터에 문의해야겠다. 만약에 어렵다면 내년에 연두랑 다시 걸으면 된다는 판단이다.

숙소 근처 '청춘당'에 들러 5천 원짜리 꽈배기 1 봉지를 샀다. 먹어 볼수록 맛있다. 연두 있을 때 한 봉지 사 먹었어야 하는 데, 아쉽다. 세탁기부터 돌렸다. 밥을 해 먹고 샤워를 했다. 내일은 추자도 가는 날이다. 

 

 

< 청춘당 꽤배기 제주서부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