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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12/18, 26일차 책방 어떤 바람, 맛집 선채향, 현수를 만나 소주 한 잔하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12. 18.

12/18, 26일차, 책방 어떤바람, 선채향 그리고 현수를 만나 소주 한 잔하다

제주한달살이도 막바지다. 지금은 특별히 찾아가고 싶은 장소는 따로 없다. 다연이가 온다고 하니 나머지 일정을 다연이에게 맞추면 된다. 어제부터 내리던 눈은 오늘도 내린다. 바람 소리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밖은 어두웠고, 바람은 계속 불었다. 빈둥거리다가 여덟 시를 넘겼다. 오후 4시에 현수랑 약속이 있으니 시간이 걸리는 일정을 잡기는 애매하다. 

 


창고에서 청소기를 갖고 와 방을 청소 후 11시쯤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제주다운 풍경을 담고 싶다. 책방 한 곳만 방문하기로 했다. 숙소 근처 풍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늘 보고 있으면 그런 풍경이다, 숙소를 나와 좌회전하면서 늘 다니던 길을 일탈했다. 도로는 조용했고, 교행 하는 차량은 없었다. 넓은 들판에서 사냥꾼이 꿩을 목표로 움직임은 분주했다. 병악 오름을 어슬렁거렸고, 갈대를 담았다. 

 

카멜리라 힐을 지나 화순 방향으로 책방을 찾아 핸들을 돌렸다. 산방산 아래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려니 주차비로 이천 원을 내라 한다. 책방으로 행했다.

사계리에 있는 ‘어떤 바람’이란 책방이다. 사계리는 산방산에서 해안 쪽으로만 다녔지 마을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학교를 지나자 책방이 있었다. 학교 근처에 있어 학습교재를 주로 판매하는 책방이 아닌가 판단했다. 책방 앞에 차를 세웠다. 휴일이니 단속할 리는 만무하고. 책방 외관은 사실 형편없었다. 

열두 시부터 영업한다고 했는데 불은 밝혀있었다. 건물은 낡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외벽에 포도과에 속하는 담쟁이넝쿨이 낡은 건물을 덮고 있었다. 저 안이 책방이라면 완전 반전이지 싶었다. 책방이었고, 내부는 멋지기까지 하다. 책방 안은 따뜻한 기운이 감싼다,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덩치 큰 개가 마치 친구를 마주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인스타나 블로그에 보면 대부분 책방은 개나 고양이 한 마리씩을 키운다. 열두 시가 넘었고, 붉은 밝혔었으니 누군가 있을 터이니 사장님하고 부르니 서점 지기님이 나오신다. 선한 얼굴이시다. 앞치마를 두르셨다. 책방 투어 하는 사람이고 우선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했다.

 

책방을 순례하는 주안점은 어떤 종류의 책을 판매하느냐와 책방이 어떻게 구성됐느냐 두 가지다. 내 서재에 있는 책들이 많이 있었다. 친근했다. 나는 예술 관련 책을 주로 읽기 때문에 예술 관련 책을 물었다. 책방 지기는 예술 관련 책은 집사람이 주로 관리한다면서도 한 코너에 있는 책을 안내한다. 존 버거의 ‘풍경론’이란 책을 이미 마음에 두고 물어봤는데 주인장은 사진, 건축 등을 말씀하신다, 사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방에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이란 책자가 꽂혀 있다는 점이다.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책방에서도 빈자의 미학이란 책을 보지 못했는데 사계리에 있는 책방에는 그 ‘빈자의 미학’이란 책이 꽂혀 있었다. 빈자의 미학이란 책을 보고 이 책방은 내가 찾는 진짜 책방이구나 생각했다. 페미니즘 관련 책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예술 관련 책을 선택하느냐 기로에 섰지만, 예술 쪽으로 결정했다. ‘존 버거’의 ‘풍경론’을 구입했다.

 

주인장과 계속 대화는 이어졌고, 오해했던 부분은 주인장의 설명으로 풀었다. 가고 싶은 곳을 추천받고, 맛집을 소개받았다. 산방산 유래도 들었고, 제주 도민의 문화에 대한 설명도 청취했다. 광명에서 제주로 이사 온 책방 지기의 이야기는 제주를, 책을, 사계리를 자랑하고 사랑하는 말씀으로 시작과 끝은 같았다. 산방산의 유래는 산에 방이 있어서 산방산이란다. 한시는 넘었고, 배는 출출했다. 사계 해안에 가까이 있는 ‘선채향’이란 전복 칼국수 맛집을 추천한다.

책방 지기가 추천한 ‘선채향’으로 향했다. 마을 안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바람은 불고, 싸락눈도 날리기 시작했다. 사계리 마을은 정다웠고, 단정했다. 걸어서 갈 거리지만 차를 몰아 ‘선채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좁았다, 인근 공간을 활용해야 했다.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께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차장 안내는 철저했고, 조금 떨어진 창고 앞에 주차하고 전복 칼국수 맛집인 ‘선채향’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좌석마다 손님은 가득하다. 한 시 반이 넘었다. 

 

자리에 잡고 앉아 전복 칼국수를 주문했다. 젊은 사장은 분주했고, 손님은 계속 들락날락했다. 전복 칼국수가 나왔다. 색감이 좋았다. 청양고추를 넣으면 더 맛있다며 갖다 준다. 반찬은 두 가지다. 전복 다섯 쪽이 별을 그리고 있었고, 면발은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해 식감이 좋았다, 미역과 면, 전복은 삼위일체였다. 밥 한 공기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전복 칼국수만을 즐기고 싶었다. 속은 든든했고,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중간중간 반찬의 부족하지 않느냐 하며 친절히 배려하는 주인장의 진심이 전복 칼국수 맛에 담겨 있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오면서 사계리에 책방 지기가 추천해 왔다고 하니 더욱 반긴다. 다음에도 꼭 방문해달란다. 나중에 제주에 오고, 산방산 근처에 온다면 ‘선채 향’은 다시 찾아 먹을 터다. 맛집을 추천해달라면 ‘선채향’은 반듯이 추천받을 맛집이다.

 

모슬포에 있는 책방 두 곳을 방문할까 하다가 4시 약속이 있어 숙소 근처 폐교의 카페로 향했다. 칼국수가 맛있는 ‘홍칼’ 옆이다. ‘인더이스트’란 카페로 운동장이 넓다. 예술을 담은 문화활동 공간이다. 카페도 운영한다. 커피를 주문했고,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셀카 놀이도 즐겼다. 창밖 햇빛은 변화가 제주 바람처럼 요란하다. 다른 손님도 입장하자마자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문화체험공간에 전시된 작품도 부럽다. 

숙소로 올라오는데 한라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눈 쌓인 모습은 보일듯하다. 숙소에 차를 세우니 세시다. 네 시에 약속했으니 한 시간은 여유가 있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가방에 넣고 앞에 있는 원물오름으로 향했다. 

 

빠르게 다녀오면 약속 시간을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원물오름 오름길은 질퍽하고 말똥도 길에 깔려있어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올라갔다. 오름길이 정확하지 않아 가는 길이 결국 길이 되었다. 바람은 강하게 불고, 싸락눈은 내렸다. 경사진 길을 오르다 보니 미끄럽다. 정상에 오르니 한라산은 다시 구름에 덮여 있어 내가 바라는 풍경은 보지 못하고 하산했다. 약속 시간이 오 분 정도 늦어질 듯하다. 싸락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늦겠다고 전화하면서 서둘러 걸었다.

 

‘전원일기 동광점’은 쌈밥집으로 평가가 좋다. 여기를 만남 장소로 정했다. 현수가 먼저 도착했고, 나는 3분 정도 늦었다. 쌈밥을 주문하면서 낮은 온도의 한라산 한 병도 추가했다. 옥돔구이도 맛보고 싶었다. 현수랑 대화는 즐거웠고, 그 끝이 없었다. 가슴이 울컥했고, 울컥한 가슴 때문에 목이 메기도 했다. 때로는 눈물이 살짝 났고.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도 들었다. 은미 누나가 보고 싶었고, 남철이가 그리웠다고 했다. 

나도 현직에 있던 그들이 보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특별한 황이 아니면 연락하는 일이 머뭇거려진다. 현수처럼 누군가를 생각하고 기억을 해야 하는데 기억하지 못했다. 책을 이야기하고, 만남을 약속했다. 어제는 이천시청 근무하는 꿈자리까지 꾸었다고 한다.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다른 한 세상을 보는 일이다. 현수가 그랬고, 현수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또 그랬다. 시간은 흘렀고, 소주병은 거듭 나란히 서기를 반복했다. 결국, 맥주 한 병까지 테이블 한 자리를 점했다. 어두웠고, 바람은 불었다. 식당 손님 모두가 빠져나간 뒤에야 비로소 엉덩이가 가벼워졌다.

 

현수 아내가 시동을 걸고 있었고,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짧은 거리지만 아쉬움은 컸다. 반드시 또 볼일이다. 현수를 현수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지금도 바람은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