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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11일 차 / 미술관 투어, 좌혜선 작가의 그림에는?

by 이류음주가무 2021. 6. 23.

[제주한달살이] 11일 차 / 미술관에 갔다. 나를 감동시킨 좌 혜선 작가

- 제주현대미술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더애월흑돼지식당, 이중섭미술관, 파시방

토요일이다. 주말에는 가능한 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유명한 장소는 피하기로 했다. 어제 23㎞ 정도 둘레길 등을 걸었고, 오늘은 날씨도 흐린다 하니 미술관 투어로 일정을 잡았다.

먼저 제주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제주의 아름다운 숲 곶자왈에 자리 잡은 제주현대미술관은 제주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독특한 미술관으로 저지문화예술인 마을과 함께 제주문화의 이색적인 문화공간’으로 이름이 나 있다. 한적한 장소에 제주라는 자연과 태초부터 하나가 되어 있는 듯했다.

 

미술관 건물 입구 위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알고 보니 최평곤 작가의 ‘여보세요(Hello)’란 작품으로 제주현대미술관의 상징적인 조형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예약제라 걱정을 했지만, 방문객이 많지 않아 수월하게 입장했다. 지역작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를 매혹시키며, 마치 감전이라된 듯 걸음을 멈추게 한 그림은 ‘좌 혜선 작가’의 작품이었다. 

 

모든 작품이 놀랍고 매혹적이지만, 특히 장지에 분채로 채색한 ‘냉장고 여자#2’란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냉장고에 문은 열려있었고, 내용물도 부족하지 않은 듯했다. 비쩍 마르고 발가벗은 여인이 냉장고 앞에서 냉장고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 어둠 속 냉장고 안에서 쏟아지는 빛이 여인의 구부정한 신체를 강렬한 명암으로 표현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그 안을 바라볼까? 나는 그 자리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 감정은 슬픔일 수도 있고, 고독일 수도 있고 또 소외일 수도 있고 삶이자 죽음일 수도 있었다. 한참이나 시선을 고정해 바라보았다. 다른 작품도 나를 사로잡았지만, 그 화폭이 너무나 강렬해 다시 그 그림 앞에 두 번째 섰다. 그때 고요 속에서 슬픔이 갑자기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 복받치는 슬픈 감정 속에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좌 혜선 작가’는 이 그림을 시작으로 그동안 불안했던 생각을 떨치고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야외에서는 제주대 교수 ‘이승수 작가’의 프로젝트인 ‘어디로 가야 하는가?’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잡목 등이 우거진 미술관 옆 고자왈 숲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자연 속에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풍화작용으로 작품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전시회다. 전시된 작품인 줄 모르고 지나치다가 갑자기 작품과 일별 할 경우 섬찟 놀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숲 속에 있는 설치물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젊은 누군가가 말을 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내 줄 수 있느냐며 명함을 건네준다. 그 작가가 바로 이승수 작가였다.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했지만,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블로그 포스팅 사진을 본 다면 다행일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안함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불편했다. (* 혹여 이 블로그를 보고 댓글로 메일 주소를 달아 주시면 그때 촬영한 사진 모두 보내드리겠습니다.)

 

‘김홍수 작가’의 전시공간은 그야말로 색채의 적나라한 향연이 펼쳐졌다.

 

작품 대부분은 붉은 색조로 표현된 작품을 전시했고, 전시공간 그 자체도 역시 황홀했다.

 

김홍수 화가는 구상과 비구상을 한 캔버스에 매치를 하는 ‘하모니즘’의 작가라고 한다. 관능적이면서도 한국의 정서나 관계를 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보전한다. 김홍수 화백이 추구하는 음양의 관점이 적용돼 그런 것 같다. 다양한 오브제도 함께 사용한 그의 작품은 제주현대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자리매김한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도 찾았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김창열 화백이 1957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대표작품 230점을 제주도에 무상 기중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미술관 건물 역시 제주현대미술관의 느낌 그대로다.

사전 예약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입장 가능한 인원이 미달돼 입장할 수 있었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비 오는 날 창에 빗방울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재현이 극히 사실적이다. 손가락으로 톡 튀기고 싶을 정도로 세밀하다. 요즘 옥션 등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기사도 최근에 읽은 적이 있다.

 

미술관 앞에 있는 ‘더애월흑돼지’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이 조금 늦어 허기가 심한 상태다. 제주산 흑돼지 두루치기가 먹고 싶었다. 한 시가 넘었는데도 테이블은 손님으로 가득했다. 맛집이란 증거다. 그런데 먹고 싶은 메뉴는 2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가능하단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나 1인분이 가능하다. 제주도를  혼자 여행하면 먹고 싶은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1인분이라도 조금 가격을 인상해 판매한다면 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투덜댔더니 종업원들이 웃는다.

 

물론 돼지 김치찌개도 맛있다. 반찬도 적당한 가지 수와 양, 깔끔함 등이 마음에 들었다. 김치찌개는 선호하지 않지만 결국 냄비의 바닥을 비웠다. 맛도 최고지만 주방장이나 직원 모두 친절한 ‘더애월흑돼지’ 식당이다. 

제주국제조각공원이 궁금했다. 숙소로 가는 중간에 있어서 찾아갔다. 주차장에 주차한 후 주변을 살펴보니 여기에는 관광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매표소 직원에게 전체를 둘러보려면 얼마나 걸리냐 물어보니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단다. '이중섭미술관' 관람 예약시간이 다가와 다음 기회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서귀포 시내로 차를 몰았다.

이중섭미술관에는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입장하려고 하니 현재 안에서 관람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예약시간까지 기다리란다. 

 

주변을 조금 살펴본 후 예약시간에 줄을 선 후 입장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이중섭 편지’란 책을 읽었기에 ‘은지화’ 그림이 보고 싶었다. 또한, 아들과 부인에게 절절하게 쓴 편지의 글씨체도 다시 보고 싶었다. 당시 화가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보니 그 상황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한국 화단의 쟁쟁한 작가들도 천재적인 이중섭 화가의 인연을 소개했고, 또 40세에 유명을 달리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도 전시돼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감상을 하고 나니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이중섭미술관 주차장 바로 인근에 ‘파시방’이란 팥죽 전문식당으로 향했다. 

 

때마침 손님은 없었다. 내부는 단촐하지만 정갈하며 품격 있게 꾸며져 있었다.

 

나는 ‘옛날 팥죽’을 주문했다. 다른 팥죽과 달리 덜 달다고 했다. 새알이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옛날 팥죽에는 들어가지 않는단다. 요리를 준비하는 주인장께서 고맙게도 ‘새알을 넣어 드릴까요’ 하고 다시 묻는다. 나는 다섯 개만 넣어달라고 했다. 열개 정도는 넣어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나중에 후회를 했지만, 반찬은 단출했다. 물론 다른 팥죽집에 가도 반찬은 한두 가지다.

 

옛날 팥죽은 담백했다. 단맛이 약한 순수한 팥 맛 그대로 가 내 입맛에는 적당했다. 단맛을 추가하기 위해 설탕을 조금 내왔지만 나는 그냥 순수한 팥죽 맛을 즐겼다. 결국, 팥죽과 반찬을 남김없이 모두 비웠다. 속은 따듯했고, 이마엔 약간 땀이 송골송골 맺었다. 그래도 기분은 마치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식혜를 마신 듯 상쾌했다. 

 


서귀포까지 왔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듯 매일올레시장의 오메기떡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팥죽 사장님께 슬쩍 물어봤다. 어느 떡집의 오메기떡이 사장님 입맛에는 가장 좋으냐고. 본인은 비슷비슷하다며 나의 질문 의도를 살짝 비켜 가면서 말씀하신다. 다만 옛날 오메기떡과는 지금의 떡과는 조금 다르다고 부연하신다. 

삭당 밖으로 나오니 저녁 바람이 쌀쌀하다. 올레시장으로 향했다. 이중섭거리도 이제는 익숙하다. 

 

마침 토요일이라 올레시장에 많은 손님이 시장 거리를 메울 줄 알았지만, ‘땅콩 만두’ 등 맛집 부근에만 번호표를 받아서 줄지어 서 있을 뿐이다. 오메기떡집, 흑돼지순대, 닭강정, 횟집 등 먹을거리로 이름난 맛집 앞에만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나머지 가게 앞에는 한산했다. 나는 ‘제일떡집’에서 귤이 들어간 오메기떡 1팩을 또 주문했다. 숙소에 와 먹어보니 역시 꿀맛 중에 꿀맛이다. (2021.3.6.)

 

                          
< 제주한달살이 소소한 팁 >
- 미술관은 대부분 시간별 정원 예약제로 운영한다. 사전에 꼭 확인하고 예약 후 방문하시라. 
- 제주현대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정기 휴관이며.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할 수 있다.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역시 매주 월요일 정기 휴관이며. 제주현대미술관 인근에 있다.
- 맛집 식당에서는 식당을 대표하는 메뉴는 대부분 2인 이상 주문만 받는다.
- 제주현대미술관 앞 ‘더애월흑돼지식당’과 이중섭미술관 주차장 옆 ‘파시방’(팥죽집)은 친절하고 또 맛도 최고다.

- 이중섭미술관을 관람 한 후 이중섭거리 초입에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전시실'도 관람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