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지와 성당, 나를 찾아서

[성지순례][디딤길] [디딤길 제9코스] 어농성지에서 죽산성지를 걷다.

by 이류의하루 2022. 5. 27.

아침에 아내에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오늘 성지순례를  떠날까' 하고. 사실 매주 목요일은 함께 농사짓는 날이다. 날이면 날마다 바쁜 봉려리를 하루만이라도 묶어두려고 정한 날이고, 나 역시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농사를 짓는다는 명목이 있어야 농업경영인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의도도 다분히 있다.

 

코스는 여주성당에서 죽산성지 또는 죽산성지에서 어농성지를 고민하다가 어농성지에서 죽산성지로 걷는 디딤길 제9코스를 역으로 걷기로 했다.

 

아침을 서둘러(?) 먹은 뒤 우리는 어농성지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흰 구름은 높게 흘러간다. 오전 열 시 반에 어농성지에서 출발했다. 램블러란 어플을 사용했다.  

 

모가면 두미리 일대를 지나가니 시골냄새가 지독하다. 이천에서도 대형 축사가 특히 많은 동네라 날씨가 눅눅하면 스멀스멀 피어나는 향이 참 지독하다.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잠깐잠깐 냄새가 스쳐 지나가지만 불편하다.  

 

곳곳을 점령한 물류창고는 하늘을 찌른다. 오래전부터 물류창고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이천이 떠오른다. 며칠 전에도 큰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간혹 농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만 극히 드물다. 어디를 지나가던 농사의 흔적, 축사 주변의 냄새 등으로 옛날의 아름다운 풍경의 시골은 아니다. 특히 이천이 그렇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창의도시가가 아니라 창고도시가 이천이다. 

 

안성으로 넘어가는 길 주변에도 물류창고는 많다. 대형 화물차가 특히 많이 지나간다. 좁은 2차선 도로는 인도가 별도로 없어서 걷기가 약간은 두렵지만 운전자의 안전운전을 믿고 걷는다.

 

이천시 경계를 지나 안성시로 내려오면 방초리부터 작은 하천길을 따라 걷는다.  

 

방초초등학교 뒤편 하천을 다라 걷다가 농로로 직진한다.  나이 든 부부가 걸어가니 궁금했는지 동네 어르신이 어디 가냐고 물으신다. 성지순례차 어농성지에서 죽산성지로 간다 하니  여기서 죽산성지까지는 멀다며 어르신도 며칠 전 양지 은이성지에서 산을 넘어 미리내성지를 다녀오셨단다. 멀어봐야 4킬로 정도 남았으니 다온 셈이다.    

 

한평교를 지나 왼쪽으로 걷는다. 좁은 청미천 둑방길인데도 대형 화물차가 지나간다. 하천 숲과 나무에서 이름 모를 새가 노래한다. 바람은 시원하다. 하늘은 참 맑다. 약간 허기가 몰려왔지만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또 걷고 걸었다.   

 

'매산리' 마을에서 잠시 쉬면서 사과와 음료수를 먹고 마셨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땡볕에 앉으셔서 우리를 바라본다. 곁에 묶여있는 개가 낯선 방문객을 향해 위협없이 짖어댄다. 그러나 말거나 사과를 맛있게 먹고 시원한 음료를 마신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천변을 따라 걷는데 뒷 풍경이 아름답다.   

 

좌측에 보이는 곳이 일죽 IC다. 거의 다 왔다. 좁은 농로를 걷는데 뒤에서 화물차가 천천히 다가 온다. 차 폭이 도로 폭과 비슷하다. 포장된 도로를 약간 벗어나 비켜서 있는데 지나가면서 운전하시는 분이 조수석 문을 열고 말씀하신다. '천천히 뒤에 따라가려고 그랬다'며, 웃으며 고개를 숙이신다. 나도 감사하다고 했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웃는다.  

 

죽산성지 표지석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지나 곧장 성지로 가지 않고 휴게소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15킬로 정도 걸어 다소 당이 빠진 상태이다 보니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간절했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 밖으로 나와 먹고 있으니 힘이 생기고 또 행복하다. 

   

최종 목적지 죽산성지로 향한다. 한 10분 정도 걸으니 십자가가 보인다. 

 

천주교 수원교구 영성관이다. 영성관을 건축하는데 아내도 한 달에 5만 원씩 3년을 기부했다고 한다. 

  

성지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 성지순례 스탬프가 비치돼 있다. 

 

오후 2시 28분에 도착했고, 순례 거리는 16.6km이다. 3시간 58분이 걸렸다. 지난번 어농성지에서 단내성지, 단내성지에서 은이성지를 시작으로 이제 17개 코스 중 3개 코스를 완주했다.

 

스탬프를 찍고 성지로 걸어갔다.  구름이 묘한 형태를 띠며 시시각각 변한다. 그 사이로 비행기는 끊임없이 서울로 인천으로 향하는 듯 구름 사이를 지나간다.

 

성지 안은 붉은 장미로 가득하다.

 

아내랑 주모송을 바친 후 천천히 둘러봤다. 경건했고, 아름답다.

 

죽산택시를 호출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책자에 기재된 전화번호가 잘못됐다. 죽산택시를 검색해서 부르니 10여 분도 채 안돼서 택시가 성지로 왔다.

 

일죽 IC로 진입해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이천 IC로 빠져나왔다. 어농성지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택시비는 24,300원이다. 어농성지에서 집으로 향하던 중 신갈리 테르메덴 온천을 지나 이천맛집인 '베이커리 심빵' 앞에 차를 세웠다. 늦은 점심을 음료에 빵 한 조각 먹기로 했다. 심빵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음료와 빵을 주문하니, 음료 두 잔은 서비스란다. 늘 고마운 분이다.  빵과 음료를 먹고 있는 사이에 손님들은 계속 들락날락한다. 맛있는 시골 빵집의 인기가 대단하다.  

 

밖에 앉아 차 한 잔과 빵을 반쪽씩 나눠먹는데 빵이 참 맛있다. 시골 풍경은 아름답고, 바람은 시원하며, 마음은 기쁘고 행복하다. 오늘 하루 역시 의미 있고, 또 소중하다. 

 

< 디딤 길 제9코스 죽산성지 - 어농성지 >

 

2022.5.26. 세 번째 디딤길 제9코스 죽산성지-어농성지를 걷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