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달살이] 2021.2.24. 1일 차 / 배편을 거꾸로 예약했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주로 떠나는 오전 여객선을 타려고 전날 밤에 완도로 향했고, 오늘은 새벽같이 기상했다. 출항 한 시간 반 전에 완도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문자로 온 내용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담당 직원이 오전에 출항하는 여객선은 그 여객선이 아니란다. 제주에서 완도로 떠나는 여객선이라고 말한다. 오마이 갓! 시니어 여행자 교육을 받았고, 예약하는 방법을 익혔으며, 또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완도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아니라 제주에서 완도로 오는 여객선표를 예약했다니. 완전히 반대였다. 몸은 완도에 있는데 이 시간에 제주에서 나온다니 말이 되는가. 기가 막힌다. 혼자 자신 있게 예약한 일정이 반대로 예약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시작이다. 이게 무슨 상황이고 시작인지 헛웃음만 나왔다.
다행히도 당일 오후 3시에 제주로 출항하는 여객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예약한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물론 해약 수수료는 부담했다. 오후 3시에 출항하는 여객선을 예약했다. 3월 26일 완도에서 제주로 출항하는 여객선도 해약하고 다시 예약했다. 오전에 떠나는 여객선도 있었지만, 추자도 등 돌아서 가는 여객선이다. 다섯 시간 넘게 걸린다. 다시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가 기왕이면 완도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일출 사진을 찍고자 정도리에 있는 구개동으로 향했다. 이곳의 돌들은 검고 둥근 모양으로 파도가 밀려오면 까르르 웃음소리가 난다는 돌이 유명하다. 완도항으로부터 약 4km 떨어져 있었다. 해가 뜨니 바다가 우윳빛으로 변했다. 곳곳에 양식장이 있고, 또 섬이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듯했다. 바다는 다소 잔잔했다. 해풍에 시달린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일품이지만 사진 실력이 부족한 내가 그 풍경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침을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했다. 매운 해장국을 선택했다. ‘미풍’이란 국밥집을 찾았다. 오전 아홉 시가 넘어서 그런지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따듯하고 다소 매운 국밥 한 그릇을 천천히 비우고 나오니 나른하고 졸음이 몰려온다. 인근에 있는 완도타워로 향했다. 타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니 바람은 시원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니 피곤함도 약간 풀리는 듯했다. 다시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완도항이 눈앞에 있었다.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모두 내 탓이다. 점심은 한 시 조금 넘어 편의점에서 우유랑 샌드위치로 간단히 채웠다.
항구 주변에서 쉬다가 조금 이른 시간에 완도 제3부두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이미 많은 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뒤에 차를 세웠다. 저 큰 배가 내 차를 제주까지 안전하게 실어준다고 하니 좀 설렜다. 앞차들이 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도 천천히 차를 몰았다. 출항 한시간 전이 되자 덜컹거리며 갑판 위로 오르는 차량 행렬이 흥미롭다. 주차를 무사히 마치고 여객선 터미널로 다시 나와 표를 교환했다. 출항 30분 전부터 여행객들이 탈 수가 있었다. 내는 2등 좌석으로 예매했다. 입석과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좌석을 확인하고 승무원에게 혹시 뱃멀미 약을 판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승무원은 웃으면서 이 배는 흔들림이 거의 없어서 멀미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배는 시간에 맞춰 고동 소리를 울리며 출발했다. 바다는 푸르렀고, 파도는 약간 일렁였다. 흔들림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달렸다. 배 안에서는 푸른 바다만 보였고, 이따금 섬도 지나쳤다. 햇살이 비추는 물결은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소지한 책을 편안하게 읽으며 두어 시간이 지나자 제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배 밖으로 나가봤다. 생각보다 파도는 거칠었고, 배의 속도는 빨랐다.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바로 배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을 해보니 울릉도 가는 느낌과 기분, 상황이 매우 달랐다. 그림 사조로 비유하자면 울릉도는 인상주의 느낌이고, 제주 가는 배는 후기 인상주의 세잔의 그림과 같은 견고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예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에 그림과 비교하다니 헛웃음이 또 나왔다.
정박하기 전 차량 탑승자는 차가 주차한 곳으로 줄지어 내려갔다. 그런데 차를 세운 곳이 2층인지 어딘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 결국은 한 층을 더 올라가니 거기에 내 차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를 타고 나가기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나는 키를 눌러 내 차 위치를 확인했고, 시동을 걸었다. 네 바퀴를 견고히 고정한 안전띠를 내가 직접 해제하는 줄 알았다. 아무리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았다. 옆이나 뒤에 있는 여행자가 바로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다른 곳에 주차한 손님이 친절히 와 선박 직원들이 풀어준다고 알려줬다. 땀이 났다. 차는 다시 덜컹거리며 배 속을 빠져나왔고, 바로 제주 시내로 접어들었다.
퇴근 시간이라 차는 곳곳에서 막혔다. 숙소에서는 언제 오느냐고 문자와 전화가 왔다. 그렇게 늦게 서귀포 표선면 표선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주인은 시설 이용방법, 주의사항, 계약 등에 관한 사항을 설명했지만, 매일 오후 5시에 저녁을 먹는 나는 허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근처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정희네칼국수집’이 이 지역 사람들이 자주 가는 맛집이란다. 식당에 도착하니 여덟 시가 조금 넘었다. ‘한약삼계반계탕’을 주문했다. 약의 향이 고스란히 음식에 푹 배어 나왔다. 힘이 났다. 맛있게 비우고 숙소로 왔다. 짐을 잠깐 정리하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람은 매우 거셌고, 모래도 날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냥 들어왔다. 그렇게 나의 로망 제주 한달살이 첫 하루는 거센 바닷바람과 함께 지나갔다.
(2021.2.24. 제주 서귀포시 표선에서)
<한달살이 여행 팁>
* 완도와 제주 간 배편을 스마트폰으로 예약 시 출항과 입항 지역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
* 대형여객선이라 차량 주차 위치(층)를 반드시 확인해라
* 한 달 살이 숙박비에는 가스, 전기 등 기타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 숙소에 입식 탁자(책상)나 컴퓨터(pc)가 있나 살펴라. 좌식은 매우 불편하다.
- 숙소예약은 맨션이란 앱을 이용했다. 당초에는 동쪽 15일 서쪽 15일 예약할 계획이었으나 비용절약을 위해 대중교통이 편리한 지역을 선택했다.
* 숙소는 근처에 마트가 있는지, 제주시나 서귀포에서 출발하는 급행버스(환승 정류장)가 있는지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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