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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11/25, 4일차 올레11코스를 걷고, 금오름을 오르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11. 25.

11/25 제주한달살이 4일 차 / 올레11코스를 걷고, 금오름을 오르다.

정말 오랜만이다. 방 한 칸에서 아들과 함께 셋이서 나란히 누워 잔 적이. 어렸을 때 방 한 칸짜리 지하방에서 살림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기억이 거의 없다. 아침에 미역국과 밥을 지었다. 연두는 맛있다며 잘 먹는데, 아들은 조금 싱겁다며 간장을 추가한다.

오늘은 연두와 올레 제11코스를 걷는다. 올레 제11코스는 모슬포항 하모체육공원에서 무릉외갓집까지 17㎞가 조금 넘는 거리다. 아들은 우리를 출발지점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도착지점에서 우리를 픽업하기로 했다. 나머지 시간에 아들은 자유시간을 보내는 일정이다.

아홉 시 반쯤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올레 안내소에 들어가 자원봉사자와 잠깐 수다를 덜었다. 연두는 올레 여권과 스카프를 구입 후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출발했다. 연두는 처음으로 올레길 걷기에 도전한다. 해안가를 조금 지나자 연두가 코스에 의문을 품는다. 해안가 걷는 길이 아니냐고. 나는 처음 출발지점 외에는 밭이나 산(곶자왈)을 걷는다고 이해를 시켰다. 

 

모슬포항에서 영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에게 방어축제장은 어디냐고 물었다. 항구 쪽을 가리킨다. 해안가를 지나 밭으로 진입한다. 연두가 밭에 있는 작물이 콜라비라며 반가워한다. 사실은 브로콜리였다. 한 시간 조금 지나니 공동묘지가 있는 모슬봉 정상에 올랐다. 산방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간단히 간식을 먹고 있자니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삶의 무게도 가볍지 않음을 깨닫는다. 

 

모슬봉 정상에서 내려가자 성당 묘지가 나왔다. 묘지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12시경 정난주마리아 성지에 도착했다. 성지를 천천히 돌며 기도했다. 연두가 꼭 와보고 싶었던 성지였다. 

2차선 도로를 따라 다시 걸었다. 차량의 통행은 한산하다. 11㎞ 지점인 신평4거리 직전 체육공원 정자에 앉아 오메기 떡 등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신평 곶자왈을 지나는데 도토리가 지천이다. 곶자왈 숲 속에는 다양한 사연이 가득했다. 잊혀가는 사연을 생각하며 걸었다. 최고의 걷기 좋은 순례길 같은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 입구에는 숲길 조성 평가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게시판이 설치돼 있었다. 


다시 버스정류장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두 시 반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 후 다시 출발했다. 두 시 40분경 목적지인 무릉기왓집에 도착했다. 5시간이 걸렸다. 보통 올레길은 3㎞ 기준 1시간을 잡는다. 늦은 걸음은 아니다. 연두도 힘겨워하지는 않았다.

 

아들은 미리 와서 차를 마시며 노트북을 꺼내 업무 중이다. 여기까지 와서 업무를 보는 모습이 애잔하다. 무릉외갓집은 농업법인으로 농산물을 매달 월간지처럼 주문받아 배달한다. 매장에서도 차를 마시고 제주특산품도 구매할 수 있다, 책도 있어 작은 도서관 역할도 한다. 손님이 다 읽은 책을 농업법인에 기증할 수도 있다.

제주 서쪽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오름이 금오름이다. 한 연예인이 이 오름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난 후 젊은이의 성지가 됐다고 들었다. 주차 후 천천히 오르니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정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한라산은 물론, 성이시돌목장, 한림읍 등 서쪽의 풍광이 압권이다. 주변에 정신을 팔다가 그만 나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어르신 조심하셔야지요’ 하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리는 듯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빛은 장관이다.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오름 바닥에 물이 고이는데, 오늘은 거의 바닥이 보인다. 해무 등으로 맑지는 않지만,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는 젊은이들로 오름은 가득하다.

 

성이시돌목장으로 이동했다. 우유부단이란 카페에서 우유를 샀다, 1961년에 건축됐다는 지붕이 곡선 형태의 이색적인 '테쉬폰' 방식의 건축물을 구경하고 새별오름 인근에 있는 나 홀로 나무가 있는 농장으로 이동했다. 두 오름 사이에 외롭게 서 있는 나 홀로 나무 역시 제주의 성지다. 한 그루 나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저녁 시간이 다가와 검색 후 ‘연리지 가든’으로 이동했다. 나 홀로 나무 인근에서 18㎞ 정도 떨어져 있었다. 차를 몰고 갔지만, 정말 ‘연리지 가든’으로 가는 길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한적하다. 여섯 시 전에 ‘연리지 가든’에 도착했다. 예약 없이 갑작스레 입장으로 고스톱 치던 분들이 후다닥 음식 준비 모드로 전환했다. 고기는 약간 덜 익은 상태에서 양념 없이 먹어야 제맛이란다. 정말 육즙이 가득하다. 한라산 소주 1명도 마셨다. 아들이 계산했다. 숙소 인근에 있는 ‘꽃섬피자’ 집에 들렀지만, 오늘은 휴무란다. 

 

 

저녁 일곱 시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잠잘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바람은 마른 갈대를 흔든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