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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달을 살았다

[제주한달살이] 12/4, 12일차 올레10코스 화순금노래해수욕장을 출발해 산방산과 송악산을 지나다.

by 이류음주가무 2022. 12. 5.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비가 내린 듯 뜰 바닥과 잔디밭에 물빛이 빛난다. 아직도 산방산 앞 바닷가는 흐린 상태지만 바람은 잔잔하다.

사과 반쪽과 귤 두 개를 반찬 통에 넣고, 따듯한 커피를 준비했다. 오늘은 올레 10코스다. 올레 10코스는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에서 모슬포 하모 체육공원까지 약 15.6㎞이고 난이도는 중급 정도다. 어제 지은 밥과 미역국을 데워 아침을 먹으면서 고민했다. 안덕 농협 하나로마트에 주차 후 완주한 후 모슬포에서 안덕농협까지 버스를 타고 올 까 아니면 동광 6 거리에 주차를 한 후 안덕농협까지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동광 6 거리 주차장에 빈자리가 있어 주차 후 6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아홉 시 조금 넘어 152번 버스를 타고 안덕농협 앞에서 하차했다. 약 800m 정도를 걸어갔다. 구름이 약간 떠 있었지만, 하늘은 맑아지고 있었다. 아홉 시 사십 분 시작점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에서 스탬프를 찍고 출발했다. 

 

 앞에 보이는 산방산의 위용에 압도당하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금모래라기보다는 검은 모래를 닮았다. 특이한 지질 지대를 지나는데 날씨는 더욱 맑아지고, 한라산은 하얀 눈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산방산 아래에 있는 멋진 카페에는 아침부터 이용객이 아닌 관광객이 몰려온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몇 대 서있다. 관광버스까지 타고 오는 유명한 카페인가 궁금하다. 차를 마시기보다는 대부분 산방산이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산방산 아래 휴게 장소에 이르니 한라산은 더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박수기정 절벽까지도 한눈에 보이는 등 풍경이 오늘따라 멋지다.

 

용머리 해안은 돌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해변을 구경해도 가슴은 시원했다. 지역주민이 판매하는 해산물 좌판에는 아침부터 여행객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시끄럽다. 큰 소리로 얘기하면서 술 한잔 걸치고 있고, 젊은이들은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인증 사진을 날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멜이 타고 왔다는 배 모형을 보고 나오는데 산방산 전체가 웅장하다. 등산할 수 있으면 한 번 올라가 보고 싶다.

 

마을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주변이 한적하다. 사계리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산방산 그리고 한라산의 멋진 모습이 또 한눈에 들어온다. 사계 주점에서는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이 장사 준비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조금 지나니 그 먹고 싶은 보말칼국수인 ‘바당칼국수’ 맛집이 나타났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고민 끝에 먹고 가기로 하고 들어갔다. 오전 7시 반에 아침을 먹었으니 열 한시에 점심을 먹어도 무리는 아닐 듯했다. 아직 손님은 없었지만, 이곳에서 세 번째로 먹으러 왔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또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일찍 닫는다고 한다. ‘바당칼국수’ 맛집의 칼국수는 처음 맛보는 사람에게는 호불호가 있을듯하지만 내가 제주에서 먹어본 보말칼국수 중에는 제맛을 내는 맛집으로 평가하겠다. 

 

점심을 먹고 나서 사계 해안으로 걷다가 한라산을 배경을 사진도 찍고, 형제바위 인근에 보이는 빛 내림 역시 황홀하다. 중간중간 반 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는 외국인도 보이는데 이번 한달살이 버킷리스트 중 하루는 최소한 10㎞ 정도 해안을 달리는 일을 목표로 세웠다. 결국 이행은 못했다.

 

송악산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하고 도로변에도 많은 차량이 주차했다. 관광버스는 상반기보다 확실히 많아졌다. 송악산과 그 둘레길을 걷는데 산방산과 한라산 등이 너무 멋져 보이다 보니 자꾸 멈추면서 뒤를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송악산은 상반기에 연두와 다연이랑 셋이서 한 바퀴 돌았지만,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았다. 혼자 올라가는데 경사는 급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나 산방산 모습이 압권이다. 가파도와 마라도 역시 색다른 인상을 준다. 송악산은 깊은 분화구가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해 2015년부터 내년까지 일부 휴식년제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정상이나 내려오면서 분화구를 보는데 생각보다 깊고 가파르며 넓다. 

 

다시 내려와 가파도 방향으로 걷는데 풍경이 지난번보다 아름답다. 특히 송악산 정상 앞에 서 있는 야자수 나무 무리는 제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바라보는 모슬포 방향도 역시 놀랍다.

 

큰길을 가로질러 갈대(?)가 우거진 방향으로 오르는데 어느 여행자가 걸어오는 구도에 맞추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구도가 그럴듯했다. 바람에 약간 기운 갈대밭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산방산 모습 또한 일품이다. 

이후 숲길을 따라 걷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성한 포대가 보이고, 전쟁과 역사적 비극 등을 다루는 다크 투어리즘 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특히 한국전쟁 후 벌어진 섯알오름에서의 학살에는 가슴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한 젊은 친구가 묵념한다. 나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 성호를 긋고 나왔다. 

섯알오름 입구 주차장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정자 앞에서 커피와 사과 귤을 먹었다. 알뜨르 비행장과 격납고 지하 벙커 등을 돌며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떨며 걷는데 산방산과 한라산은 암울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고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모슬포 방향을 걷고 해안도로를 건너 다시 해안가를 걸어가니 익숙한 풍경이 나온다. 가파도를 건너가기 위한 모슬포항이 보였다. 해안가를 따라 도로를 건넌 뒤 마을 안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올레10코스의 종점인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했다. ‘가이드북 제주올레’에는 15.6㎞로 미터의 거리라고 하나 내 시계는 18.9㎞를 걸었다고 하니 정상적인 코스를 조금씩 더 벗어나 보고 걸었던 날이다.

 

모슬포항에서 153번 버스를 타고 동광6거리에서 내렸다. '청년당'에서 꽈배기 5천 원어치를 사 와 두 개를 먹으면서 남은 찬밥으로 누룽지 만들기에 도전했다. 누룽지를 끓여 먹고 또 계란 프라이도 해 먹은 뒤 샤워 후 어제 꿈자리가 이상해서 인근에 있는 복권 판매소에 가 복권 두 장을 샀다.

 

세탁기를 돌리고 제주 에일맥주를 한잔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했다.