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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기억을 담아

10년전 다녀왔던 베이징을 다시 가보니(4)

by 이류음주가무 2013. 10. 24.

2013.10.23. 베이징에서 4일째 마지막 날이다.

 

어제는 잠을 잤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서 이불을 펴고, 말고해서 가져간 베개를 베고 그나마 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보다 기온은 내려갔고, 대신 하늘은 맑았다. 바람도 쌀쌀했다. 

 

 

창 너머 북경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다. 출근시간 지나면 다시 매연 등으로 희뿌여질텐데.....

아침식사를 마쳤다. 8시 30분에 집결하는 시간이다. 

 

오늘 일정은 오전만 문화탐방으로 짜여져 있었다.

이화원이다. 10여년 전 한 번 가봤던 곳이다.

 

자원봉사학생 캐서린이 반갑게 인사한다. 이화원에 대한 영문 안내 자료를 복사해와 미옥샘에게 건넸다. 참 예쁘고 친절하고 당당한 캐서린, 웃음이 참 많은 학생이다. 

한 시간 정도 시내를 돌아 외곽으로 빠졌다. 도로는 곳곳이 막혔지만 그나마 외곽으로 향하다보니 체증이 덜하다. 이화원에 도착하니 바람 불고 쌀쌀했다. 사람은 참 많다. 뭐하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이렇게 많이 관광왔을까 궁금하다.  

 

 

 

 

 

 

 

 

 

가이드는 영어로 설명했다. 귀국해서 검색해보면 알 터, 난 곳곳의 장면을 담기에 바쁘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영어,일어, 중국어 심지어 우리말까지 표시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많큼 많이 찾는 곳이니 그런가보다.

 

 

 

 

 

 

 

 

 

 

 

 

많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 옛날 진동했던 냄새라든가 중국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꽤재재함은 전혀 볼 수 없다. 소박하다는 표현이 적절할듯하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어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오늘이 어찌보면 이들과 마지막의 행사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사진찍는 분위기다. 자원봉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수의 물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이화원의 위용을 감상하기엔 충분했다. 

 

 

 

상해에서 온 디자인 관련한 분이 오후에 디자인 관련 미팅을 갖자는 데 영어를 알아야지. 미옥샘은 그새 이번에 온 창의도시 시장 중에서 가장 멋진 미국 아이오와시 시장에게 다가가 기념사진을 담자고 했다.  

 

그런데 그 시장은 내가 이천시장인줄 알았단다. 하기야 많이 닮았다고 들었고, 가끔 어두운 시청 5층에서 전혀 모르는 시민이 인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 외국인의 눈에 그리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

 

오전 일정을 마치고 다시 호텔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떠나야 했다. 어제 떠난 사람도 있긴했다. 우리는 일단 창사시에서 연설할 문장을 다시 다듬어 보내야 했는데 메일이 또 말성이다. 결국 통화로 풀었다. 그러다보니 점심시간은 훨씬 지났다. 배고프다.

 

시장님과 함께 가보고 싶었던 798공장으로 향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시 10호선으로 환승했다. 가격은 역시 2원이다. 798공장 가는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 올라가니 택시가 서 있다. 타려고 하니 앞차를 타란다. 자가용영업하는 차다. 결국 50원을 내고 승용차에 올랐다.

 

10여분 후 798공장입구에 도착했다.

육교를 건네는데 벼룩시장처럼 물건을 파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않다. 재미있게 만들어졌지만 질적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798공장의 갤러리도 하는 의구심도 약간은 들었지만 이미 유명해진 곳이라 분명다르리라 생각은 했다. 

 

 

 

마침 맥도널드 햄버거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를 채워야 했다. 비위 약한 미옥샘은 그 햄버거에도 향이 배어있다고 찌프리며 먹지만 난 모르겠다. 우선 배부터 채우는 일이 급했고 맛있게 해치웠다.  

 

옆에 있는 798공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크게 798이라고 철로 만든 간판이 보였다. 입구로 천천히 향했다.  

 

 

 

입구바로 전시관에 들렀다. 쇠를 녹여 작품은 만들 곳이다. 어덯게 저런 세말한 형태가 나올까 궁금하다. 작은 작품부터 대형작품까지 대단하다. 

 

 

 

 

 

 

 

 

이어 어느 공장으로 통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늦은 오후, 평일이라 그런가 관광객들은 많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골목마다 작가들의 공방과 갤러리는 많았다. 들어가보니 정말 별천지 예술의 오묘한 세계가 숨어있는 듯했다. 중국제품에 대한 막연한 인식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것 하나 미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언제가 시간에 또다시 주어진다면 종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몇 개를 구입했다. 가격도 우리와 큰 차이는 없는 듯한 느낌이다. 도자기도 마찬가지였다. 저가의 싸구려라는 이미지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798공장은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치지우빠 꽁창(798 工場) / 798 예술구(798 Factory)
다산쯔(大山子) 798 예술구


다산쯔(大山子) 798 예술구는 중국 건국 초기 소련의 원조로 독일 기술자가 설계한 현대식 공업기지 중 하나로 이름 도 없이 797, 718,  798, 706, 707 등 숫자로만 불렸던 전자공업의 요람이었다. 이곳에서는 중국 자체의 기술로 만들어낸 원자탄과 인공위성의 주요 부품들이 연구 생산되었던 곳이었다.

 

1990년대 중국 경제에 개혁이 일어나고 시장이 변화하면서 798 꽁창은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광활한 면적을 차지한 채 그대로 방치됐다. 그러나 편리한 교통, 저렴한 임대료, 여유로운 작업공간에 매력을 느낀 가난한 중국인 예술가 등 일군의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도 이곳으로 이전해 왔다.

 

그러다가 2002년 한 미국인 예술가가 이곳에 작업실을 연 이후 외국인 예술가의 대규모 진출이 이루어져 세계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2003년에 열린 ‘짜오짜오 再建 798’이란 제목의 대규모 행사에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수 천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 

 

중국 당국에서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이곳 단장해 예술의 거리로 완전 변신시키면서 공식 예술구로 인증하게 됐다.

 

798 꽁창은 그 자체가 역사의 현장이며 진귀한 예술품이다. 학자들은 이 건물이 바우하우스¹의 예술성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드넓은 공간에 굵은 기둥이 건물의 하중을 받치고 있고, 천장이 높아 채광이 우수한데다 군더더기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¹[교육]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Gropius, W. A. G.)가 구상하여 1919년에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한 조형 학교. 건축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고자 하였으며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곳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모두 중국 공업의 발달사를 대변하고 있다. 벽에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문화혁명 시기의 표어와 벽보가 그대로 붙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파란만장했던 중국 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798꽁창 주변 1㎢에는 출판, 건축설계, 의상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음악연출, 영상제작, 예술가들의 작업실 등 100여 곳의 문화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화랑 이외에도 음식점, 바, 옷가게, 서점, 요가센터 등 각종 부대시설도 들어서 있다.

 

그렇게 속속들이 모여든 예술가들과 문화시설로 798 꽁창은 베이징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문화지대로 탈바꿈했다. 798 꽁창은 역사의 도시 베이징에 현대 예술의 활력을 불어넣었고 전통과 현대, 현실과 꿈, 공업과 예술이 바로 이곳에서 충돌하고 융합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9천 여 명의 전업 작가가 상주하고 있으며, 200여개의 창작실과 400여개의 화랑이 밀집해 있다. 연간 160여 건의 미술품 경매가 이뤄지고 2조원 규모의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다.   

 

출처 / 북경 여행책자 요약               

돌아다니다보니 어두워졌다. 마침 북경 여행책자에 나와있는 유명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At Cafe다. 카페를 들어서니 이곳도 역시 공장의 한 구석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뚫린 벽면을 그냥 활용했다.  

 

 

 

 

맥주와 샐러드 등을 주문했다. 찾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과 품격은 있어보였다. 맥주가 참 맛있다. 내게 맛없는 게 뭐가 있겠나마는 특별했다. 

 

 

 

 

 

 

 

 

 

 

아쉬움을 남긴 채 798공장의 소박한 야경을 뒤로하고 택시를 타려고 큰 길로 나섰다. 택시는 서지 않았다. 알고보니 거기서는 자가용 영업하는 차량만 서는 거 같다. 이십여분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겨우 한대가 섰다. 50원이란다. 승용차는 낮에 왔던 길로 가다가 어디론지 다른 곳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운전자는 낮에 내렸던 10호선이 아니라 2호선의 가까운 역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늦은 저녁인데 많은 사람들이 노래와 춤 연주 등을 즐기고 있었다. 2호선을 타러 내려갔다. 그런데 정신이 없다, 어느 방향으로 타야할 지 미옥샘이 영어가능한 청년에게 접근해 물어봤다. 그 청년 정말 친절했다. 나중에 2호선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 타려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으니까 다가와 친절히 또 안내해 준다.

 

한류의 영향인지 아니면 중국인들의 변화된 모습인지 궁금했지만 이번 출장에서 느낀 점은 한류의 힘보다는 변화된 중국인들의 모습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1호선을 타고 숙소인 탕라호텔에 도착했다.

 

중국 일정을 모두 끝냈다. 내일은 세계농촌관광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호남성 장사시로 이동한다. 늦게까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북경은 참 많이 변했다. 10여년 전에 왔던 그 모습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당연히 도시가 그랬다. 깨끗했다. 도로 건물 그리고 공원이 그랬다. 사람(자원봉사자 포함)들도 친절했다. 호객행위도 보질 못했다. 예술품이나 일반 제품의 질도 좋았다. 어딜가나 약간의 불만족스런 면이 있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밤은 깊어갔다. 중국에 대한 나의 호감도 함께 깊어갔다.(다음 회부터는 장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