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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여기가 좋아

[울릉도여행] 행남해안산책로를 걷고, 맛 본 따개비밥.(마지막)

by 이류음주가무 2020. 6. 27.

울릉도 여행 4일차(2020.6.16.화) / 마지막 날

묵호항 여객선은 오후 한 시에 떠난다.

 

울릉도 여행 마지막 날이다. 당초 계획은 숙소에서 빈둥빈둥 대며, 오후 한 시까지 출항 시간을 기다리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첫날 저동에서 행남등대(도동등대)까지 트레킹을 못한 게 아쉬워 오늘 도동에서 행남등대까지 가자고 제안했다. 세 번이나 울릉도에 왔지만 도동에서 저동으로 이어지는 '행남해안산책로' 일주를 한 번도 못했다. 이번 여행 첫날 오후 일정으로 일주 계획이 잡혀있었으나 오징어회에 빠져 실행하지 못했고, 또 일부 구간을 통제해 공사 중인 이유도 현실적인 핑곗거리로 작용했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어김없이 기상했다. 

 

몸과 기분은 상쾌했지만, 가슴속은 진한 아쉬움이 남는 날이다. 씻지 않고 도동항으로 출발(05:20)했다. '행남해안산책로'를 트레킹 하기 위해서다. '행남 해안산책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 산책로란다. 도동항에서 저동 촛대바위까지 가는 길은 변화무상하다. 기암절벽과 천연동굴의 곁을 따라 바위와 바위 사이를 잇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울릉도의 포구와 해안을 발끝으로 누리며 다니는 코스라고 소개됐다. 강호동의 '1박 2일' 프로그램에도 방영됐다. 도동 여객선터미널에서 행남등대까지는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촛대바위까지는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오후 1시에 사동에서 묵호항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을 예약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충분했다. 도동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갈매기 떼가 반긴다. 해는 떴지만 기암절벽에 가려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도동항은 울릉도의 관문이다. 어머님 품처럼 아늑한다. 교통이 늘 복잡하다. 주요 관공서와 학교 등이 이곳에 몰려있다. 포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맞는 항구도 도동항이다.

도동항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행남해안산책로는 출발부터 기암절벽이다. 푸른 파도는 발 아래에서 출렁이고, 먼 하늘도 푸르고 맑았다. 어린 갈매기 한 마리가 둥지에서 나와 우리 앞길에서 서성댄다. 걱정스러운 어미 갈매기가 낮게 비행하며 크게 울어댄다. 우리가 새 몰이(?)하는 모양새다. 얼른 비껴 앞서갔다. 여기서도 작년에 함께 살았던 짝을 찾기 위한 갈매기들의 비행과 절규(?)는 요란하고 애절하다. 바위마다 짝을 찾은 갈매기들은 흥분했는지 점점 소리는 거세지고 높아만 갔다. '용궁'에서는 아침부터 음악이 흘렀다. 2년 전에는 여기서 멍게 해삼을 안주로 한 잔을 마셨던 식당이다.  

 

해안 산책로는 안전하게 잘 정비돼 있었다. 

 

오르막 내리막 계단이 길지 않아 힘들지 않다. 가파른 계단도 있었지만 거리는 짧았다. 끝없는 바다 풍경이, 절묘한 해안 풍경이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에도 비유된다고 했다. 고흐와 헤어진 고갱이 아를을 떠나 살았던 '타히티' 셈엔 가보지 않아 모르겠다. 해안길이 멋지다는 평가는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렇게 수다 떨며 한 시간을 걸어 '행남등대'에 도착했다. 행남등대에 도착하기 전 저동항과 촛대바위 전경이 잘 보이는 지점에서 친정이 이천인 사람도 우연히 만났다. 가족과 함께 여행 온 분들이다.

그동안 반대 편에서만 행남등대를 바라봤다. 

 

행남등대에서 저동항의 촛대바위를 본 적은 없었다.

 

도동항처럼 아침 항구는 아늑한 어머니 품 같았고,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웠다. 행남등대 전망대로 올라갔다. 여기서 보이는 지역도 마찬가지로 저동 항과 촛대바위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파도는 잔잔하다는 느낌이다. 저동 항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맑다.   

 

저동항과 촛대바위

기념사진을 재미있게 찍었다. 휴대폰 기능 중 파노라마 기법을 활용한 사진이다.   

 

마침 머리 위 하늘에는 구름도 예쁘게 지나간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의 형태를 나는 특히 좋아한다. 사진에 구름이 없으면 소중한 사물을 잃은 듯 허전한 사진이 된다. 여기서 한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며 쉬고 싶고, 시원한 바람을 호흡하며, 오랫동안 힐링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행남등대를 뒤로하고, 왔던 길로 다시 도동항으로 출발했다. 

이미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등 뒤로 하며 도동항으로 걷고 또 걸었다. 오묘한 절벽과 푸른 바다, 그리고 고기잡이하는 배, 누군가 걷는 장면은 동시에 숭고하다. 나를 찾기 위한 구도의 순례길 같은 풍경이다. 전부터 꿈꾸는 소망 하나가 있다. 딸아이가 몇 년 전에 홀로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을 순례하는 꿈이다. 비록 여기는 바닷가 순례길이지만 그 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느낌이 그렇다는 의미다.

 

도동항에 도착했다.

 

포항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도동항으로 출발한 여객선이 막 도착한다. 여객선 항구에서 낚시하는 몇 몇 관광객은 여행선이 도착해도 무심히 세월을, 고기를 낚는데 여념이 없다.      

 

두 시간을 산책하니 강한 허기가 발동했다. 

도동항 바로 옆에 오래된 식당 하나가 있었다. '전통맛집 쌍둥이 식당'(울릉읍 도동길 34, 054-791-2737)이다. 전통 맛집이고 오래됐다면 맛도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을 터, 그 판단을 믿고 우리는 농어민장터 2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어린아이 둘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쌍둥인가요' 물으니 어미가 쌍둥이란다. 그 애들에게 물어봤다. 

'홍합밥과 따개비밥이 있으면 너희들은 어느 밥을 먹을 거니' 하고.  

두 어린이 모두 '따개비밥을 먹을래요'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따개비밥(15,000원)을 주문했다. 반찬은 정갈했고, 맛은 짜지 않았다. 따개비밥이 나왔다. 약간 양념을 한 후 밥을 정성스럽게 비볐다. 따개비밥은 이번 울릉도 여행에서 처음 먹어보는 밥이다. 맛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식당 안 첫인상이 단체 손님을 주 타깃으로 하는 식당 같다고 생각했다. 반찬과 밥맛을 맛보니 주인장의 정성과 손맛이 대단하다. 

주인 할머니 말씀도 귀담아 들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요즘에야 겨우 손님을 받는다고 했다. '이천쌀'은 명성과 가격에 비해 맛이 우월하다는 평을 내릴 수 없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장사의 기본인 초심도 잃지 말아야 하고, 또 잃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족한 반찬을 요구하면 계속 채워졌다. 결국 반찬이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

 

아침을 참 맛있게 먹.었.다. 

배는 부르고, 시간은 넉넉하다.  다음일은 '커피 한 잔 하자'라고 했다. 


울릉도에서 카페 한 번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쉬웠다. 둘러보니 근처 호텔 1층에 'COFFEA'란 카페가 있었다. 성현이가 커피를 샀다. 또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수다를 떨었고, 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며, 구수한 냉커피(아메리카노 아이스)를 마셨다. 누군가(정복)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먼저 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뭔가 재미있는 상황이나 특별한 발견이 없나 주위를 둘러봤다. 

 

'오징어먹물빵 판매점'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열려있던 문으로 들어가 서성대니 포장하고 있던 주인장이 하나 시식해보란다. 맛은 그랬다. 달지는 않았지만 쫀득하니 식감이 좋았다. 그리고 계속, 또, 자꾸, 더 먹고 싶어 졌다. 결국 한 상자를 구입(12,000원)했다. 친구들에게도 먹어보라며 호객행위를 했다. 모두 한 상자 이상씩 구입했다. 오징어먹물빵 판매점은 울릉도에서 5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가 정성을 가득히 담아 만든다는 '오브레'(울릉읍 도동길 53, 054-791-5008)다. 전국 택배까지도 가능하단다. 울릉도 여행에서 예기치 않은 발견으로 즐거움을 선사한 가게가 '오브레'다. 울릉도 도동항에 간다면 오브레의 '오징어먹물빵'을 반드시 맛보시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일행은 사동에 있는 '바닷가하얀팬션' 숙소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했다. 렌터카 키도 무사히 반납했다. 발권을 했고, 성현이가 사준 멀미약도 한 병을 마셨다. 승선(12:25)했다. 사동항(13:00)을 떠났다. 1층 중간 좌석에 앉아 창 너머로 멋진 울릉도 풍경을 더 못 본 게 아쉽다. 흔들리는 여객선은 거친 바다를 가로지르며 묵호항으로 향했다. 연두랑 다시 여행 오겠다고 약속하며 눈을 감았다.

우리를 태운 여객선은 오후 4시 쯤 묵호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불편함도 없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 우선 근처 맛집을 찾았다. 울릉도에서 먹지 못한 물회가 나는 먹고 싶었다. 검색해보니 해안가에 있는 '동북횟집'이 눈에 띄었다. '묵호 논담길'옆이다. 물회는 먹을 만했다. 묵호를 출발(17:00)했다. 횡성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참 좋았다'는 네 음절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다.  

'내수전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본 '관음도와 죽도'의 비경과 운무, 나리분지와 신령수 가는 길의 시원한 원시림, 가파른 계단을 올랐던 성인봉 등산. 해안가 절벽에 자리 잡은 예림원의 활짝 핀 수국, 울릉천국의 접시꽃과 구름, 이장희 선생과의 10여분 간 대화, 독도 순회와 갈매기의 아름다운 비행, 오징어회, 따개비칼국수와 따개비밥, 산채정식, 씨껍데기막걸리, 오징어먹물빵과 호박엿 등, 특히 여행을 기획하고 추진한 정복이가 고마웠고, 즐겁게 동참하고 따라준 개발족구팀원(성현, 종원, 재홍), 또 감사하다.

인생은 길지 않다. 그 여행길 역시 길지 않다. 특히 나이 60을 넘긴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다. 오늘이 가장 젊고 또 제일 건강하다. 다가올 인생의 변화를 예상하면서 카르페 디엄(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며 먹고 마시고, 놀고 관람하며 사소한 수다로 보낸 3박 4일은 참 좋았다. 다음 여정을 준비하고 기대하고, 또 반추하며 나는 기록했다.

* 다음 계획은 1박 2일 '서울 야간성곽투어'와 3박 4일 '홍도 등 섬 여행'이다. 꼭 많은 친구가 동참해 진행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