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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2일 차 / 렌즈 파손, 서비스는 서울에서 받아야

by 이류음주가무 2021. 4. 17.

(제주한달살이) 2일 차 / 중요한 망원렌즈가 파손됐다고?

아침 6시 반에 기상해 표선해수욕장 앞바다로 나갔다. 바람은 아직도 거칠게 불었고, 쌀쌀했다. 구름이 하늘을 약간 가렸지만, 일출을 보는 데 지장은 없었다. 

 

숙소로 들어와 카메라 등을 챙겨 성산 일출봉으로 달렸다.

제주살이 목적 중 하나가 사진 촬영이고, 그 우선순위 대상 중 하나가 성산 일출봉 일출 장면을 촬영하는 일이었다. 사진도 장노출로 찍고 싶어서 연습 겸 첫 여행지로, 첫 출사지도 성산 일출봉으로 정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운전했지만 도로 표지판이 가리키는 해안도로가 궁금했다. 바람은 아직도 거셌고, 파도는 점점 높아갔다. 

 

해안가 도로에서 광각으로 사진을 찍어봤고, 망원렌즈(70-200mm)로도 담아봤다. 그런데 망원렌즈에 이상한 느낌이 감지됐다. 제주한달살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할 렌즈로 여행을 떠나기 전, 공을 많이 들인 렌즈였다. 고백하지만 어제 완도에서 카메라 가방을 온전히 잠그지 않고 어깨에 메는 순간 이 렌즈가 시멘트 바닥에 퍽하고 떨어졌었다. 속으로는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겉으로는 괜찮을 거야 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었다. 그런데 지금 렌즈 돌아가는 소리가 눈 속에 큰 모래가 들어간 느낌처럼 서걱서걱 불편했고, 초점도 조절이 되지 않았다. 답답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렌즈로 찍다가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제 편의점에서 구매한 깻잎, 메추리 알 조림, 무말랭이 등을 반찬 삼아 아침을 간단히 해 먹었다.

 

스마트 폰으로 ‘캐논 카메라 서비스센터’가 제주에서 영업하는지 검색을 해봤다. 불행하게도 제주에는 없었다. 결국, 서울 중구에 있는 수리센터로 택배를 보내야 했다. 가까이 있는 ‘표선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에서는 배달과정에서 파손 책임은 질 수 없다고 선을 그은다. 옆 직원이 표선수산시장(마트)에 가서 스티로폼 상자를 사 포장해 보내면 안전하다고 귀띔해준다. 마트에는 렌즈 크기에 맞는 상자가 없지만 다른 크기의 상자를 구매해 견고히 포장 후 서울로 보냈다. 

우체국 옆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었다. 미역과 다시다, 국 간장 그리고 다진 마늘을 구입해 숙소로 갔다. 아침에 지은 밥으로 점심을 조금 먹고 김영갑 갤러리로 향했다. 그때 모자와 렌즈 마운트 링을 우체국에 놓고 온 게 생각났다. 우체국에 다시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한 시가 되자 문은 다시 열렸고, 우체국에 들어갔더니 오전에 친절히 방법을 안내해 줬던 남자 직원이 따로 보관해 놓은 모자와 마운트 링을 건네주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따라비 오름’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느 길을 가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포장된 좁은 길을 따라갔더니 주차장이 보였다. 무수한 여행자가 다녀간 듯했다. 천천히 오르니 거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제주한달살이의 중요한 계획 중 하나가 오름을 오르고, 또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런데 ‘따라비 오름’을 오르면서 생각에 변화가 왔다. 날씨도 그렇고, 오름을 오르고 있는 오름에서는 그 오름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멋지게 포착할 줄 알았지만, 그 지점이나 포인트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단지 제주살이 중 처음 오른 오름이 ‘따라비 오름’이었다는 추억에 만족해야 했고, 이번 여행에서도 만족할 만한 오름 사진을 찍는 일은 포기했다. 그냥 오르고 즐기기로만 정했다.

제주살이 중 가장 많이 통과하고 찾았던 ‘녹산로유채꽃길’로 향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이브 길로 정평이 나 있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은 가서 찍고 싶은 국민 포인트다. 길은 직선과 구불구불한 S자형의 도로였다. 오르막길이 있고 또 내리막길이 있는 데 10km가 넘는다. 유채꽃은 피기 전이고, 벚꽃은 더 시일이 걸려야 필 듯했다. 드라이브하는 차량은 많았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로 향하던 중 성읍민속마을이 있어 잠깐 멈추었다. 

 

민속 마을의 풍경이 이상하게 현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평일이라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성곽 아래 유채꽃은 노랗게 피어있었다. 돌하르방과 함께 유채꽃 사진을 찍고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동백꽃이 한참 진 뒤지만, 생생한 꽃도 피어있었다. 동백꽃이 툭 진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슬프다고 해야 할까 마음을 정하기가 망설여졌다. 부끄럽게 핀 수선화 옆에 붉게 시들어 떨어진 동백꽃은 인상적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향했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의 오름을 결정적으로 알리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한 장본인이다. 두 차례 다녀갔지만, 본격적인 제주한달살이에 상징적인 의미도 내포한 미술관이라 또 방문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빠르게 사진만 감상하고 나오기로 했다. 어느 비구니 스님도 카메라를 들고 오셨다. 특히 대형 오름 사진 앞에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무엇인가를 쓰고 모습이 인상이라 셔터를 살짝 눌렀다. 이 순간에 누군가에게 무슨 내용으로 어떤 감정을 담아 조용히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봐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

 

저녁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어제 숙소 주인장이 소개해준 곳으로 향하다가 제주다운 ‘우동가게’를 만났다. 오후 6시 조금 전이다. ‘우동가게’는 크지는 않았고 테이블도 적당했다. 주인장이나 서빙을 하는 친구들이 모두 젊어서 그런지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맛집처럼 보였다. 나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튀김은 바삭거렸고, 초밥은 특이했다. 우동은 다소 양이 많았지만 존득한 면발에 국물은 진해 먹기가 참 좋았다. 아담하고 깨끗하며 조용한 식당에서 홀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맥주 한 잔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적시니 쏴아 하는 취기가 몰려왔다. 대신, 어제와 오늘 우울하고 답답했던 기분은 시원스레 가셨다. 혼자 웃으며 힘차게 숙소로 향했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비도 뿌렸지만, 서귀포 날씨가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오직 즐기는 일뿐이다. 숙소에서 책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2021. 2. 25. 제주 서귀포 표선에서)

< 제주한달살이 팁 >
 - 제주에는 ‘캐논 카메라 서비스 센터’가 없으니 고장이 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 
 - 우체국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이니 이때 우체국 방문은 자제하자.
 - 여행 전에 차량 내비게이션을 최신의 정보로 업그레이드하고 가시라.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매주 수요일이 휴무다. 인근 카페도 비슷하다. 
 - 표선면 표선리에 소재한 '우동가게'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