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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그 기억을 담아

세계농촌관광개발포럼이 열린 창사시에 가다(3)

by 이류의하루 2013. 10. 27.

2013.10.26.(토)

 

오늘은 '마오쩌둥 생가'와 '기념관'을 방문한다.


창사시에서 130km 떨어진 소도시인 소산(昭山)으로, 마오쩌둥의 고향이자 청년시절을 보내고 초기 혁명 활동을 행하던 곳이다.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시골 풍경은 안개 또는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련했다. 

우리가 탑승한 버스는 과속도 아니고 지정된 속도로 일정하게 달렸다.  

소산은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급증으로 철도노선이 깔리고  도로가 정비됐다. 마오쩌둥 생가가 위치한 곳은 ‘모택동풍경구’로 지정해, 그가 살았던 집과 기념관, 도서관, 동상 등이 세워져 있어 중국 내에서 신성시되는 장소다.

 
1961년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주변에는 논, 밭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산수 좋은 조용한 시골 마을로 생가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에도 큰 기여를 했단다.

 

생가 근처까지 우리 버스는 진입했다.

 

정말 많은 중국인들이 모였다. 특히 소풍을 온 학생들로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밀리고 밀렸다.

키기 크고 뚱뚱하고 검은 피부를 가진 우리 일행을 보자 신기한 듯 맞이한다. 사진을 찍으니 오히려 좋아하며 적극적이다.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지만 중학생들도 명랑하고 활발하다. 

 

 

 

 

밀리듯, 천천히 생가를 돌았다.

 

 

 

 

 

 

 

 

 

 

 

 

 

 

 

 

 

특별나게 꾸민 점은 없었다. 주변 풍경과 조화롭게 보였다.

  

잠시 쉬면서 다른 국가에서 온 이들과 기념사진을 담았다.

이메일로 사진을 꼭 보내달란다. 미옥샘이 꼼꼼히 적었고 나는 다만 찍었다.  

 

점심을 하러 이동하기 위해 버스가 이동한 주차장으로 향했다.

모처럼 호객행위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기념품 가게에는 마오쩌둥의 청동 조각상이 대부분이다.

그들 틈을 빠져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인근에 있는 Hualong Hotel로 향했고, 오찬은 정통 중국식이었다.  

베이징이나 창사시 숙소의 음식과는 조금 미약하지만 이곳의 맛도 입에는 익숙해졌다. 

오찬 후 다시 생가 인근에 있는 마오쩌둥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그의 일생을 간단히 살펴봤다.

다만 그의 많은 독서량에 특히 감동받았다.

 

마오쩌둥은 '독서량이 많으면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가면 모든 시가지를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눈에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잘 수 있다'고 했고, 반대로 '책을 통해서 배우지 않는다면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삶을 살게된다'며 독서를 중요시했고, 또 몸소 실천했다고 한다.

 

기념관은 그의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기념관 밖으로 나오니 또 학생들이 반겼다.  

 

 

이어 유리온실이 있는 집단마을(?)로 향했다.

최근에 조성한 곳이다.  

 

 

 

 

 

 

많은 주민들이 우리를 환하게 반겼다. 동원한듯하지만 웃는 모습은 정말 순박해 보였다.

멋을 내지 않고도 순박한 멋이 우러나는 그들의 삶이 무척 궁금했지만 마음으로만 잘살기를 바랄뿐이다.   

유리 온실로 들어갔다. 최근에 조성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우리와는 수준이 나는 듯했다. 

 

 

 

대한민국 이천에서 왔다고 하니 우리 시장님과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다.

'중국이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이천은 더 앞서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상호협력하자'는 취지로 말씀하신다. 

 

 

과일과 음료수도 먹어보고, 술도 마셔본다.

힌 벽에 걸려있는 말린 오리와 물고기가 인상적이다.

 

친환경 채소를 재배한다는 농장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도착하니 열심히 일을 하신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더욱 열심히 빠르게 일하신다. 죄송.... 

 

 

 

그렇게 둘러보는 사이에 해는 어느덧 늬엿늬엿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작별인사는 서서히 해가 넘어가면서 나눴다.  

 

 

 

 

그날 저녁식사를 모두 마치고, 처음으로 모두 모여 부담 없이 즐겁게 이슬을 마셨며, 중국의 무한한 잠재적 시장, 성장성, 그리고 이천과의 농촌관광교류 등에 대해 세시간이나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작은 바늘은 이미 12라는 숫자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