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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여기가 좋아

[울릉도여행] 울릉도 하면 성인봉일까, 아니면 독도일까(3일차)

by 이류음주가무 2020. 6. 24.

울릉도 여행 3일 차(2020.6.15. 월)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걱정을 했다. 

과연 오늘 성인봉을 오를 수 있을까 말이다. 지난 3월 '늑막염에 의한 급성 충수염' 수술과 5월 '고주파전극도자절제술(심방세동)' 등 두 차례에 병원신세를 지루하게 젔다. 수술과 시술 부위는 완전히 회복됐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은 남아 있었다. 특히 부정맥과 관련해 우려했다. 다행히 지난밤 몇 차례 꿈을 꿨다. 잠 속에 빠져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미 약도 먹고 있으며, 좋아지고 있다는 확신도 나름 섰다. 

사실 2년 전에는 잠을 설쳤고, 전날 과음해 성인봉 오르기를 포기했다. 

몇 년 전에 한 번 오른 경험도 있어 가봤다는 핑게를 대면서 등산을 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 오기 전에도 친구 한 명(종원)과 우리는 오르지 말자고 약속도 한 터다. 그런데 새벽 4시 반에 기상하니 기분은 상쾌했다. 몸도 가벼웠다. 새벽의 나리분지 특유의 시원함도 등산을 결정하는 데 한 몫했다.

새벽 4시 52분 경 출발했다. 환했다.  

다른 친구는 반바지 스타일이나, 나는 긴바지를 입었다. 혹시나 상처가 날까 두려움 때문이다. 지혈하는데 문제가 있어 조심하라고 의사가 충고했다. 오늘 산행은 '나리분지'를 출발해 '성인봉(986.7m)'을 오르는 코스다. 특히 계단이 많아 오르기를 꺼려하는 코스다. 공군부대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어제 식당 주인은 알려줬다. 오르는데 물도 필요 없다고 했다. 중간중간에 샘이 있으니, 약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그래도 우리는 냉장고에 보관된 물과 고로쇠 음료를 한 손에 들고 출발했다. 군부대 철조망 옆으로 지나갔다. 푸드덕 새가 날아갔다. 숲길은 평탄했고, 수풀은 우거졌다. 

 

나리분지에서 '신령수(약수) 가는 길'이 시작됐다. '신들의 산책로'란다

 

최근에 관광객들에게 핫한 장소로 새롭게 떠오르는 숲길이다. 숲길 내내 울창한 나무 아래 평탄한 길만을 걷는다.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렸고, 산새는 노래했다. 나뭇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숲길에는 천연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된 섬백리향과 울릉국화, 그리고 희귀 보호식물이 자생한다고 홍보물에는 적혀있다. 아직 피지 않아 그 향이 어떤지 알 수 없었고, 맡을 수도 없었다. 신령수까지의 숲길은 같은 환경으로 약 1.7km 정도 계속됐다. 중간중간 하늘이 보였다. 구름은 하늘을 수놓았고, 잎은 짙어갔다. 

신령수가 나타났다. 

 

신령수


약수였다. 한 잔을 마시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점시 약수를 마시며 숨을 가다듬었다.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지금까지 모두가 만족한 표정들이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걱정은 기우였다. 

신령수를 조금 지나자, 본격적으로 계단 오르막이 시작됐다. 

 

산행 시 계단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 역시 동네 효양산이나 설봉산을 올를 때 계단이 있으면 돌아간다. 누군가 성인봉까지 계단이 2,700여 개나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하나, 둘 세면서 올라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쉬다가 오르다가를 반복했다. 땀은 진하게 흘러내렸지만 멈추면 곧 시원해졌다. 숲 속으로 햇빛이 은은하게 내렸다. 나무와 풀은 더욱 빛났다. 바람도 불었다. 흔들이는 나뭇잎 소리가 마치 폭포에서 물이 낙하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소나기가 몰려왔다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바람은 요란했지만 시원하고 깨끗했다.

 

계단 중간쯤 나리분지 전경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잠깐 휴식했다. 나리분지를 감싸 안은 미륵산, 형제봉, 깃대봉, 알봉 등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조금 더 계단을 오르니 능선이 나타났다. 

 

능선은 흙길이라 걷기가 편했다.

 

풀 등을 헤치며 가도 불편이 적었다. 중간중간 오래된 나무가 경이로운 자태로 세월의 길이를 뽐냈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정상 300m 아래에 다시 약수가 나타났다. 한 잔 씩 마셨다. 아침의 시원한 바람과 차가운 물은 흠뻑 젖은 땀을 한 순간 얼게 했다. 약수는 정말 시원했고 또 달콤했다. 이런 깨끗하고 시원한 약수를 언제 어디서 다시 마실 수 있을까 생각했다. 큰 페트병이 있다면 가득 담아가 연두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다. 

막바지 계단은 경사가 가파르다.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쉈다. 힘이 들었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을 등지고 오르고 또 올랐다. 고사리와 비슷한 '고비' 소리도 나뭇잎이 부닥치는 소리처럼 요란하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드디어 '성인봉' 정상 20m 전까지 도착했다. 거친 숨을 진정시키면서 한 발 두 발 천천히 정상을 밟았다. 

 

성인봉(06:52)이다.

오른 시간을 계산해보니 정확히 두 시간 걸렸다. 계단이 몇 개인지는 유의미하지 않다. 동쪽에는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다. 바다도 반짝거린다. 아래서 올라오는 바람은 정상 주변 나뭇가지를 몹시 흔든다. 바람소리 인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인지 구분은 중요치 않다. 성인봉의 청량한 공기에 크게 가슴을 열어본다. 머리는 더욱 명징해졌다.

 

우린 모두는 정상에 올랐고, 모두의 기분은 최고였다. 

 

단지 친구 5명만 정상에 있었다. 울릉도가, 성인봉이 우리 영역으로만 느껴졌다. 정상 등반 기념사진을 몇 컷 담았다. 휴대폰으로 담은 파노라마 사진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렇게 20여분 정상 정복의 기분을 누리고 있자니 젊은 친구 한 명이 큰 배낭을 메고 올라왔다. 우리처럼 나리분지에서 온다고 했다. 우리보다 빠른 한 시간 반 걸렸다고 했다. 그를 뒤로하고 우리는 먼저 하산(07:12)했다.

오르기는 무척 힘들었지만 하산은 쉽고 편안했다. 

 

모두 뿌듯한 기분으로 약간은 긴장감이 풀어진 상태로 내려왔다. 누군가와 나는 주의를 집중하지 않은 탓에 그만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다행히 카메라는 이상이 없었다. 바로 일어나 생각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로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한다고. 삶이 그런 거 아니냐고. 조신 조신 숲과 숲길을 살피고, 새소리를 들으며 나리분지로 내려왔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됐다. 샤워를 하지 않고 식당(08:50)으로 먼저 직행했다. 아침메뉴로 백반을 주문했다. 백반도 여러 가지 산나물이 나왔다. 부족하면 더 갖다 주었다. '나리촌식당'의 풍요로운 인심을 읽을 수 있었다. 

샤워 후 짐을 정리해 나리분지를 출발(10:45)했다. 목적지는사동항이다. 

 

오늘은 독도 가는 날이다. 지난 여행 때는 아예 코스에 넣지 않았었다. 나도 독도는 처음이었다. 나리분지 나오는 길목에 새로 설치한 전망대에 올랐다. 나리분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군부대가 보이고, 식당이 보이고, 또 민박집도 보였다. 분지를 둘러싼 깃대봉 등 전경을 두 눈과 가습에 꼭꼭 담았다. 다음에 또 오면 여기서만 민박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동항 가는 길에 도동항 인근에 있는 마트에 들려 간식을 준비했다. 점심은 건너뛰고 배 안에서 먹을 물과 초코파이, 바나나, 과자 등을 준비했다. 사동항에 도착(12:00) 하니 좀 한산했다. 티켓팅을 했고, 성현이가 사준 멀미약을 한 병 마셨다. 여객선터미널에서 태극기 등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독도 방문을 기념해 인증 사진을 찍을 때 꼭 필요해서다. 승선 시간이 되니 관광객들로 터미널은 가득했다. 12시 반부터 승선은 시작됐다. 

 

여객선은 정확히 한 시에 출발했다. 

출발부터 약간 파도가 거칠었다.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혹시나 하며 걱정했다. 독도에서 무사히 접안하기를 단지 빌뿐이다. 3시 조금 안돼서 독도항에 도착했다. 여객선은 몇 차례 접안을 시도했다. 접안이 가능하다는 투의 방송이 나와 환호성을 울리며 박수를 쳤지만, 결국 접안에는 실패했다. 관광객들은 아쉬움을 짓게 표현하며 낙담했다.

여객선이 접안에 실패하면 약 20분 동안 독도 둘레를 천천히 순항한다. 오히려 독도 전체를 조망하고 관람하기에는 더 안성맞춤이다. 다만 승선 인원이 너무 많다 보니 갑판 위로 오른 많은 사람들로 인해 사진 촬영하기는 불편했다. 독사진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진을 찍어주고 자리도 양보하면서 독도를 보고 또 봤다. 

 

여객선이 독도 주위를 순항해서 그런지 갈매기의 비행이 특히 요란스럽다. 

 

독도 전체를 카메라로 촬영하기는 불가능했다. 친구가 스마트 폰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겨우 담았다. 몇 컷을 담은 다음 갈매기에 렌즈를 맞췄다. 가까이 다가 오는 놈, 높게 비행하는 놈, 한 놈, 두 놈, 네 놈 등 다양한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이 경쾌했고, 아름다웠다. 내가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면 하고 실현 불가능한 가정도 꿈꿔봤다. 그렇게 20여 분 이상 독도 주변을 출렁거리면서 유람한 후 여객선은 다시 울릉도(15:18) 사동항으로 빠르게 향했다. 

사동항에 도착(17:00) 후 오늘 숙소인 '바닷가하얀펜션'으로 향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오늘 만찬은 오징어회다. 앞서 말한 지인이 이곳까지 배달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인근 '안동식당'으로 향했다. 뷔페식당으로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오징어회는 여섯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마치 숙성된 에일맥주처럼 오징어회 식감은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찰지면서 특유의 오징어 맛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오징어회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데면데면 먹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오늘 오징어 회는 입안에서 알맞게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맥주 한 병을 마시며 먹다 보니 회가 부족했다. 더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민했지만 또다시 지인에게 주문할 수는 없었다. 식사는 끝이 났다. 

숙소로 향하는 대신 일부는 낙조를 구경(19:00)하기로 했다. 

 

어제 돌았던 서면 쪽으로 향했다. 거북이바위에서 보기는 늦었고, 파도도 매우 거칠었다. 조금 더 달렸다. 아마 '남서일몰전망대'였을 터다. 해가 막 지고 있었다. 아름답고 황홀했다. 우리 일행이 아닌 누군가도 이 거룩한 일몰 장면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담고 또 담았다. 울릉도에서 본 낙조는 너무 진했다. 마치 핏빛으로 곱게 붉게 물든 풍경화 같은 모습이었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배경을 닮은 듯했다.

 

정복이와 종원이가 밤낚시를 한다고 했다. 카톡으로 회 뜬 장면을 단톡 방에 올렸다.  

나는 그들이 낚시하는 제방에서 내렸다. 자칭 어부(정복)란 사람이 겨우 작은 물고기 5마리(정복 1, 종원 4)를 잡아서 둘이 먹었단다. 옆에는 칠순 노모를 모시고 낚시를 즐기는 모녀 일행이 있었다. 꽤 많이 잡았다. 재미있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들은 이 지금 순간이 가장 행복했을 터다. 낚시를 마치고 숙소로 걸어갔다.

민박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횟집(20:00)이 보였다. 

청소 등 정리하는 걸로 봐서 마무리 중인가 보다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오징어 회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능하니 들어오란다. 먹을 데가 없어 지인에게 주문해 식당에서 먹었는데 바로 옆에 오징어 횟집이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여기도 3마리에 만원이란다. 셋(정복, 종원, 나) 이서 1인분, 1인분, 또 1인분 주문하다 보니 아홉 마리 3인분을 또 먹었다. 오늘은 맥주 1병도 더 마셨다.

 

파도소리는 점점 또렷하게 들렸다. 옆방에서 코 고는 소리도 그제처럼 났다. 경적을 울리며 차도 지나갔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그 사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