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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6일 차 / 본태박물관 호박, 보말 칼국수

by 이류음주가무 2021. 5. 8.

[제주한달살이] 6일 차 / 본태박물관에서 본 호박, 보말칼국수가 좋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제주에 온 지 벌써 일주일 지났지만, 날씨가 쾌청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서귀포 날씨가 원래 그렇다고 숙소 주인장은 당연하듯 말하지만 나는 아쉽긴 하다. 비 오는 날은 실내 공간을 찾을 일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제격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가고 싶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중 하나가 본태박물관이었다. 

 


본태박물관은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이다. 그의 건축물을 탐방하는 일정도 흥미롭다. 그래서 이번 제주한달살이에 그가 설계한 건물인 유민미술관도 관람할 예정이다. 오늘 첫 목적지는 본태박물관으로 정했다.

 

본태박물관은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타다오’의 작품이다. 그는 ‘노출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하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건물에 빛과 물을 건축요소로 끌어들여 자연과의 통합’을 도모하는 건축가다. 본태박물관 역시 ‘건축 공간이 미학적인 관점을 넘어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건축환경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건물이란다.

 

본태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남달랐다. 곳곳이 공사 중이고, 특히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한 산길이라 비상등을 켜고 저속으로 주행했다. 게다가 초보운전자가 앞에서 천천히 달리고 있어 답답했다. 가시거리가 짧아 추월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도착한 본태박물관은 안개 속에서 안개처럼 희미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모양새다. 입장료는 2만 원으로 다소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건물 하나 제대로 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행히 ‘빛의벙커’전을 관람했기 때문에 20%를 할인해 준다.

 


처음부터 건물에만 관심을 두었지 소장품에는 관심을 덜 뒀다. 그런데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기 시작하다 보니 유명한 ‘제임스 터넬’관과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관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분이 됐다. 아쉽게도 ‘제임스 터넬’관은 코로나19로 임시로 운영을 중단해 볼 수 없었다. 

제일 먼저 비를 맞으며 루프 탑으로 올라갔다. 문자 LOVE’란 작품이 옥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서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다. 스틸로 제작된 작품은 반듯하지만 약간 충격을 가한 듯 부드럽게 구김을 주었다. 혹시나 사랑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주변 풍경을 살폈다. 빗속의 자욱한 안개가 탁 트인 시야를 방해했다. 제5전시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을 보았지만 잠정 중단된 ‘제임스 터넬’ 관이 내 생각을 붙잡는다. 

 


제4전시관에는 전통 상여가 전시돼 있었다. 남해에서 망자가 저승으로 갈 때 맸던 상여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유년 시절에는 두렵고 무서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이 들고 죽음 또한 수없이 목격한 터라 이제는 세심히 눈길을 준다. 그러다 보니 망자를 배려한 형태가 상여 곳곳에 표현된 정성이 눈에 들어온다. 죽음 또한 끝이 아닌 다른 세상 즉 저승으로 건너가 산다는 내세관을 반영한 선조의 지혜와 희망이 보일 듯하다.

 

뭐니 뭐니해도 오늘의 백미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다.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호박의 반복적인 문양을 작품에 담았고, 작품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과천 현대미술관 야외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지만, 실외 설치작품이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본태박물관에는 실내 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고, 화려한 조명과 공간이 작품의 미적 형태와 조형성을 극대화했다.  

 

        
특히 혼자 2분간 감상할 수 있는 ‘무한거울방’은 신비로운 조명의 극치를 보여준다. 일행이 없어서 혼자 감상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나는 그 2분 동안 독방에서 펼쳐지는 빛 방울의 오묘하고 환상적인 세계에 오롯이 녹아 있었다. 코로나가 안겨준 행운이랄까?

 


제2전시관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구조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복도를 따라가는 형태다. 그런데 그 끝에는 덩그러니 방석 하나만 놓인 방인 명상관으로 집중됐다. 명상관에서 혼자 조용히 앉아 있다면 온갖 고민과 근심 등은 눈 녹듯 사라지리라. 

 

‘살바르도 달리’의 시계,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 등 세계적인 작가의 예술품을 감상하는 등 눈 호강은 이어졌다. 

 


‘백남준’ 관도 감상했다. 특히 배가 곧 터질 듯한 빵빵한 금붕어가 있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금붕어가 안쓰럽다. 

 

결국 아트숍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엽서와 소품 등을 구입하고, 인근에 있는 ‘방주교회’로 이동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방주교회는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설계한 교회다. ‘인공 수조를 조성해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 모습이 푸른 잔디밭,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려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로 유명하다. 비는 오고 안개도 끼어 있어 설명대로 교회 외양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교회 내부는 절제된 미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신앙의 숭고함과 신성함을 그대로 담아냈다. 나는 잠시 성호를 그었다. 밖에서 보는 모습은 방주를 닮았다고 한다.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본태박물관과 방주교회를 본 후 교회 앞에 있는 ‘올리브 카페’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은 한참 지난 시간이다.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했다. 조금 후 토스트 한 조각에 연양갱 으깬 것 조금, 그리고 치즈 작은 조각이 접시에 보였다. 먹고 마셔도 부족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무 사진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고, 또한 혼자 이렇게 즐기자니 연두 생각도 불현듯 났다. 창가 테이블에 느린 엽서가 보였다. 6개월 뒤에 받을 수 있는 엽서로 천 원이란다. 아주 짧게 글을 적었다. 잠깐 눈물이 핑 돈다. 한 시간을 그렇게 혼자 보냈다. 

 

다음 행선지는 곶자왈이다. 그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각관이 떠올랐다. 방향을 틀어 가보니 수리 중이다. 관광지도에 표시된 관광지 역시 운영 여부를 늘 확인해야 한다. 내 불찰이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입장료 3천 원)에 도착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빗줄기는 조금 약해졌다. 곶자왈은 제주 자연의 숨소리가 온전히 남아있는 숲이다. ‘화산 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지역'으로, ’곶‘과 ’자왈‘의 합성어란다. 즉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며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이란다.

 

늦은 오후에 비가 내리는 중이라 탐방객은 거의 없었다. 가장 긴 코스는 일부 통제돼 있어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로 걸었다. 원시림 가득한 숲속을 홀로 걷는 기분은 날씨처럼 서늘했다.

 

숲 속에는 봄의 정령이 노래하는 듯했고, ’제주백서향‘의 향긋한 향기가 원시림을 가득 채웠다. 하얗게 핀 ’제주백서향‘은 숲길 곳곳에서 비록 비는 내리지만 나를 환하게 반겼다. 평지 같은 숲길은 걷기도 좋았다.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홀로 걷는 시간이 오랜만이다. 가끔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우산을 들지 않은 나의 옷을 적시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전망대 앞에서 무슨 울음소리가 났다.

 

알고 보니 그 앞에 ’말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 안에서 나는 개구리 소리다. 마치 어떤 시끄러운 음향기기를 틀어놓은 소리처럼 들린다. 비포장 도로에서 봄소식을 전하는 잡음이 많이 나는 작은 나팔 같은 악기 소리를 닮은 듯하다. 내가 성큼 다가가니 그들은 이내 조용해졌다. 곶자왈 숲길을 한 시간 반 정도 걷고 나오니, 아직도 비는 오락가락 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산방산 인근에 있는 유채꽃이 궁금했다. 

마라도 가는 선착장을 찍고 달렸지만, 주변에 유채꽃은 보이지 않았다. 잔뜩 하늘을 가린 구름 때문에 어둠만 깊어갔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바람은 잠잠했다. 도로는 한가했다. 저녁 시간이고 비도 내리니 보말칼국수가 생각났다. 그 순간 ’바당칼국수‘집을 스쳐 지나갔다. 곧 차를 세우고 검색해보니 여행객 평가가 놀랍다. 오후 6시 넘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없었다. 메뉴를 보면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예요 ‘ 하고 물으니 주인장 역시 보말칼국수란다. 

 

보말은 제주도 방언으로 '고둥'을 뜻하는 사투리다. 

 

보말칼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내부를 살펴보니 수공예품 등으로 예쁘게 꾸몄다. 이어 보말칼국수와 김치가 나왔다. 따듯한 국물을 천천히 음미해보니 걸쭉한 느낌에 묘한 맛이 배어 있다. 자근자근 씹히는 물질은 보말이다. 물론 허기도 한몫을 했지만 이후 어느 식당에서 먹어도 이 집 보말칼국수 맛을 능가하는 맛집은 발견하지 못했다. 속은 따듯하고 든든했으며, 기분은 조증 초기로 진입했다. 다만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양은 조금 적은 듯한 아쉬움은 남았다. 더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달렸다. 속이 든든한데도 오메기떡이 생각났다. 

매일올레시장에는 그제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있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맛집에 길게 줄 서 있었다. 오늘은 귤 반쪽이 들어간 떡을 샀다. 맛이 궁금했다. 아직 소화가 덜되 속은 든든했지만,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귤이 들어있는 떡을 하나 물었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향의 조화가 경이롭다. 나머지 하나도 먹는다. 저녁 내내 입안에서 그 맛과 향이 지워지지 않는다. 

 

세탁기를 돌렸다. 두 번째로 구동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세탁기도 능숙하게 돌린다. 제주살이는 익숙해지고. 제주여행은 재미를 더한다. 하루가 또 지나갔다. (2021.3.1.) 

< 제주한달살이 소소한 팁 >
 - 본태박물관은 제휴 할인권 제도를 운영한다. 이 경우 상호 간 입장료 20%를 할인해 준다. 
 - 본태박물관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 주요 관광 시설을 방문할 경우 사전에 운영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