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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기억을 담아

아내와 떠난 서유럽 여행, 파리는 아름다워

by 이류음주가무 2013. 6. 12.

4.25.(목요일)


파리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곳이다. 어제 늦은 밤 도착해 시내가 어찌 생겼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역 근처는 많이 지저분했다. 침대 아래 바닥에서 누워 뒤척이며 아침을 맞았다. 

 

 

날은 쾌청했다. 호텔 주변이 훤히 들어왔다. 기대보다는 그저 그런 느낌이지만 창밖 풍경은 정겹다. 아침은 호텔식으로 식사를 했다. 한국 손님이 많아서일까 한국 학생이 서빙하니 편하다. 이 호텔에서 이틀을 묵는다. 
  
가이드에 따르면 런던/파리의 날씨는 늘 구름이 많고, 안개가 끼고, 비도 오는데, 정말 축복받은 팀이란다. 투어버스가 호텔 앞에 대기 중이다. 오늘은 그 유명한 에펠탑부터 시작된다. 서둘러 출발했다. 도로변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저분한 것까지 말이다. 간신히 버스를 주차 후 바라본 에펠탑이 높긴 높다. 목이 뒤로 넘어갈 정도다. 길게 늘어선 줄이지만 사전예약이라 그런지 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샹 드 마르스 공원에 들어선 에펠탑.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 때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박람회장의 출입관문으로 건축됐단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골조도 에펠의 작품. 그 당시에는 무려 301m나 되는 높이에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골덩어리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단다.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 파리 시내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다는 에펠탑 내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이처럼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만큼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어떤 시설을 판단함에 있어 지금의 시각과 생각으로 재단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지상 57m에 제1전망대가 있고, 지상 115m에 제2전망대, 그리고 탑의 상단부에 제3전망대가 있단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2전망대에 올라가 조망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고 하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다. 세느강을 비롯해 각 방향마다 시원하게 보인다. 파리는 여기서 다 본 느낌이다.  

 

다음은 개선문으로 향했다.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1세가 1806년 아우스터리츠전투에서 승리한 뒤 프랑스 군대의 모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착공했으나, 아쉽게도 사후에 준공되어 나폴레옹 1세는 시신으로서 개선문을 지나게 됐다 한다.  높이가 50m인 세계최대의 개선문은 프랑스 역사의 영광의 상징이기도 하다. 개선문 바로 아래에는 세계 1, 2차 대전 때 희생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는데, 횃불이 1년 내내 꺼지지 않고, 헌화도 시들지 않는다 한다. 

 

 

이후 전 세계에 승전기념비 열풍이 불었다는데, 규모는 작지만 서울에도 서대문에 독립문이 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파리 시내의 모든 도로가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구조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도로의 원점이 바로 개선문이라는 사실. 가끔 길을 못 찾아 같은 길을 빙글빙글 도는 사람도 있단다.
 
개선문에서 콩코드광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아름다운, 패션과 문화의 거리가 바로 그 유명한 상제리제 거리다. 이곳에는 명품 숍이 즐비하지만 우린 그냥 지났다. 도시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울창한 가로수도 도시 경관에 한 몫을 한다. 건물과 도로, 도시 조경 등등. 역사의 숨결이 묻어나는 도시 파리. 어디를 둘러봐도 공사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선문 주변을 보니 제대로 파리를 보는 듯했다. 
 
콩코드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다. 1755년 앙제 자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됐으며, 원래는 루이15세의 기마상이 설치돼 있어 '루이15세 광장'으로 불리었는데,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기마상이 철거되면서 이름도 혁명광장으로 바뀌었다가, 1795년부터는 현재의 콩코드 광장으로 불리면서 1830년에 공식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1793년 1월21일 프랑스 혁명 중에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됐고, 10월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버스로 한 바퀴 돌아보고 지났다. 작년에 바로 이곳 콩코드광장에서 싸이가 공연을 했다는데 말이다.
  
샹제리제 거리와 콩코드 광장을 지나 우리가 찾은 곳은 달팽이 요리 식당이다. 프랑스 여행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먹어보았을 현지식, 달팽이요리 에스카로고 식당이다. 한국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직원들이 한국어로 곧잘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한다.  

 

 

집게로 달팽이를 잘 집어 포크로 빼어먹어야지 잘못하면 달팽이가 집게에서 빠져나가 자칫 옷을 버리기도 한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맛은 그저 담백한 수준이다. 몰래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추억을 담았다.

 

점심 후 인근 브랭땅 백화점까지 걸었다. 사람들 많다. 가판대, 주차, 복잡하다. 예전에 서울에도 브랭땅 백화점은 있었다. 아내는 실용적인 품목 위주로 보았고, 나는 내 나름의 패션을 상상하며 쇼핑했지만 결국 말 그대로 눈요기로만 만족했다.

 

파리여행 제3코스는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파리 서남쪽에 위치한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인 베르사이유 궁전은 '짐은 국가다'라 했던 루이14세가 20년에 걸쳐 세운,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으로 정원의 넓이가 100ha나 된단다.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황태자 루이16세와 정략결혼으로 베르사이유 궁전의 왕실가족이 되었다는데, 본래 이곳은 루이13세가 사냥을 즐기던 장소로 루이14세가 그곳에 궁전을 지었고, 이후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왕실 가족과 귀족들의 화려한 삶이 펼쳐졌단다. 

 

천정의 조각들, 기둥, 동상들, 모두가 예술이다. 바쁘게 궁전 내부를 돌아본 후, 대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을 둘러보려면 4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하니, 짧고 굵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걸음은 빨라진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궁전은 화려하고 웅장하고 멋지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피와 땀과 고통이 뒤따랐을 거라는 생각들도 조금은 해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파리의 다른 곳보다 이곳은 조용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빠져나와 버스는 세느강변을 따라 다시 파리의 중심부를 향해 달렸다. 일명 명품보석가게들이 많아 보석광장이라고도 불린다는 방돔 광장으로 향했다. 한식 식당과 예약시간이 좀 남아서다. 드넓은 잔디광장에서 사진 찍기에만 바쁘다. 

 

 

 

 마침 방돔 광장 한 켠 나무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파리의 노숙자들이다. 어느 단체에서 나와 배식을 하고 있었다. 방돔 광장에서 저녁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이번엔 한국식당에서 메뉴는 순두부 찌게다. 맛은 맛있다. 본토 밖이니 그렇다. 

식사 후 에펠탑에서 내려다보았을 때에 바로 앞에 보이던 커다란 궁전, 예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축했는데 현재는 여러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이요 궁의 광장으로 이동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 하여 우리도 열심히 인증사진을 담았다. 손으로 에펠탑을 잡고 있는 포즈를 취했지만 서두르다보니 각도를 제대로 못 잡아 실패했다.  

 

여기서 옵션으로 몽마르트 언덕을 가는 팀과 바로 세느 강변의 유람선을 타는 팀으로 나눴다. 우린 몽마르트 언덕을 가기로 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여긴 파리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담배꽁초가 많은 도로를 청소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라는 말도 있듯이, 복지가 잘 되어있는 이곳 유럽 사람들은 공돈을 아주 싫어한단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흡족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로 삼가는 게 품성이란다. 도로와 보도 블럭 사이에 물이 나오는 구멍이 있는데 우수를 이용해 쓰레기를 쓸어 모으는 방식이란다. 

몽마르트 언덕으로 향한 골목은 남대문시장 통로를 지나는 것처럼 복잡하다. 길가의 상점들에 걸려있는 상품들을 재빨리 훑어보면서 골목을 빠져나오니, 아름다운 성당과 함께 언덕위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몽마르트 언덕은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하지만 낮은 언덕이다. 그 위에 파리 최초의 성지라는 예수성심성당이 있다.  현재 성당에서는 매 시간마다 드리는 릴레이기도가 진행 중이니 성당 안에서는 '절대 정숙'을 강조한다. 성당 안에 들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촛불 두개 켜두고 나왔다.

 

성당 앞 언덕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군데군데 군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축구공을 가지고 재주부리는 사람도 있고, 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모여앉아 인솔자(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잔디밭에 누워 자는 아가씨도 있고. 정말 각양각색의 인종 들 자유롭다. 이것도 이들이 얘기하는 톨레랑스의 하나인가 생각했다.  

 

 

 

 

몽마르트 언덕 왼편에 화가의 거리가 있다. 화가들의 지정된 자리가 표시되어 있어서 그 표시를 보고 초상화를 부탁하면 틀림없단다.  

 

유럽의 낮은 정말 길다. 한여름엔 밤11시가 되어도 해가지지 않는 백야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우리가 겪어보지 않은 것들은 모두 신기할 따름이다. 낮엔 고철덩어리였다가 밤에 되면 금덩어리로 변한다는 에펠탑 야경을 보기위해 저녁 9시에 바토무슈 유람선을 탑승했다. 구경하기 좋은 2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모두 한국사람들이다. 한국어 안내멘트까지 나올 지경이다.  

 

 

 

세느강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유람선에 몸을 맡기고 강변에 보이는 유명 건축물들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의 배경이 되는 노트르담 성당도 얼핏 지났다. 그 앞 다리에 정말 커다란 보름달이 걸려있다. 삼각대 세워 놓고 흔들림 없이 담을 수만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드디어 에펠탑에 조명이 밝혀지고, 아름다운 그림자에 불빛이 더해지면서 점차 낭만의 세느 강으로 변해간다. 다리 위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강가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세느강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행복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전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자 갑자기 에펠탑의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데, 마치 다이아몬드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듯했다. 가이드는 일명 '지랄발광쇼'란다. 웃자고 한 소리다.
 
파리의 두 번 째 밤도 침대 아래서 뒹글뒹글 뒤척이며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