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달살이] 8일 차 / 올레3코스 A코스를 걷다.
구름이 예쁘게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는 날이다. 바람도 잔잔하다. 기온이 다소 높다지만 준비는 단단히 하고 출발했다. 오늘은 두 번째 올레길을 걷는 날이다. 올레3코스로 잡았다. 올레3코스는 A, B 두 코스가 있지만, 거리가 조금 길고 또 산간지역을 걷는 A코스로 정했다, 20km가 조금 넘는 거리다.
점심을 햄버거로 산에서 해결할 요량으로 표선해안가에 있는 롯데리아를 찾았다. 문은 열려있었고,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문은 오전 10시부터란다. 30여 분을 기다릴 수 없어서 버스정류장으로 빠른 걸음을 했지만 막 버스는 떠났다.
정류장 주변에 있는 김밥집을 찾았으나 아직 영업 전이다. 마침 건너편에 오메기떡을 파는 떡집이 문을 열고 있었다. 포장된 6개를 4천 원에 구입했다. 마수걸이라 현금으로 계산했다. 가방 속에는 캔 맥주, 캔 커피, 한라봉, 물 각 1개씩 들어있었다. 오메기떡을 추가했다.
조금 후 201번 버스가 도착했다. 201번은 제주 시내에서 동쪽으로 돌면서 서귀포시까지 운행하는 완행버스다. 올레3코스 출발점이 있는 온평초등학교 입구에서 내렸다. 근처 온평포구로 이동해 스탬프를 찍고 올레3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초반부는 해안가를 걷는 길이다. 곧이어 A, B코스가 갈라지고 나는 A코스로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온 간선도로를 건너 올레3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여느 평범한 산길과 다름이 없었다. 가끔 풀어 놓은 개가 짖으며 반긴다(?). 간혹 귤밭에는 가격 폭락으로 버린 귤이 가득하다. 점점 산길은 조용하고 적막하다. 걷는 여행자도 보이지 않는다.
‘난미’라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이 정감이 간다. 때마침 어느 여성 분은 그곳에서 점심을 하려고 멈춘다. 나도 잠깐 쉬려고 했으나 시간이 조금 이르다. 나는 더 걸었다. 귤 농사를 포기한 귤밭이 있고, 동백나무에서 진 동백꽃이 붉다. 돌담에 꽃 진 자리가 아름답고 또 슬프다.
통오름이 나왔다. 통오름은 표고가 143m 정도 낮은 오름이다. 약간 가파르지만 별로 힘들지 않게 오른다. 한라산이 조망되고 그 앞에 줄지어 솟아있는 오름들도 장관이다.
통오름을 내려오니 여행자를 위한 의자가 보인다. 가방을 벗고 먹을거리인 오메기떡과 맥주, 한라봉을 꺼내 먹는다. 내게는 늦은 점심이다. 배는 부르지만 시원했던 바람은 서늘하다.
자동차 도로를 가로 질러 가니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독자봉(표고 159m)을 오르니 줄지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온다. 독자봉을 내려오니 앞서 ‘난미’에서 봤던 여성분이 의아하게 앞에 계신다. 눈인사를 나누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선다. 그 후로부터 특별히 인상적인 풍경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어느 예쁜 카페가 차 한잔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수요일은 휴무란다. 알고 보니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휴무일이 수요일이다. 그러다 보니 그 주변 카페 등도 대부분 수요일이 휴무인듯하다.
버스를 타고 지나갔던 간선도로를 가로지르니 파도가 눈부시게 부서지는 바닷가다. B코스와 만나는 지점이다. 바닷가에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없다. 대부분 바다 농장 즉 양식장이 자리하고 있다. 환경이 다소 어수선하다. 다만 바닷가는 푸르고 맑다.
신풍신천바다목장을 지나가야 했다. 사유지 일부를 올레길로 제공해 준 목장이다. 크고 넓으며 대부분 평지라 시원하다. 제주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한우가 목장 한가운데에서 한가로이 앉아 있다. 해안가 절벽은 기묘하고 바다와 구름과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잠시 이곳에서 쉬면서 셀카 놀이를 즐겼다.
다시 한 시간 정도 걸으니 해안가 옆에 카페가 있다. 지난번 문이 닫혀 그냥 지나친 카페다. 차 한잔 마시며 좀 쉬려고 문을 열었다.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내부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다. ‘포토169’란 사진 촬영소도 함께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소품 자체가 매력적이다. 사진찍기에 너무 잘 어울린다. 커피를 주문했다. 주인장 동의를 얻어 내부를 촬영했다. 누군가 여기서 모델이 됐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카페이름 / 숨비아일랜드 / 매주 목요일 정기휴무)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카페를 기준으로 주변 풍경이 사진 찍기에 잘 어울린다. 몇 컷을 찍었다. 때마침 고맙게도 개 서너 마리가 앉아서 모델을 해준다. 그 개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다.
포장된 도로를 끝으로 해안 모랫길로 접어들었다. 마침 물때가 썰물이라 표선해수욕장 바닥이 다 보였다. 거의 1km 정도 된다. 목적지까지 가로질러 갈 수도 있지만, 코스대로 걷고 또 걸었다. 모래는 부드러웠고, 해안은 넓었다. 숙소 앞을 지나 표선해수욕장 공식 안내소에 도착했다. 오후 4시 반이다. 안내 책자에 스탬프를 찍었다.
안내소에 들어가 풀어놓은 개 이야기를 건넸다. 여행자의 민원이 많이 들어온단다. 주민에게 협조를 구했지만 어렵다고 한다. 나도 이해를 한다. 그러나 혼자 걷는 여성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겠다. ‘제주올레마그넷’ 하나를 샀다.
숙소를 가는 길에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았다. 육지에서는 비가 온 뒤 물과 물 사이에 연결된 무지개는 보았지만, 머리 위 하늘에 걸쳐있는 무지개는 본 적이 가물가물하다. 알고 보니 이는 얕은 권층운 층 속의 얼음결정에 의해 형성된 ‘하늘이 미소’라고도 불리는 ‘천정호’로 거꾸로 뒤집은 무지개처럼 보이는 광학 효과라고 한다. 빗방울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름의 얼음 결정을 통과하면서 햇빛이 굴절되어 만들어지는 현상이란다.
숙소에 들어와 샤워 후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 먹으러 나왔다. 숙소 주인장이 추천한 ‘당케올레칼국수’ 맛집은 오후 5시까지만 영업한단다. 검색해 보니 ‘국수앤’이란 칼국수 집도 평가가 좋다. 마침 손님이 아무도 없다. 보말칼국수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곧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입장한다. 칼국수 면발은 넓고 굵으며 부드럽다. 쫄깃한 보말 식감도 좋다. 무엇보다도 양념을 참 많이 넣은 걸 보니 정성이 이만저만 아니다. 주인장의 배포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걸죽한 국물이 빈속을 진하면서도 부드럽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맥주 한 병을 곁들이니 어질어질 기분이 상승한다. 국물의 양이 많지만 그래도 맥주처럼 싹 비웠다.
늦은 시간에 가까운 농협하나로마트에 갔다. 걸어서 3분 거리다. 두루마리 휴지와 세면 비누를 사기 위해서다. 주인장이 준비해준 휴지와 비누 등을 다 소진했다. 그런데 마트에서는 두루마리 휴지 한 개는 판매하지 않는다. 비누도 마찬가지다. 결국, 농협하나로마트에서는 두루마리 휴지 10개에 세면 비누 세 알이 들어간 묶음 상품만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으면 육지로 가져가야 한다.
숙소에 들어와 하루를 정리하면서 오늘 몇 보를 걸었나 확인했더니 4만 보 이상을 걸었다. 제주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2021.3.3.)
< 제주한달살이 소소한 팁 >
- 올레3-A코스 시작점은 온평 포구이고, 종점은 표선해수욕장으로 20.9㎞이다. 6∼7시간 걸린다.
- 롯데리아는 어디서나 오전 10시부터 주문을 받는단다.
- 마을이나 산간지역을 지날 때 풀어놓은 개가 짖으며 반기는(?) 경우가 있다. 겁먹지는 말라.
- 숨비아일랜드는 매주 목요일 휴무다.
-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매주 수요일이 휴무다. 인근 카페도 대부분 수요일 휴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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