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 (목). 걱정스럽던 아내의 부은 손가락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지난밤도 간신히 수면을 취했지만 아내는 유럽의 밤낮에 완전히 적응된 듯하다. 내일이면 떠나는데 말이다.
아침 일찍 아내와 산보 나갔다.
알프스의 새벽공기답게 인스부르크도 상쾌하다. 도대체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동네는 조용하다. 오직 새소리와 물소리만이 조용하고 상쾌한 도시를 흔든다.
어제 봤던 성당 종탑을 향하여 걷다보니, 새벽에 벌써 성당 마당에 있는 작은 묘지 앞에는 누군가 촛불을 밝혔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성당 마당의 묘지를 늘 곁에 두고 보살피고 기도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주로 산속이나 외딴 곳에 조성한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집집마다 정원에 꽃사과 나무 한그루씩은 모두 심어놓은 듯하다. 푸른 잔디위에 하얀 사과나무의 꽃이 아름답다.
작고 소박한 호텔 식당에서 뷔페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제껏 먹어 본 조식 중 가장 성의 있고 다양하고 그만큼 맛도 좋았다. 7시 반 체크아웃하고 독일 퓌센으로 출발했다.
눈 덮인 알프스, 푸른 초원을 달리는 버스, 그리고 나나무스꾸리의 노래, 창 너머 풍경과 창안의 소리가 황홀하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드디어 독일 퓌센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날씨는 약간 맑은 하늘도 보였었는데 퓌센에 다다르니 온통 안개로 가렸다. 주차장엔 이미 많은 투어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디즈니랜드의 모델로 유명한 노이슈반스타인성(백조의 성)까지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내려올 땐 걷기로 결정했다.
셔틀버스에서 내렸다. 내리면 아주 아름다운 성이 보인다 하는데, 아무것도 안보였다. 안개 속을 걸어갔다. 아주 높은 다리라고 안내를 했는데, 사방이 모두 안개 바다다. 보이지 않는 계곡의 물소리는 성과 우리를 삼킬 듯 요란하지만 그 다리에서 가장 멋지게 보인다던 성은 보이지 않는다.
성으로 올랐다. 안개 속에 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몽환적이다. 일단 화장실 급한 사람은 화장실을 가고, 나는 둘러보았지만 디즈니랜드의 모델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려오다가 기념품가게 앞의 사진을 봤다. 저 정도 조망이 확보됐다만 그런 느낌이 들었을 듯하다. 아쉽다. 내려오는 길은 그나마 시원해서 다행이었다. 마차를 타고 오르내리는 관광객도 많다.
다시 투어버스에 올라 이동했다. 호수가 있는 어느 호텔식당 앞이다. 독일 현지 식으로 통감자에 생선구이, 샐러드, 그리고 호프 한 잔씩을 했다. 맥주가 참 맛있다.
이제 퓌센을 떠나 ‘로맨틱 가도’를 따라 로텐부르크로 이동한다. ‘로맨틱 가도’는 독일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길이란다. 원래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로맨틱 가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단다.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성에서 로텐부르크에 이르는 약 400km에 걸친 도로, 중세의 거리를 느껴볼 수 있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길이라는데 드넓은 초원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있다.
눈을 감을 틈도 주지 않고 파노라마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여기서 잠시 머물러 살았으며 아니 카메라라도 제대로 잡고 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투어버스는 이런 내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다만 달릴 뿐이다.
그렇게 퓌센을 출발한 버스는 로맨틱 가도를 달려 작은 중세도시 로텐부르크에 도착했다. 모두 급했다. 퓌센의 호텔식당에서 마신 맥주 때문이다.
민속촌과 같이 3.4km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중세시대의 보석 로텐부르크의 작은 성문을 통과했다. 상 밖과는 달리 예쁜 파스텔 톤의 집들이 즐비하게 좌우로 자리했다. 수선화가 예쁘게 피였다. 간판들이 화려하고 이채롭다. 수작업으로 만든 듯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다소 큰 건물과 함께 광장이 나왔다. 마르크트 광장이다. 13~16세기에 지어진 로텐부르크 시청사도 있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에는 예쁜 인형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았지만 쇼핑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서둘렀다.
짧은 로텐부르크 여행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떠났다.
독일의 고속도로(아웃토반)는 주로 산과 산을 연결한 듯 높은 지대에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2007년에 방문한 프랑크푸르트에 다시 도착했다.
우선 한식당에 들러 그동안 많이 고팠을 듯한 '삼겹살로스'로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몰래 소주도 마셨다.
서유럽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은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위치한 MERCURE 호텔이다.
호텔 앞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짐을 풀고 나왔다. 그리고 잠시 24년 전 신혼여행의 추억 속으로 제주 여행을 떠났다.
여행일정을 하루 남겨둔 시간, 모두들 아쉬움을 달래듯 유채꽃밭에서의 유치한 놀이는 계속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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