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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아보니

[제주한달살이] 15일 차 / 연두, 한라산을 오르다.

by 이류의하루 2021. 9. 9.

제주한달살이 15일 차 / 2021.3.10.(수) 

 

연두, 한라산을 오르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 연두랑 한라산에 등반한다. 날씨 때문에 일정을 몇 차례 변경하면서 예약했단다. 몇 년 전 다른 일행과 한라산에 오르려고 왔었으나, 내가 자신이 없어 일부러 다른 핑계를 대며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나는 지난해 친구들과 한 차례 올랐었고, 연두는 집 주변에서 지속적인 걷기 운동으로 준비를 해왔다. 이번에는 자신 있게 오르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예약 시간이 8시 이전이라 지난 밤에 준비한 물건을 등산 가방에 넣고 서둘렀다. 하지만 이미 성판악휴게소 주차장은 5시부터 예약한 등산객의 차량으로 만원이다. 결국은 10㎞ 떨어진 제주국제대학교 주차장에 주차 후 버스를 타는 대신 택시를 잡아탔다. 입산 예약 시간보다 조금 늦었지만, 관리자는 주차문제로 늦어지기 때문에 30분 정도 늦어도 입산 가능하다고 한다.

8시 10분경 출발했다. 성판악 등산코스는 완만하고 다소 지루한 길이지만 처음 한라산을 등산하는 등산객에는 적당한 코스다. 처음에는 경사가 완만하고 공기조차 서늘하고 신선해 걷기에 적당했다. 연두 역시 이 정도는 하면서 힘들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구력을 위해 많이 걸었다는 연두는 걸을수록 자꾸 처지고 쉬고 가자는 사인을 보낸다. 연두의 체력에 맞추어 나는 걸었다. 쉴 때마다 어제 준비한 음료와 과일을 꺼내놨다. 

 

진달래 휴게소의 도달 시간은 11시 이전으로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 우리는 컵라면을 하나 꺼내 담아온 온수를 넣어 둘이 맛있게 먹었다. 

 

그 이후 코스는 눈길이 빈번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완전히 녹지 않아 걷기가 불편하고 위험했다. 그래도 따듯한 날이나 눈이 촉촉하고 물기가 가득 배어 있어 위험할 정도로 미끄럽지는 않았다. 아이젠 없이도 걸을 만했다. 오를수록 걱정은 됐다. 내려올 때 미끄러지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오를수록 하늘은 청명했다. 마른 주목과 산 주목이 한라산 능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했다. 멀리 보이는 오름은 운무인지 구름인지 길게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귀포 쪽은 불투명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연두와 나는 정상에 올랐다.

 

한라산 정상 표지 앞에는 정산 등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래도 연두는 줄을 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으나, 나는 천지연 쪽이 더 궁금했고, 천지연을 찍었다. 정상 표지판 옆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그들을 몇 컷을 담았다. 연두가 기다리다가 올라왔다. 자리에 앉으라며 측면에서 정상 표지판을 배경을 사진을 찍었더니, 오히려 기다렸다가 표지 앞에서 촬영하는 일보다 훨씬 나았다. 

 


우리는 인근으로 이동해 남은 음식을 먹었다. 달콤했다. 콜라비도 좋고, 오메기떡도 맛있다. 관리소에서는 반복해서 2시 이전에 하산하라고 방송한다. 연두와 나는 한 시 반에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더 위험했다. 눈길은 질퍽했지만 미끄러웠다. 아이젠 한쪽씩 발에 걸쳤다. 발등은 아팠지만, 넘어지지 않고 미끄러지지 않고, 다치지 않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눈길은 신고 눈 녹은 산길은 벗기를 반복하면서 지루한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왔다. 연두도 지루하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결국 안전하게 오후 5시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뿌듯한 표정을 짓는 붉은 연두의 얼굴이 예쁘다. 

 


성판악휴게소 주차장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국제대학교 주차장 앞에서 하차했다. 차를 몰고 천천히 표선리로 향했다. 연두와 몇 년 전에 한라산 등반하려다가 핑계를 대며 포기했었다. 그만큼 연두의 첫 등반은 기대가 컸다. 무사히 오르고 내려온 오늘이 참 다행이고 함께여서 즐거웠다.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 후 세탁기를 돌렸다. 우리는 표선항을 향했다. 오늘은 셋이 제주 흑돼지 먹는 날이다. 흑돼지 맛집으로 유명한 ‘칠돈가’로 향했다. 바닷가를 셋이서 걷기도 참 오랜만이다. 다연이가 어렸을 때는 종종 걸었지만 말이다. 

‘칠돈가’에 도착했더니 오늘은 휴무란다. 둘째, 넷째 주가 휴무다. 할 수 없이 다연이가 대학생 기자단 시절에 제주에 와 먹었던 ‘표선어촌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갈치조림을 잘하는 맛집이다.

 

식당 안에는 손님이 가득했다. 갈치조림을 주문했고, 청보리 막걸리 하나를 추가했다. 물론 가파도는 물론 제주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아니다. 청주에서 제조했다, 갈치조림에 청보리 막걸리가 잘 어울리는 조합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연두랑 함께 한라산을 올랐고, 다연이와 같이 셋이서 제주에서 처음 방문한 맛집에서의 만찬이다. 이 좋은 날, 모든 게 아름답고 맛있고 사랑스럽고, 또 행복하다.


< 제주한달살이 소소한 팁 >
- 한라산 탐방예약은 매월 1일부터 다음 달 이용에 대한 예약을 신청할 수 있으며, 다음 달 말일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 한라산은 당일 탐방을 원칙으로, 일몰 전에 한라산이 완료될 수 있도록 계절별 입산 시간을 정해 통제하고 있다.
- 새벽에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 외에는 제주국제대학교 주차장에 주차하고 버스를 이용하시라.

- 표선항에서 흑돼지고깃집으로 칠돈가를 많이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