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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아보니

[제주한달살이] 12/17, 25일차 맥주는 역시 제주 에일이 최고지?

by 이류의하루 2022. 12. 17.

12/17 25일차 / 제주맥주를 체험하다. 유람위드북스, 예술 곶 산양, '더애월'의 두루치기 

올레길이나 한라산, 오름을 걷거나 오를 계획은 남은 기간에는 없다. 오늘은 제주 서부지역 문화시설 등을 관람하고 체험하며 여행하는 일정으로 잡았다. 가장 먼저 제주 맥주 공장을 둘러불 계획이다. 제주맥주 공장에서는 맥주 제조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시음까지 가능하다. 단 사전예약제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었다. 김칫국을 끓였다. MSG를 조금 투하해야 비로소 제맛이 난다. 열 시 반쯤 숙소에서 나왔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구름은 변화무쌍하게 요동을 친다. 무슨 일이 벌어질 험악한 분위기다. 한림읍 금성농공단지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주맥주 공장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현장에 도착했더니 오픈 시간은 오후 1시다. 

 

어제 11시로 착각했다. 근처 유람위드북스를 찾아갔다. 유람위드북스는 11시부터 오픈한다. 네비게이션에는 도착 예정시간이 11시다. 올레14코스를 걸었던 길로 간다. 양편에 농장이 있는 길 끝에 책방 '유람'이 있었다. 유람은 책방, 도서관, 카페 등 기능을 하는 복합공간이다. 고양이가 반갑게 맞이한다. 연인을 보이는 한 쌍이 먼저 입장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책도 판매하느냐고 물었더니 노란 공간에 있는 책과 문구는 판매한단다. 창가 쪽 테이블이 있고, 가운데는 책장이 있다. 신발을 벗고 다락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편안한 소파와 함께 책이 가득했다. 내려와 노란 공간을 둘러봤다. 책방에 왔으니 책 한 권을 사야 했다. 커피는 그 사이 나왔다. 

책방 안에서 두어 번 재채기를 했다. 새로 이전한 새 건물이라 냄새가 났다. 주인장이 커피를 갖고 오면서 따듯한 물도 한잔 드시라며 배려하다. 소리를 듣고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고맙다. 커피를 마시며 셀카 놀이도 즐겼다. 누구나 읽고 기록할 수 있는 방명록이 있어 오늘 날짜를 적고 방문 소감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11시 오픈하는 시간에 도착. 내가 꿈꾸는 책방, 카페. 밖에는 싸락눈이 갑자기 휘몰아치는 데 내 마음은 단 몇 년이라도 책방, 카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살다 보면 꿈은 이루어질까. 책방만 오면 가슴은 마치 창밖 바람처럼, 싸락눈 같이 정신 없이 울렁댄다 / YBY  

창밖에는 싸락눈이 쏟아지고 바람은 거세게 휘몰아쳤다. 책방 카페라는 장소에 오기만 하면 눈은 커지면서 두리번거리고 가슴은 울렁거린다. 한참을 커피를 마시고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손님이 어떻게 이곳까지 알고 온다. 잔을 반납하고 노란 공간으로 갔다.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란 책을 골랐다. 계산하면서 스탬프를 찍어달라고 하니 스탬프는 없고 노란 공간에 보면 알파벳이 있으니 골라 찍어야 한다고 한다. 노란 공간에서 가 스탬프를 찍고 있는데 고양이가 다가와 반긴다. 주인장도 고양이 엽서를 가지고 와 책을 산 분께 엽서 두 장을 드리니 고르란다. 두 장을 골랐지만 나중에 숙소에 와보니 석 장이 따라왔다. 책 안 표지에 YOORAM이라고 한 자 한 자 찍었다. 언젠가 책을 읽을 때 이 책은 제주한달살이 중 유람위드북스에서 산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나와 저지예술인마을에 있는 북갤러리 파파사이트와 갤러리 노리로 이동했다. 두 곳은 김창열도립미술관 인근에 있다. 현장에 도착하니 오픈한다는 열두 시가 넘었는데 출입문은 닫혀있고, 옆에 있는 갤러리 역시 마찬가지다. 

 

김창열미술관 입주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다목적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열두 시가 넘어 혹시나 했는데 문은 열려있고, 작가 혼자 계신다. QR 체크인을 한 다음 인사하며 관람하러 왔다며 들어갔다. 사진 촬영도 가능한지 동의를 구했다.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천천히 둘러봤다. 전시 이름은 ‘강주현 개인전 관계의 비정형’이다. 전시장 전체를 크고 작고 굵고 가는 둥근 스테인리스에 다양한 에나멜 페인트로 색칠한 원형을 이어서 설치한 작품이다. 

 

각각의 색과 크기의 다름이 정형화돼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일 하지 않은 원형들이 서로 묶음의 형태를 구축한 모습이 관계의 다양성을 표현한 듯하다. 사실 전시 도록을 읽어봐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천천히 감상하면서 카메라에 담았다. 내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렌즈라는 무생물의 기계로 보자니 작품은 나름의 의미를 담아 연결된 듯하다. 관계의 비정형뿐만 아니라 관계의 일정한 정형화도 보이는 듯했다.

열두 시 오십 분에 제주 흑돼지 두루치기로 유명한 ‘더애월’로 향했다. 유현수 작가와 한시에 점심을 먹기로 이미 아침에 약속했다. 한 시에도 ‘더애월’은 손님으로 가득했고, 식사를 마치고 나간 빈자리 두 테이블이 보였다. 치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유현수 작가 환한 웃음으로 나타났다. 유현수 작가와는 지난번에 한 번 만나 차를 마셨지만, 육지로 가기 전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싶었다. 그는 십여 년 전 이천시청에 사표를 내고 홀연히 제주로 내려와 숙박업을 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였다. 지금은 숙박업을 접었고, 글쓰기에 전념하는 전업 작가다. 

두루치기를 주문했고, 맥주 한 병을 주문해 나는 딱 한 잔만 마셨다. 식사자리에서 오래된 얘기를 나누기는 부적절해 요즘 근황을 주로 나누었다. 두루치기는 맛있었다. 지난번에도 왔었지만, 문이 닫힌 상태였다. 상반기 먹었을 때 두루치기는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했었다. 한 시간가량 식사하며 각자가 살아온 나날이 제주의 바람처럼 오갔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 차 한잔 마시자고 하니 자기 집으로 가잔다. 자기가 커피를 내려 드리겠단다. 미술관 안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갔다. 이 지역 사람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 낼 길이라. 현수 집에 도착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그의 아내가 내놓은 천혜향을 먹으며 제주 이야기 등으로 연결됐다. 환상숲 곶자왈 이야기는 물론 그때 사표를 제출했던 동기, 질병의 치료과정 등등 몰랐던 얘기가 그의 입으로 나왔고, 나는 지금 제주에 와서 책방 등을 다니는 이유 등을 얘기했다. 

오늘도 저지예술인마을에 있는 북 갤러리에 왔는데 열두 시가 넘어도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더니, 제주는 어딜 가든 영업을 하는지 반드시 전화로 확인해야 한단다. 어느 업소는 당일 부부 싸움해서 문을 열지 않습니다고 써서 붙이기도 한단다. 재료가 소진되어 영업을 일찍 마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두 시간 가까이 식사하고 대화를 하며 소중한 추억을 되살렸고, 나의 희망을 말하고 현수의 꿈을 들었다. 인사하고 나오면서 내일 저녁에 소주 한잔하자고 약속하면서 제주 맥주 체험장으로 향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눈보라와 싸락눈도 번갈아 가며 뿌리는데 길가에 눈은 쌓이지 않는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불다 보니 가벼운 눈 등은 모두 산산이 흩어진다. 

 

제주 맥주에 도착하니 그때는 굵은 싸락눈이 마치 우박처럼 쏟아진다. 차를 세우고 3층으로 올라갔다. 많은 젊은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세 시 반에 체험을 예약한 손님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공장에서 직접 조금만 맛을 보고 싶었다.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은 제주 위트에일과 제주 페롱에일 두 잔을 주문했다. 두 잔이 기본이다. 잔에 양을 조금만 달라고 하니 남기면 된다고 잔마다 가득 따라 제공한다. 맛은 시원했다. 바디감도 남달랐다. 마음 같아서는 한잔을 시원하게 넘기고 싶었다. 아쉽게도 맛만 살짝 느꼈다. 잔을 반납한 후 기념품을 골랐다. 제주맥주컵이 마음에 든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앞 ‘별책부록’에서 제주 맥주 열 병을 샀으니 육지에 나가 마실 때 이 잔을 사용하겠다면서 한 개를 주문했다. 밖에 나오니 눈보라는 치고 있었고, 나는 입가심으로 귤 하나를 먹었다. ‘예술 곶 산양’으로 이동했다.

제주 시내를 가다 보면 ‘예술 곶 산양’이란 현수막이 붙어 있어서 궁금했다. 떠나기 전 반드시 보고 가야겠다며 했고, 마침 오늘 일정이 산양 인근에 있어 방문했다. 바람은 불고 눈보라는 휘몰아쳤지만, 도로에 눈은 쌓이지 않았다.

 

‘예술 곶 산양’은 폐교된 산양초등학교를 재생하여 복합문화 창작공간으로 탄생했다.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국내외 예술가 간 네트워크 교류와 창작 활동을 지원하면서 작품을 전시하고, 예술가와 지역 주민 간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해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 개관을 했다. 

 

오늘 전시회도 2021년도 레지던시 결과보고 전시회인 ‘산양 연회’로 2022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 공간은 협소했지만, 창작 결과물은 훌륭했다. 한쪽은 전시관, 반대편에는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 구성된 ‘예술 곶 산양’이 지역거점 문화공간으로 지역을 살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기를 기대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눈보라가 앞을 가린다. 

 

정문 앞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다. 눈보라는 치고, 동백꽃은 붉게 피고 또 지고 있다. 눈보라를 맞으며 장면을 찍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갑자기 정물오름엘 가고 싶었다. 바람불고 눈보라는 치고 구름이 어둡게 덮인 오름의 능선을 담고 싶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생각과는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숙소로 오려다 이시돌 목장으로 향했다. '우유부단'이란 카페의 불빛이 따듯하게 비추고 있었다. 눈은 뿌리고 있었고, 날은 어두운데 불빛이 건물과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길가에서 카페의 모습을 담았는데 분위기나 색감이 만족스럽다. 

 

나홀로 나무로 이동했다. 눈보라 몰아치는 목장과 두 오름 사이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가 보고 싶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가니 바람이 거세다. 눈보라는 약해졌지만, 바람은 워낙 거세다 보니 세상이 흔들리고 내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나홀로 나무를 렌즈에 담고 숙소로 오는데 차량은 서행한다. 눈은 쌓여 있지 않지만, 기온이 급강하로 차량이 조심조심 운전하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해 차량의 문조차 열기가 힘들다.  밤새 바람은 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