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 3일 차 / ‘백약이오름’ 아니면 ‘아부오름’?
아침부터 바람은 화가 나 있었고, 하늘은 심술을 부리고 있다.
어쩌겠는가? 자연의 섭리거늘. 어제 산 미역으로 국을 끓여봤다. 연두의 말대로 다시다와 국간장을 넣었고, 나는 여기다가 다진 마늘을 추가했다. 팔팔 끓는 소리가 경쾌했다.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맛이 놀랍다. 미역국이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내가 이렇게 잘 끓이나.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미역국을 매일 해 먹어야겠다. 당초 계획은 미역국 외에 내가 좋아하는 아욱국과 시금칫국을 번갈아 끓여 먹기로 했지만, 처음 요리한 미역국의 맛이 정말 별미 중 별미였다. 국까지 제대로 해 먹은 아침이다.
오늘 일정은 ‘빛의 벙커‘전 관람과 ‘백약이오름’ 오르기로 정했다.
우선 표선해수욕장 근처로 이동해 먹구름과 거친 바다와 높은 파도를 배경으로 장노출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어제 택배 보낸 망원렌즈의 부재가 아쉽지만 다른 렌즈로 담아보기로 했다. 비는 간간이 내리고, 바람은 계속 거칠었다. 이 와중에 해안가에서 보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저 거친 바람과 파도를 친구 삼아 즐기는 용기가 부럽다.
소나무와 푸른 무밭, 바다를 배경으로 찍었고, 인근에 핀 유채꽃밭으로 이동해 전경에 놓고도 찍어봤다. 다소 아쉬운 상황이지만 제주에서만이 누리고 찍을 수 있는 풍경이지 싶다. 장노출 시간을 길게 짧게 조절해보고, 조리개도 조였다 열었다 시도해봤다. 결과물은 나중에 육지로 건너가 내 컴퓨터로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LED 모니터에는 그럭저럭 나온 듯하다.
해안가를 따라 달렸다. 여전히 바람은 거셌고, 비는 그나마 멈췄다. 배가 출출했고, 잠시 차를 세워 맛집을 찾아봤다. 맛집은 주로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 버스’ 앱을 주로 활용했다. 현재의 위치(온평항구)에서 앱을 작동시키면 거리를 정해 메뉴별로 다양한 맛집을 찾을 수가 있다.
찾아본 결과 근처 해안가에 있는 ‘전복마시문어마시’ 맛집으로 정하고 들어갔다.
출입문 정문은 해안가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측면으로 열고 들어오란다. 한시가 조금 안됐지만, 손님은 별로 없었다. 식당 내부는 깔끔했다. 어느 연예인도 찾아와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밑반찬이 나왔다. 반찬은 가지런했고, 양은 적당했다. 혼자 왔을 때 너무 많은 반찬을 내놓는 식당을 나는 좀 의심하는 성격이다. 해물파전을 보니 한 잔 생각났지만 참았다. 전복 돌솥밥이 나왔다.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고 또 싱싱한 전복을 사용한 느낌이다. 젓가락으로 누르면 탱글탱글해 반동으로 튕겨 난다. 그만큼 전복은 싱싱하다는 말씀이다. 양념간장을 적당히 넣고 비볐다. 입과 코로 느껴지는 풍미가 제법 괜찮다. 그러니 블로그나 추천 뷰가 높게 평가됐지 생각했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빛의 벙커’전이 열리는 어느 벙커로 향했다.
정말 그곳은 벙커였었다. 벙커 내부 벽면이 빛을 투사하는 전시회로 고흐와 고갱의 수백 점이 지나간단다. 평일이고 입장료도 15,000원인데 관람객은 복잡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봄방학과 겹쳐 그런지 가족 단위가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큰 벽면에 펼쳐진 고갱의 원시적인 느낌의 그림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까지 자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곧 이어졌다. 강력한 원색에, 거친 붓칠이 생생하게 잡힐 듯 느껴졌다. 그는 생전에 단 하나의 작품 ‘아를의 붉은 포도밭’만 400프랑에 판매됐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특히 동양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된 반 고흐의 마지막 화면은 논란이 있지만, 유작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끝으로 40여 분간의 빛의 향연은 막을 내렸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지만, 자신만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양보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는 고흐의 그림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비록 그림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영상으로 다가온 기쁨 역시 특별했다. 다음 전시는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전이라고 하는데 그때도 또 와야겠다.
고갱과 고흐의 감동을 뒤로하고 ‘백약이오름’으로 향했다.
백약이 오름은 주인장이 일부 휴식년제에 들어갔다는 말을 했었다. ‘일부’란 말에 더 궁금했다. 가는 중간 길가에 제주 감귤 농장이 많았다. 집을 떠나온 지 며칠 지났으니 제주 특산물을 보내야지 하면서 한 농장에 들렀다. 한라봉이 눈에 들어왔다. 택배를 보내겠다고 하니 며칠 걸린다고 한다. 한 상자를 집으로 보냈다.
바람 아직도 거셌다. 도착해 주차 후 오르다 보니 앞에 젊은 연인이 보였다. 보기가 좋았다. 부러웠다. 휴식년제에 들어간 지역을 돌자 맞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마른풀들이 바람에 맥없이 흔들렸다. 나는 삼각대를 세우고 시간을 담아보고 싶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좌보미오름(?) 등을 배경으로 여러 차례 장노출을 시도했다. 결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실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에 맘에 드는 사진을 찍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시간이 남아 있어서 근처 아부오름으로 옮겼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가 서너 대 주차해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르게 오르자마자 바로 정상이었다. 표고가 301m 정도란다. 정상은 마치 둥근 도넛처럼 생겼다. 둘레도 무려 2.1km란다. 어두워졌지만 그냥 내려가면 후회될 듯했다. 혼자 빠르게 돌았다. 돌면서 주변 오름도 한눈에 들어왔다. 높고 낮고 겹겹이 둘러싸인 오름이 마치 낮 선 세상에 연착륙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시간에도 오르는 사람들이 또 있었고, 둘레를 걷는 이도 만났다. 중간쯤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다. 생각이 넓고 깊게 잠긴 듯했다. 나도 생각이 깊어야 하는데 사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뛰어다니다시피 하니, 느림의 맛과 멋을 모르고 설치는 모습에 잠시 한심하기까지 했다.
아부오름은 느린 걸음으로 돌고 돌면서 자신을 살펴보는 오름으로 적격이다. 이번 기회 말고 다음 기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종일 한 열 바퀴는 돌고 싶다. 그런 매력을 지닌 오름이 아부오름이다.
아부오름에서 숙소로 향하던 중 오름 풍경과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잡아당겼다. 차를 세워 몇 컷을 담았다. 쓸쓸한 분위기도 풍겼고, 다른 풍경은 들뜬 마음을 누그러트리면서 나를 편안하게 했다.
저녁은 아침에 먹던 미역국을 다시 먹었다. 스스로 감탄했다. 그래 좋다. 한 달 내내 미역국만 끓여 먹자고.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카페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해안가 카페로 향했다. 두 군데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맥주는 팔지 않았다. 결국, 편의점에서 맥주 4캔과 땅콩을 구입했다. 맥주는 주로 제주에서 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에일맥주였다. 그중 한 캔을 마셨다. 내일은 바람이 잦아졌으면 좋겠다. 2021. 2. 26. 쓰다.
< 제주한달살이 소소한 팁 >
- 두 끼 또는 세끼 분량의 미역을 물을 함께 넣어 끓인 후 다시다 한 티 스푼, 적당량의 국간장을 넣고 간을 본다. 간이 맞으면 다진 마늘을 한 스푼 넣어 다시 끓여주면 정말 맛있다.
- 맛집을 찾을 때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 버스 앱’을 활용하면 주변에 맛집을 메뉴별로 한눈에 찾을 수 있다. 방문자 리뷰나 블로그 리뷰가 많거나 별표가 가득한 곳을 그래도 찾는다.
- 오름은 대부분 한 시간 이내에 오를 수 있다. 주변에 있는 오름을 사전 조사하면 하루에도 몇 개씩 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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