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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7일 차 / 다랑쉬오름, 그리고 김녕해수욕장

by 이류음주가무 2021. 5. 15.

[제주한달살이] 7일 차 / 다랑쉬오름, 김녕해수욕장.

- 용눈이오름, 손자봉,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김녕 금속공예 벽화마을, 김녕해수욕장

정말 일주일 만에 온전한 하늘과 빛나는 햇빛을 보며 누리게 됐다. 그동안 흐리고 비 오고 거센 바람이 불던 날씨가 오늘은 맑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내가 생각하고 희망했던 제주 모습이다.

 

<오름 가는 길에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동백꽃>


오늘은 오름을 오르는 일정으로 일과를 이어갔다. 

가장 먼저 ’용눈이오름‘으로 정했고, 그 주변에 있는 ’다랑쉬오름‘ 등 4곳을 오를 계획이다. 서둘러 용눈이오름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2023년까지 휴식년제에 들어가 오를 수가 없단다. 

 

사실은 오는 중간에 있는 ’손자봉(손지오름)‘에서 먼저 용눈이오름을 조망했어야 했다. 다시 방향을 틀어 인근에 있는 손자봉으로 향했다. 손자봉은 별도의 주차공간도 없고, 비포장 땅이라 주차공간은 조금은 질퍽했다. 오르는 사람도 없었지만, 용눈이오름의 관능적인 모습을 보려면 손자봉을 올라야 한다. 고인인 김영갑 작가도 아마 손자봉 어디에선가 용눈이오름을 잡았지 싶다. 손자봉에서 바라보는 용눈이오름은 제법 근사했다. 비록 중간중간 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거슬리긴 한다. 관능적인 선을 표현하기에는 빛도 너무 밝다. 나중에 적당한 시간을 맞춰 망원렌즈로 다시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려왔다.

 

이어진 행선지는 제주 오름의 대표 격인 ’다랑쉬오름‘이다.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도로는 공사 중이다. 다소 불편했지만 통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랑쉬오름 주차장에는 평일임에도 많은 차량이 주차해 있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일을 본 후 맞은편에 있는 아끈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낮은 오름에서 높은 오름을 바라보고 난 후 높은 오름에서 낮은 오름을 조망하고 싶다. 

 

아끈다랑쉬오름으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높지도 않다. 아직은 마른풀로 덮여 있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원을 그리며 걷다 보니 용눈이오름, 성산 일출봉, 우도 등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다랑쉬오름 상공으로 움직이는 구름이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한다. 그 모습을 장노출로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내려오다 보니 길가 평지에 동백꽃 나무가 무리를 지어 핀 곳을 발견했다. 동백꽃과 오름 그리고 구름을 피사체로 정하고 장노출을 시도했다. 근경에 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라 고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원경에 있는 다랑쉬오름만 선명하게 담을 수 있다. 한 시간 가량을 동백꽃과 다랑쉬오름과 구름과 연애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구름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모습이 끝이 없다. 가방에 넣고 온 맥주 한 캔을 따 마시기도 했다.

 


어제 구입한 오메기떡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점심 요기를 차 안에서 마쳤다. 오메기떡은 하루가 지나도 맛은 기적이다. 다랑쉬오름은 휴게소까지는 가파르다. 20여 분이 걸렸다. 제주도 동쪽 성산포와 우도가 한눈에 조망된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도 조금은 가파르다. 주변을 보며 오르다 보면 힘은 들지 않다. 여느 오름도 마찬가지지만,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환희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 제주 한가운데 한라산 정상으로부터 동쪽으로 내려오는 오름은 물론 사방에 널려있는 모든 오름이 마치 다랑쉬오름으로 달려오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다랑쉬오름의 위치와 풍경은 독보적이다. 음료수를 마시며 오름 안은 물론 주변을 사진으로 담았다.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다랑쉬오름에서 보내고 싶었다. 바람은 시원했다. 하산하려니 아쉽다. 휴게소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제주를 보고 성산포를 보고 우도를 봤다. 사람들은 계속 오르고 또 내려갔다. 바람은 시원하게 나의 오감을 건드렸다. 지금 이 순간을 나 혼자만의 시간으로 채운다는 게 미안했다. 여기 연두의 부재가 내겐 무슨 의미인지 되돌아봤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에 다랑쉬오름을 다시 한 바퀴 둘러볼까 생각하다가 내려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때마침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젊은 연인이 보였다. 뒷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뒷모습을 촬영해도 되냐고 물은 뒤 그들의 동의를 얻어 한 컷을 담았다. 나의 희망이다.

 

김녕에 있는 금속공예벽화마을로 향했다. 일반 벽화와 다르게 금속공예벽화란다. 궁금했다. 2007년에 처음으로 다녀왔던 동유럽 여행을 소환했다. 직장 동료들과의 여행이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그때 방문했다. 모차르트가 몇 년 살았던 건물을 구경했고, 예술작품으로 간판을 만들어 걸어 놓은 거리는 지금도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그때 가이드가 전 세계에 설치된 맥도널드 간판이 여기만 다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가는 길에 어름다운 해안가를 만났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이런 곳에서 한 컷을 담아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에 멋진 지붕이 있는 집이라니, 그것도 푸른 하늘 아래 말이다.

 

 금속공예벽화마을은 올레21코스 구간에 위치한다. 철로 조형물을 제작해 건물 벽이나 담장에 설치했다. 관심을 두고 살피지 않으면 눈에 띄지를 않았다. 2014년도에 설치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 철을 소재로 한 작가가 분명히 활동하고 있을 터다. 삶의 근거지인 지역과 연계해 구상해 설치했겠지만, 주민이나 관광객에게 어떤 감흥을 미쳤지는 별도로 살펴볼 일이다. 구경하는 사람은 없었고, 공방은 문이 닫혀있었다. 하지만 제주가 자랑하는 돌담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전신주에 늘어 붙은 전선의 수는 육지보다 많다는 느낌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수단이 이웃의 목소리에서 문명의 이기인 전선으로 대체됐다는 진전인지 후퇴인지는 모르겠다. 

 

김녕해수욕장의 모레는 신부의 드레스 색을 닮았다. 크림색이 나는 치마를 입고 인증 사진을 찍는 이들이 귀엽고 발랄하다. 강하고 쌀쌀한 바닷가 바람 속에서도 신랑 신부들의 과감한 사진 찍기는 그 자체가 청춘이다.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먼 거리에서 담는다. 김녕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일몰 모습은 그야말로 갓 식을 올린 신랑 신부의 첫날밤의 황홀이고 장관이다. 

 

해수욕장 근처에서 전복 뚝배기로 저녁 요기를 해결했다. 전복은 세 마리가 들어있다. 가격은 12,000원이다. 좀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맛은 가격을 배반하지 않았다. 김녕 카페의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다. 카페거리에서 한 사람의 만보자로 잠시 걷고 싶다. 카페에서 제주 에일맥주 한 잔을 음미하고 싶은 욕망도 크지만 참아야겠다는 인내보다는 작았다. 

 

어두운 산길을 오르듯 미끄러지듯 달렸다. 숙소로 가는 길은 어둡고 구불구불하다. 제주 산길은 내비게이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달릴 일이다. 김녕에서 표선까지 50여 분이 소요됐다. 불규칙한 내비게이션 음성과 규칙적인 멜론 소리만이 차 안의 정적을 대체한다.(2021.3.2.)  

< 제주한달살이 소소한 팁 >
- 용눈이오름은 2023년 1월 31일까지 휴식년제가 적용된다. 
- 관능적인 용눈이오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손자봉을 찾아라. 손자봉도 자세히 보면 야릇하다.
- 제주를 대표한다는 다랑쉬오름은 필수지만, 아끈다랑쉬오름도 반드시 오르길 권한다. 오르면 그 이유를 안다. 
- 김녕 금속공예벽화마을은 별도로 찾아 방문하기보다는 올레21코스를 순례하면서 감상하는 일정이 합리적이다.
- 제주로 차를 몰고 간다면 반드시 최신 내비게이션을 다운 받고 출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